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범 처벌 ‘집중’ 알코올·도박 중독 해결 ‘뒷전’…“치료·재활 아우르는 사회서비스 체계 확대해야”
알코올 중독자 가족인 허 아무개 씨 말이다. 마약‧알코올‧게임‧도박‧음란물 등 우리 사회 곳곳에는 물질·행위 중독이 만연해 있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가정·사회 파괴를 야기한다. 전문가들은 중독은 질환이므로 의료적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정부가 마약사범 처벌에 집중한 사이 또 다른 중독 관련 문제 해결엔 뒷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중독 예방 및 재활‧치료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 수는 2018년 150만 5390명, 2019년 151만 7679명, 2020년 152만 6841명을 기록했다. 2020년 기준 알코올 남용은 87만 2481명, 알코올 의존증이 65만 4360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알코올 중독자 수는 해당 연도 주민등록인구 수에 알코올 사용 장애 1년 유병률인 3.5%를 곱한 값으로 추정한다.
실제 알코올 중독자 중 이로 인한 진료를 받는 환자는 매우 적다. 오히려 알코올 중독증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8년 7만 1791명, 2019년 7만 1326명, 2020년 6만 4765명으로 감소했다. 알코올 중독자 대비 지역의 중독관리센터 등에 등록해 알코올 사용장애를 관리받는 사람의 비율은 더 심각하다. 2018년 1만 295명, 2019년 9471명, 2020년 9042명으로 줄었는데, 지역사회 등록 관리율도 2018년 0.68, 2019년 0.62, 2020년 0.59로 줄었다.
도박중독도 마찬가지다. 2018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5.3%로 약 222만 명이 도박 중독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의 도박중독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병적 중독’ 또는 ‘도박 및 내기에 관련된 문제’를 진단받은 10대 도박 중독 진료 건수는 총 576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에는 362건에 불과했는데, 3년 만에 크게 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로 각종 약물이나 행위 중독이 크게 늘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통계도 없는 현실이다. 중독예방시민연대는 현재 국내에는 대략 알코올 중독자 210만 명, 인터넷 중독자 230만 명, 도박 중독자 210만 명, 마약 중독자 50만 명, 성(음란물) 중독자 200만 명 등 약 900만 명이 5대 중독에 빠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독예방시민연대는 “각종 중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만 연간 109조 원에 이르며 최근에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의 급증과 청소년들에게 퍼지고 있는 마약범죄 등 그 양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보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김영환 한국중독당사자지원센터 센터장은 “최근 마약과 관련해 유명인 사건도 터지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처벌 강화 등을 얘기하다보니 모든 시선이 마약에만 쏠려있는 듯하다”며 “중독 당사자에 대해 진정으로 나라에서 치료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처별로 우후죽순 중독 질환을 다루겠다고 나서다보니 주체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중독질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정부 부처가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도박중독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리하는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 농림축산식품부이 한국마사회 유캔센터,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도박치유 프로그램 등으로 흩어져 있다. 보건복지부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이전의 알코올 상담센터로 알코올 중독 대응이 무게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 게임, 도박 모두 국가 지원 산업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더 문제”라며 “특히 디지털, 게임 분야는 국가가 나서서 장려하고 지원하는 산업인데 전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중독) 치료까지 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음주폐해 관련 예방사업은 18년 전 정부 예산이 15억 원이었는데 지금은 13억 원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별도 법도 마련돼 있지 않아 중독 해법을 지원할 수 있는 입법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중독예방시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중독관련법들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정비돼야 하며 심리학계, 의학계, 시민단체, 종교계 등 관련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대는 “각종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중독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치유 및 자활 등 실질적인 지원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며 “5대 중독예방을 위한 ‘중독예방국가종합대책’을 신속히 마련하고 국민건강증법과 마약관리법 등의 관련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용석 가톨릭대 일반대학원 중독학과 교수는 “마약뿐 아니라 알코올, 도박도 마찬가지로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중독 관련 전문 인력도 부족하지만, 현재 민간 자격증에 그치는 중독 전문가 자격증을 국가 자격증화 해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사회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는데, 사회적 합의를 거쳐 중독자들에 대한 치료와 재활 나아가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 체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