‘질풍노도’ 이민진을 누가 막을까
▲ 지난 7월 19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6기 지지옥션배 제6국에서 차민수 4단(왼쪽)과 이민진 7단이 대국하고 있다. |
이 7단은 어찌 됐건 권 8단에게 설욕, 간단히 1 대 1을 만들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시니어 팀의 2번 주자, 1980년대를 빛낸 도전5강 멤버였던 저력의 강훈 9단(55)을 꺾어 연승 시동을 걸었다. 이후는 파죽지세.
날렵한 행마로 속기의 명수이며 타이젬의 인기짱인 ‘번개소문’이라는 아이디의 임자 김종수 7단(52)과 바둑TV의 유머 넘치는 해설자 한철균 8단(57)을 강판시키며 순식간에 4연승을 달성한 데 이어 이번에 5연승 도전에 성공한 것. 3연승이면 200만 원의 연승 보너스가 있고, 거기서 더 이기면 1승에 100만 원씩이 추가된다. 이 7단은 일단 보너스 400만 원을 확보했다. 우승 팀은 상금 7000만 원, 준우승 팀은 1200만 원을 받는다.
비상이 걸린 시니어 팀이 긴급 투입한 선수가 특급 소방수 차 4단이었다. 차 4단은 제2기 때 선발로 나서 일거에 5연승을 올리며 시니어 팀 우승의 주역을 담당했던 전력이 있는 데다가 이후에도 시니어 팀이 몰린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급한 불을 끄곤 했었다.
기대했던 대로 차민수-이민진의 일전은 난타전에 백병전이었다. 이 7단이 흑. 초반에 차 4단이 하변에서 점수를 올렸다. 그러나 우하귀에서 잠깐 오버하는 바람에 이 7단이 따라붙었다. 전투는 좌상귀로 번졌고, 수상전이 벌어졌다. 피차 대마가 걸린 패. 패는 이 7단이 이겼으나 대신 하변 흑 대마가 심하게 쫓기는 양상이 되었다. 흑 대마가 거의 포위되었다. 여기서도 대마의 사활이 패에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대마 패면 백에게는 물론 꽃놀이패가 되는 건데, 차 4단이 착각, 대마는 그냥 살았다.
<1도>가 이 무렵의 상황이다. 급소에 놓인 백를 보며 흑1로 단수친 장면. 계속해서 백은 <2도> 1로 치받았고 그러나 흑2로 단수치고 4로 씌우는 순간 흑 대마는 백를 잡으며 살았다. <2도> 다음 <3도> 백1이면 흑2, 백1로 A면 흑B로 그만인 것. <2도> 백1이 실수였다. 이게 아니라 <4도> 백1로 이 한 점을 살려 와야 했으며, 그랬으면 흑2, 백3의 패밖에 없었던 것.
지지옥션배는 제한시간 각자 10분에 40초 초읽기 3회. 40초면 초읽기 치고는 제법 넉넉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착각은 초읽기가 원흉이다. 속기, 그게 재미는 있고 구경하기는 좋지만, 글쎄 아무래도 본령은 아닐 것이다. 바둑TV의 슬로건은 화면 한쪽에 상주하는 ‘생각의 힘’이라는 것 같은데, 생각과 속기는 모순이다.
흑 대마가 완생하고 나서는 완연 흑의 페이스. <5도>는 종국 직전의 상황이다. 백1로 머리를 내밀자 흑2로 일단 치중, 늘 보는 센터링. ‘선 치중, 후 행마’의 기본이다. 백3을 기다려 흑4로 끊었다. 이제 백 대마는 살아야 하는 건데, 살지를 않고 <6도> 백1, 3으로 버텼으나 흑4~8을 당해 끝내 함몰하고 말았다.
계속해서 <7도> 백1로 마늘모하는 수가 있을 듯하나 안 된다. 흑2로 따내는 것이 선수. 백3으로 집을 만들어 봤자 흑4로 거푸 따내 그만이다.
흑2 때 백3으로 A에 막아 패로 저항하는 수는 있지만, 여기 와서는 이른바 생불여사. 그렇잖아도 여의치 않은 형세인데, 대마 패가 나는 것과 대마가 잡히는 것이 차이가 없다.
일요신문배 어린이바둑대회 해설위원이기도 한 이 7단은 한-중-일 여자 단체전이었던 정관장배에서 2007년 제5회 때 5연승, 2008년 제6회 때 3연승으로 한국 우승을 견인하면서 ‘정관장의 여인’으로 떠올랐고, 2008년에는 제2회 지지옥션배에서도 4연승을 올려, 팀이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연승의 여왕’이 되었다. 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바둑 금메달의 주역이었다.
아무튼 개인전보다는 단체전, 작은 대회보다는 큰 대회에서 힘을 발휘하는, 남자로 말하면 카리스마가 있고 선이 굵은 스타일.
각 12명 선수 가운데 시니어 팀은 조훈현(59) 서봉수(59) 백성호(56) 서능욱(54) 황원준(60) 조대현(53) 유창혁(46) 등 7명의 9단이 남았고, 여자 팀은 이 7단을 비롯해 조혜연(27) 박지은 9단, 김혜민(26) 6단, 하호정 박소현(24) 김윤영(23) 박지연(21) 이슬아(21) 3단, 문도원(21) 최정(16) 2단 등 11명이나 버티고 있다. 나이로 보면 ‘아저씨와 아가씨’가 아니라 ‘아버지와 막내딸’의 대결이다.
올해 얼마 전에 끝난 아마 지지옥션배에서는 시니어가 많이 당했는데, 프로 쪽은 어떨지. 지금은 비관적인 상황인데, 그래도 속단하기는 이르다. 5회까지 결과는 3 대 2로 시니어 쪽이 우세하다.
그보다는 이제 자신의 지지옥션배 4연승 기록을 경신한 이민진의 연승 아우라가 과연 어디까지 뻗칠지, 지난해엔 최정 2단이 8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는데, 이민진이 내친김에 거기까지 뻗어갈지, 지금은 그런 게 궁금하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