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귀국 후 김부겸 정세균 김동연 합종연횡 가능성 제기…친명 강경 이미지 속 ‘온건·중도’ 수요 커질 수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뒤 민주당은 친명계와 비명계 간 내홍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후에도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발 ‘돈봉투 살포 의혹’, 김남국 의원 코인 거래 논란이 발생했다. 이런 이슈가 부상할 때마다 이재명 지도부를 향한 비명계 견제구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비명계의 한계도 있었다. 확실한 구심점이 없었다는 측면이다. 친명계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중심으로 세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명계는 ‘각개전투’로 당 지도부를 견제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낙연 전 대표 귀국은 당 역학 구도에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이 전 대표는 6월 24일 미국 유학 일정을 마치고 국내로 들어왔다. 이 전 대표는 당내에서 이재명 대표와 견줄 만한 체급을 갖춘 사실상 유일한 맞수로 꼽힌다. 이 전 대표 컴백은 비명계가 친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처럼 여겨졌다.
이 전 대표는 6월 28일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정치 행보에 본격 돌입했다. 7월 5일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노 전 대통령 배우자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그 뒤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존재감 부각’을 위한 교과서적인 행보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 타이틀을 달았던 이 전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막걸리를 곁들인 만찬을 가졌다. 식사를 마친 뒤 이 전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문 전 대통령과 나라 걱정, 민주당 걱정을 포함해 여러 말씀을 나눴다”고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나라 걱정이라는 키워드는 이른바 ‘검찰 정권’이라 불리는 윤석열 정부를 염두에 둔 키워드일 것”이라면서 “민주당 걱정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당권을 잡고 있는 이재명 지도부를 향한 견제구로 보인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장외에서 순회·강연 정치에 시동을 걸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표는 5선 국회의원 출신에 광역지자체장 경력을 쌓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재인 정부 땐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 타이틀을 달았다. 총리직을 마친 후엔 거대여당 당권을 잡았다. 20대 대선을 2년여 앞둔 상황에선 ‘이낙연 대세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야를 오가며 당직을 지낸 경력이 있는 한 정치권 인사는 “이제 이낙연 전 대표가 달성했을 때 의미가 있는 커리어는 사실상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바로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표 귀국 후 행보는 몸풀기”라면서 “친명계가 주류로 자리매김한 현 민주당 내부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이 전 대표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몇 년 사이 민주당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몇 년 전만 해도 당 내부 압도적인 주류 세력은 ‘친문’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리를 ‘친명’이 대체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이다.
“이재명 대표는 당내 주류 교체를 이뤄낸 인물이다. 검찰 표적수사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와 일대일로 맞서기엔 당내 구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전 대표를 비롯한 거물급 인사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했을 때 비로소 비명계가 친명계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 귀국과 맞물려 거물급 인사들의 움직임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민주당 내에선 벌써부터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종로 등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총리가 22대 총선에서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로 나와 ‘강북 벨트’를 사수해야 한다는 요구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였던 김 전 총리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유임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야권 내 중도 확장성이 있는 인사로 꼽힌다. 특히 야권 최대 험지로 꼽히는 대구에서 4차례나 출마한 이력은 그의 우직한 이미지를 대변하는 행적이다. 김 전 총리는 제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증을 거머쥐기도 했다.
2022년 김 전 총리는 총리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정계 은퇴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 선언을 한 것은 아니라, 정치권 내부에선 ‘은퇴 아닌 은퇴’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언제든 명분과 시기가 맞는다면 다시 정치 일선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선 “김 총리가 정계 은퇴를 한 것이 아니라, 대구 지역 정계에서 은퇴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정 전 총리는 이낙연 전 대표에 비견될 만큼 화려한 커리어로 유명하다. 헌정사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한 정치인은 총 3명이다. 그 3명 중 한 명이 정 전 총리다.
야권 내부에선 정 전 총리가 중앙정치에 복귀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긴 한다. 그러나 향후 민주당 권력구도가 요동치면서 SK계(정세균계)가 캐스팅보트로 떠오를 경우 정 전 총리 역할론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 전 대표와 김 전 총리, 정 전 총리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했던 이들이다. 총리 출신뿐 아니라, 주목받는 문재인 정부 부총리 출신 인사도 있다. 경기도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당내외적으로 이름값을 높여가고 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주인공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김 지사가 이재명 대표와 겨룰 수 있는 차기주자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거론되는 문재인 정부 총리·부총리급 인사들에겐 온건한 성향에 중도 확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채 교수는 “현재 민주당 주류 세력인 친명계는 팬덤의 강력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강경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면서 “강경한 친명계를 견제할 세력으로 ‘온건·중도’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전 정부에서 조용하게 존재감을 뽐냈던 거물급들이 연대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