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암연구소 2B군 물질 분류 예고…“소비자가 긴장할 소식 아닌 전문가 확인 필요하단 메시지”
이 같은 소식에 전해지자 소비자들은 아스파탐이 함유된 제품에 대해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식품업계도 오랫동안 사용된 인공 감미료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성분이란 낙인이 찍히자 황당해 하면서도 대체재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WHO의 발표와 식약처의 대처 등을 기다려보겠다는 반응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아스파탐’ 사태에 대해 “소비자들이 긴장해야 할 소식이 아니라 인체 발암성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세계보건기구가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보낸 것”이라며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인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아스파탐은 설탕의 200배의 단 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로 극미량만으로도 단맛을 이끌어 낼 수 있어 설탕보다 가성비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을 가하지 않으면 변질될 우려도 적어 널리 쓰이고 있다. 1981년 식품첨가물 합동 전문가 위원회는 하루 섭취량을 제한할 필요 없는 첨가물로 아스파탐을 규정했고, 이후 전 세계에서 설탕 대신 널리 쓰이고 있다. 아스파탐 외에 아세설팜칼륨, 에리트리톨, 알룰로오스, 수크랄로스 등도 설탕 대신 쓰이는 인공 감미료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식음료 중 ‘아스파탐’이 함유된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롯데칠성음료의 펩시제로 3종(라임‧망고‧블랙) △서울장수막걸리의 달빛유자 막걸리를 제외한 모든 제품 △지평주조의 ‘지평생막걸리’ △국순당의 ‘국순당 생막걸리’, ‘대박 막걸리’ △오리온의 ‘포카칩’, ‘고래밥’ 등 10종 △크라운제과의 ‘콘칩 초당옥수수맛’ 등이 있다. 콜라나 사이다 등 탄산음료에는 열량은 줄이지만 단맛은 살리기 위해, 막걸리에는 유통기한을 늘리고 쌀을 적게 넣고도 단맛을 진하게 내기 위해 아스파탐을 사용한다.
지난 6월 세계보건기구가 아스파탐을 ‘암 유발 가능 물질’로 분류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오는 14일 이런 방침과 하루 섭취 권고량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로이터 통신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최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외부 전문가 회의를 거쳐 이런 방침을 최종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최근 들어 아스파탐의 발암 가능성에 대한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IARC는 암 유발 여부와 정도 등에 따라 물질을 5개 군으로 나눈다. 아스파탐이 분류될 2B군은 인체에 대한 연구가 제한적이고 동물 실험 자료가 충분치 않은 경우이며, 말 그대로 발암 ‘가능성’을 의미한다. 2B군에는 김치나 피클 같은 절임 채소류, 젓갈, 고사리, 알로에베라 등이 있다. IARC는 커피를 2B군에 분류했다가 2016년 제외한 적도 있다. 1군에는 담배나 석면 등 발암성이 있는 물질이, 2A군에는 붉은 고기, 우레탄 등 발암 ‘추정’ 물질이 있다.
‘제로’ 열풍을 타고 제품을 판매해 오던 식음료 업계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긴장하고 있다. 아스파탐 공포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제품 판매량이 감소하거나 제품 성분 재정비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 제품엔 아스파탐이 들어있지 않다’며 선제 홍보하는가 하면, 대체 원료를 찾아 나선 업체도 있다.
아스파탐이 함유된 과자를 생산‧판매하는 오리온 관계자는 “나쵸, 감자톡 등 일부 제품(10여 종)에 평균 0.01%로 극소량이 들어 있다”며 “이는 체중 60kg의 성인이 중량 60g 제품을 하루에 약 300개씩 먹어야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1일 섭취 허용량을 초과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IARC의 발표가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당사는 선제적으로 원료 대체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펩시제로를 국내 단독 수입‧유통하는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아스파탐은 FDA가 허가한 식품첨가물이자 식약처가 승인한 식품첨가물 감미료 22종에 속해 있는 안전한 식품첨가물로 음료 외 과자, 막걸리 등 다양한 식품에 사용되고 있다”며 “당사의 경우 펩시제로 3종에 사용되고 있으나 그 외 음료 및 주류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미료 변경에 대해서는 “펩시제로는 본사에서 원액을 받아 제조되고 있어 (관련 사항에 대해) 본사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각 사별로 현재는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까지 매출에 큰 타격이 되거나 한 사안은 아니다”라며 “제조‧유통사들이 공동의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면 취합해 대응하겠지만 아직은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WHO의 공식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백원 식약처 대변인은 지난 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오는 14일 WHO의 공식 결과가 있으면 세부 사항을 확인해 관련 규정을 확정할 것”이라며 “WHO의 발표 이후 미국, 유럽 등 다른 국가들의 동향도 주시하며 보조를 맞추겠다”고 밝혔다. 강백원 대변인은 “한국인의 아스파탐 1일섭취허용량(ADI)은 외국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체중이 35㎏인 어린이가 다이어트 콜라 1캔(250㎖·아스파탐이 약 43㎎ 기준)을 하루에 55캔 이상 매일 마시면 1일섭취허용량(ADI)이 초과된다. 또 60㎏인 성인이 하루에 750㎖인 막걸리 1병(아스파탐 72.7㎖ 함유)을 33병 마셔야 ADI에 도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홍혜걸 의학박사는 자신의 SNS에 “이번에 발표된 인공 감미료 아스파탐은 가장 낮은 등급인 2B 발암물질”이라며 “술 마시거나 소고기 먹으면서 공포심 갖진 않는다. 1이 위험하면 1만큼 조심하고 100이 위험하면 100만큼 조심하면 된다. 의도를 갖고 위험성을 부풀리는 이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자”고 밝혔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WHO의 아스파탐 관련 소식에 유독 우리나라만 극성스럽게 반응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발암 물질에 대한 공포가 있어왔기 때문”이라며 “소비자들이 긴장해야 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전문가와 정부가 확인하고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식품업계에서 아스파탐을 마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성분처럼 홍보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인공 감미료는 당뇨 환자에게 혈당을 높이지 않으면서 단맛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식품 회사들이 인공 감미료를 다이어트와 연결시켜 판매해왔는데, 인공 감미료가 다이어트에 직접적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