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대표팀과 뉴질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홍명보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뉴캐슬과 코벤트리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토너먼트 8강행의 판도를 가늠해야 할 홍명보호는 이번 올림픽이 절실하다. 선전을 통해 풀어가야 할 과제와 숙제들이 산적했다. 팀으로나, 홍명보 감독 개인으로나, 선수들이나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런던올림픽이 한국 축구에 던지는 세 가지 화두를 짚어봤다.
역대 최고 성적을 향해
한국 축구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시기는 1948년이었다. 공교롭게도 대회 장소는 런던이었다. 해방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출격한 역사적인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는 8강에 올랐다. 대회 1차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제압한 당시 올림픽대표팀은 스웨덴과 8강에서 0-12로 무너져 4강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의 족적은 참담했다. 돌아온 것은 연이은 본선 진출 실패였다. 64도쿄올림픽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역시 예선 탈락. 자동 진출권을 얻은 88서울올림픽부터 92바르셀로나올림픽, 96애틀랜타올림픽, 2000시드니올림픽까지 내리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김호곤 감독이 이끈 올림픽대표팀이 8강에 올랐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2008베이징올림픽에서도 역시 조별리그 실패의 고배를 들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64년 만에 다시 찾아온 런던올림픽(제30회)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처음 한국 축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린 장소에서 가능성과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처럼 의미가 있는 일은 없다는 게 축구 인들의 시선이다. 더욱이 8월 2일 예정된 예선 3차전이 바로 영국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다.
더욱이 한국 축구는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려오고 있다. 국내 팬들의 관심도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다. 편차 심한 프로축구 K리그의 식은 열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이 충족돼야 한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은 모두 현재 한국 축구를 대표할 만한 젊은 연령대의 스타들이다. 예전 올림픽을 앞두고 출전 엔트리가 발표될 때마다 항상 그래왔지만 이번이야말로 진정한 역대 최강이라고 할 만하다.
이영진 전 대구FC 감독은 “올림픽대표팀이 토너먼트에 오르면 그 이후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예선 첫 경기와 8강전이 최대 고비다. 4강에 오른다면 메달 확보 가시권에 돌입한다. 지금 전력이라면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렸다.
위대한 지도자를 향해
홍명보호는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을 통해 본격 출범했다. 그리고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고, 비로소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애제자’로 불리던 몇몇 선수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빠져나가고 합류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홍 감독은 3년이라는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또래 연령대의 거의 비슷비슷한 제자들을 체계적으로, 또 단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여느 지도자들과는 다른 풍성한 메리트를 부여받았다.
결국 런던올림픽이 ‘과정 중인’ 혹은 ‘발전 중인’ 홍명보호가 아닌, ‘완성판’ 홍명보호를 볼 수 있는 진정한 무대라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성공적인 현역 시절을 보내며 한 시절을 풍미했던 홍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역량 또한 확인되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한때는 축구 행정가를 꿈꾸다가 2002한일월드컵부터 인연을 맺게 된 핌 베어벡 감독(현 모로코 올림픽대표팀)의 적극적인 권유로 인해 우연히 시작된 지도자의 길이었지만 지금까지는 거의 성공에 가까웠다. 참모로서의 역할도 잘 해냈고, 책임자로서의 능력도 확인시켰다.
여기에 ‘사람 중심’ ‘팀 중심’ 등등 남다른 캐릭터로 좋은 이미지를 남겼고, 때론 강렬한 카리스마로 제자들을 통솔해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의 전형을 보였다. 전술가, 지략가의 이미지까지 덧씌운다면 금상첨화. 결국 런던올림픽은 홍 감독 개인에게도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가늠할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다른 가치를 향해
홍명보호에게는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내려오던 몇 가지 대표적인 금기어가 있다. 바로 ‘병역’, ‘메달’이다. 국내 병역법에 따르면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확보하면 해당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절실한 지상과제이기도 하다. 와일드카드로 홍명보호에 선발된 박주영(아스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나코 공국의 장기 체류권을 얻었다가 한바탕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병무청은 병역 연기를 위한 사실상의 이민 준비과정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합법과 불법의 묘한 경계선조차 넘나들어야 할 만큼 절실한 문제이지만 홍 감독이 이를 암묵적인 금기어로 정한 것도 선수들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메달에 집착하고, 성적에 연연하다보면 가진 제 기량도 100% 쏟아내지 못한 채 후회와 아쉬움만 남게 될 수 있다.
2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미 똑같은 아픔을 경험했다.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 3위에 그쳤다. 패색이 짙던 이란과의 대회 3~4위 결정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에 버금가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소득도 있었지만 현실적이고도 실질적인 보상은 적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올림픽을 통해 얻을 수 있든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소득은 바로 가치 상승이다. 23세 이하 영건들이든, 와일드카드든 대어급 선수들이 대거 런던행을 확정했다. 스카우트들과 에이전트들이 현장을 찾을 것은 당연지사. 자신을 어필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런던올림픽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