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지 아닌 전쟁터에 한국 대통령 최초 방문…군수·인도 지원 및 재건 협력 방안 논의
#극비리에 진행된 ‘우크라이나행’
윤석열 대통령 부부 방문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됐다. 7월 14일(현지시간) 폴란드 순방 일정 마무리 후 귀국을 앞두고서 대통령실의 백브리핑이 갑작스레 진행됐다고 한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 이도운 대변인 등이 모두 백브리핑에 참석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 부부의 우크라이나 방문 소식을 발표했고, 대통령의 신변 보호를 위해 보안 유지를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당초 4박 6일 리투아니아·폴란드 순방 일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순방 기간이 그만큼 연장됐다.
7월 14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얼마 전에 저희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방문 초청이 있었고, 저희가 인근 국가(우크라이나)에 방문을 하게 됐다”며 “나토 정상회의 순방을 준비하면서 오래전에 양자 방문에 대해서 초청을 받았고 고민을 오래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이 그동안 지켜온 원칙 하에서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한국 간에 돕고 또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우크라이나 측은 비공개 공식 초청을 수차례 보냈다. 5월 16일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한국을 찾아 윤 대통령을 만났을 때 친서를 전달하며 초청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윤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도 초청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7월 11일(현지시간) 두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중 열린 공식 만찬에서도 만났다. 이때도 방문을 요청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설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해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모두 우크라이나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대통령실은 부인했다. 지난 5월 25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설을 보도한 일본 언론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보도”라며 사실상 유감을 나타냈다. 7월 6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대통령 순방 전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를 별도 방문하거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계획에도 없고, 현재 추진되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7월 13일(현지시간) 순방 중에도 “현재로서는 추가적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우크라이나 두 번째 정상회담
7월 15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우크라이나 도착 뒤 먼저 수도 키이우 인근의 부차시 학살현장과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던 민간인 거주지역 이르핀시를 돌아봤다고 대통령실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전사자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키이우 마린스키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1시간 50분간 했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하여!”라고 방명록을 남기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우리 두 정상은 한국의 안보 지원, 인도 지원, 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는 △안보 △인도 △재건 등 세 가지 지원 분야로 나눠서 설명했다.
먼저 안보 지원에 대해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공식’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성공적인 평화공식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한국은 주요 개도국들이 평화공식 정상회의에 보다 많이 참여하고, 자유 연대에 동참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군수 지원에 대해선 “지난해 방탄복, 헬멧과 같은 군수물자를 지원한 데 이어, 올해도 더 큰 규모로 군수물자를 지원해 나갈 것”이라며 “또한,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취약해진 글로벌 식량안보, 에너지 안보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와 행동을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비살상무기 지원 기조에서 벗어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살상무기 지원 계획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았다.
인도 지원 관련해서는 “저는 지난 5월 젤렌스키 대통령님과의 정상회담 이후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지뢰탐지기 등 안전장비와 인도적 지원 물품을 신속히 전달한 바 있다”며 “한국 정부는 지난해 약 1억 불의 인도적 지원에 이어, 올해 1억 5000만 불의 지원도 효과적으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우크라이나 정부 재정 안정성을 위해 세계은행과 협력하여 재정지원도 새롭게 실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건 지원 관련해서는 지난 5월 양국 간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기본 협정에 가서명한 것을 언급하며 “한국 재정당국이 이미 배정해 둔 1억 불의 사업기금을 활용해 인프라 건설 등 양국 간 협력사업을 신속히 발굴하고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온-오프라인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해 키이우에 개소된 코이카 사무소를 중심으로 전쟁으로 파괴된 교육기관 재건을 위한 협력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도 신설하기로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경제, 에너지 지원 등을 논의했다.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도와주고, 안보와 인도적 지원을 계속 제공해 줘서 감사하다”며 “특히 (한국의 지원품 중) 안전 장비가 잘 쓰이고 있다. 이를 통해 인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전쟁 범죄 처벌을 지원해 줘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