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유신 반대 투쟁 참여자 등 포함’ 골자…국민의힘 “가짜 유공자 양산” 대통령 거부권 건의 방침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할까
7월 4일 민주당은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민주유공자법을 단독으로 의결시켰다. 이 법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외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사망·부상·행방불명 등의 피해를 입은 이들을 국가에서 예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가보훈부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따라 선정될 민주유공자를 911명으로 추산했다. 법안은 정무위 전체 회의 및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민주당은 특혜 조항이라 불렸던 교육·취업·주택 지원 조항을 삭제했고, 양로·의료비 지원만 남겼다고 했다. 7월 4일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무위 소위에서 “(민주유공자법은) 단지 이분들이 그냥 빨갱이가 아니고, 사상범이 아니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사람들이 아니고, 대한민국 민주 발전에 공헌한 유공자라는 명예만 드리는 법”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의결 전 퇴장했다.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들은 소위 의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 법은 과거 반정부 시위, 불법 파업, 무단 점거 농성, 자유민주주의 체제부정 등의 행위를 하다 사망했거나 부상당했던 사람들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해주는 법”이라며 “민주당 주류인 586 운동권 세력이 자기편만을 유공자로 지정하기 위한 ‘내편 신분 격상법’이자 ‘가짜유공자 양산법’”이라고 주장했다.
정무위 간사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법이 통과된다면 대표적인 공안사건이자 반국가단체로 판결 받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경찰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동의대 사건, 전교조 인정·해직교사 복직 시위, 김영삼 정권 반대 운동이 4·19혁명, 5·18민주화운동과 동등한 국가유공행위로 인정받게 된다. 어떤 국민이 이에 동의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불법 노조 활동, 전교조 해체 반대가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헌정질서 확립에 어떤 기여를 했나. 김영삼 대통령이 독재자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국가보훈부도 “유공자를 인정함에 있어 우리 사회와 국민 모두가 인정할 만한 특별한 공적이 있는지 충분한 숙고와 논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7월 10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언젠가 민주화에 대한 공만 추켜세워지다 민주유공자로 부활할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박 장관은 직을 걸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민주당은 박민식 장관 발언을 일축했다. 민주유공자법 제4조는 적용 대상자를 △민주화운동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민주화운동부상자로 한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원순 전 시장은 2020년 성추행 의혹으로 피소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박 시장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국민의힘에선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의원들을 위한 ‘셀프 특혜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민주유공자법 대상자는 아무도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유공자법 적용 대상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왔던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6월 27일 “법안 내 부상자에 대한 정의는 장애등급을 받는 사람이라고 돼 있다”며 “저는 1990년 노동자 100주년 시위 때 경찰에게 집단폭행을 당해서 전치 6주의 (부상을) 당했지만, 보상 심의 과정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았기에 대상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종민 의원은 “문제가 된 대상자에 대한 규정도 추가로 명시해 사회적 공감대를 기준으로 국가보훈 산하 보훈심사위원회가 심의해 문제가 되는 의견을 거를 수 있도록 한 아주 안전한 법”이라며 “(여당에서는) 그게 막연하다고 하는데 국가보안법·형법 사건은 제외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보훈 어디까지
1월 26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국가 보훈체계의 위상 강화 방안’에 따르면 “외국의 보훈제도는 크게 제대 군인에 대한 관리 차원의 제도와 전쟁 희생자에 대한 부조 차원의 제도로 나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국가보훈제도는 적용 대상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며 “보훈대상자에 전쟁희생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경우를 포함하고 있는 국가는 외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전통적 보훈 영역 밖에서 희생 및 공헌을 한 사람들이 보훈으로의 진입을 요구하고 있다. 보훈 대상 유형이 너무 다양하고 외연이 불명확하다. 외연의 지속적 확대와 불명확화로 신규 진입 요구 계층이 폭증했다”며 “‘공헌’의 개념과 지원기준이 모호하다. 외국의 경우 공헌만 있는 자에 대해 ‘사회적 존경’ 외에 별도의 지원을 위한 법적 제도는 사례가 거의 없다. 보훈법률이 아닌 다른 법률에 의한 국가유공자 진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보고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대상자의 범주 확대와 보상 범위의 확대가 이뤄졌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국가보훈제도는 ‘국가보훈보상’이라는 색채가 더욱 탈색되고 ‘단순보상’제도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화운동을 보훈 영역으로 처음 넓힌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2년 3·15 의거 등을 포함해 4·19 혁명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군사쿠데타에 반발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4·19 유공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유공자 지정을 요구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 보상이 이뤄졌다. 1990년 1차부터 2015년 7차까지 9227명이 신청, 5807명이 인정받았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5·18 희생자들도 유공자로 지정됐다. 5·18 유공자들은 이미 보상을 받았기에 다른 국가 유공자들과는 달리 연금을 받진 않는다.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주유공자법은 유신 반대 투쟁, 6월 민주항쟁, 부마 민주항쟁 등에 참여한 사람들도 유공자로 예우해달라는 것을 골자로 한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달라는 것이다. 이 법은 1998년 제15대 국회에서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만, 2015년 민주화운동 보상법이 제정되면서 민주화운동 유공자 5000여 명도 약 1169억 원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