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폭우 한쪽은 폭염’ 이상기후 동시다발…역대 최고 기온 지구에 최악 엘니뇨 ‘수천조 경제 손실’ 전망
#폭우, 폭염, 산불…전 세계 휩쓴 이상기후
지난 7월 10일 일본 후쿠오카에 폭포수 같은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속출했다. 하루 동안 무려 400mm 넘는 비가 내려 관측 사상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후쿠오카의 7월 강우량은 299.1mm. 불과 하루 만에 한 달 치 강우량을 훨씬 뛰어넘은 셈이다. NHK는 “수십 년간 경험한 적이 없는 폭우가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나고야에서는 게릴라성 호우에 낙뢰가 떨어지고, 순간 최대 풍속이 35.4m/s인 강풍이 몰아쳤다. 같은 날 이바라키현에서도 토네이도 주의보가 발령됐는데, 전신주가 뽑히고 창고가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폭우와 천둥·번개, 돌풍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폭염이 기승이다. 7월 12일 도쿄도 하치오지시는 올해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39.1℃를 기록, 열도 곳곳에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가 극단적인 이상기후로 신음 중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폭우로 홍수가 발생해 5월 21일 예정이었던 ‘2023 포뮬러원(F1) 그랑프리 대회’가 전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스페인은 역대급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일부 지역은 기온이 44℃까지 치솟아 야외 작업이 금지됐다. 저녁 6시가 넘으면 식을 만도 한데 38℃로 관측되는 등 비정상적인 기온은 떨어질 줄 모른다. 이로 인해 올리브 농사도 최악의 흉작에 직면했다. 스페인이 세계 최대 생산국인 만큼 올리브유 가격도 연일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수도 아테네는 낮 기온이 43℃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고대 신전이 있는 유명 관광지 아크로폴리스는 그늘이 없는 언덕 지역이라 기온이 더 높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그리스 정부는 관광객 건강을 우려해 당분간 낮 동안에 아크로폴리스를 폐쇄하기로 했다.
미국과 캐나다도 폭염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이상 고온과 가뭄 탓에 산불이 잦아져 올해 들어 10만km² 이상의 면적이 불에 탔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10배가량 큰 피해다. 캐나다를 덮친 산불의 여파로 미국 뉴욕시의 대기오염은 세계 최악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더욱이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는 6월 말 최고기온이 49℃에 달했다. 6월 12~25일 사이에 1000건이 넘는 온열 질환 신고가 발생했으며, 이 중 104명이 숨졌다고 한다.
#뜨거운 지구, 역대급 ‘슈퍼엘니뇨’가 온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7월 10일 발표에서 “7일 기준 지구 평균기온이 17.24℃까지 올라 역대 최고치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온 현상의 배경으로 ‘엘니뇨의 발달’을 꼽는다. 이미 WMO는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3년 넘게 지속했던 라니냐 현상이 종료됐고, 올해 하반기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 바 있다. 참고로 라니냐 현상은 적도 부근 동태평양(페루 앞바다)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것을 뜻하고, 엘니뇨는 그 반대 현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짚으면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 이상 높은 채로 5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엘니뇨가 나타나면 남미와 중앙아시아, 미국 남부 등에는 폭우를 유발하고 호주와 인도네시아, 남부아시아 등에 가뭄을 발생시키곤 한다.
문제는 올해의 경우 해수면 온도가 1.5℃ 이상 상승하는 ‘슈퍼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통상 엘니뇨가 슈퍼엘니뇨로 발전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지구온난화가 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슈퍼엘니뇨는 기상관측이 현대화된 1950년대 이후 딱 4번 발생했다. 1972년, 1982년, 1997년, 그리고 2015~2016년이다. 가장 강력했던 엘니뇨 현상은 2015년으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은 해였다. 가령 인도는 당시 5월 기온이 50℃ 가까이 치솟으면서 2330명이 숨졌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유례없는 가뭄이 발생해 쌀 생산량이 급감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를 중심으로 한 동아프리카에서는 폭우로 인해 1100만 명 이상이 극심한 식량 부족에 빠졌었다. 설상가상 고온 현상으로 전염병까지 창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콜레라, 말라리아 등 감염증이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최소 6000만 명의 건강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올해는 8년 만에 찾아온 슈퍼엘니뇨인 데다, 하필 지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상태라 ‘역대 최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최근 해수면 온도는 21.1℃를 돌파해 2016년 슈퍼엘니뇨 시기의 해수면 온도였던 21℃를 이미 경신했다.
우려되는 것은 본격적인 태풍 시즌인 9월 이후의 초대형 태풍이다. 일본 기상캐스터 모리 아키라 씨는 “슈퍼엘니뇨는 태풍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한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수증기 증발이 많아지고 그만큼 태풍이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가 많아져 그 위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모리 씨에 의하면 “엘니뇨 현상 때는 태평양 고기압의 확장이 약해져 태풍의 경로가 일본을 강타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실제로 슈퍼엘니뇨가 일어난 2015년은 일본 규슈 지방을 강타해 148명의 사상자를 낸 15호 태풍 ‘고니’, 혼슈 지역을 관통해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8호 태풍 ‘아타우’ 등 살인적 태풍이 차례차례 열도를 습격한 바 있다. 모리 씨는 “과거 최악의 태풍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며 “올여름은 예년과 같이 무더위와 기록적인 폭우, 초거대 태풍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니뇨가 초래하는 경제적 손실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엘니뇨가 오는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절정에 달할 확률이 84%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엘니뇨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지는 현상은 내년 여름이 절정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이상기후가 초래하는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올해 발생한 엘니뇨가 202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3조 달러(약 390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날씨 변화로 인해 농산물 출하량이 줄어들어 식량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세계건강연구소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는 공동연구를 통해 “지난해 5월 30일~9월 4일 사이 유럽 지역의 폭염과 관련된 사망자가 6만 1672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또한 “기온 상승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2040년까지 폭염과 관련된 사망자는 연평균 9만 4000명으로 증가하고, 2050년에는 12만 명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기후로 인해 그야말로 지구촌이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위기의식은 높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 ‘세이코엡손’이 2022년 11월 전 세계 소비자의 기후변화 인식과 심각도를 조사한 ‘기후 현실 바로미터’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기후위기가 본인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응답자가 2021년에는 46%였으나 2022년에는 오히려 48%로 증가했다.
기후위기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응답자 비율을 나라별로 보면 인도(78.3%), 중국(76.2%) 케냐(76%), 멕시코(66%), 인도네시아(62.6%) 순이었다. 반면 미국(39.4%)과 한국(33.3%), 영국(28.4%), 프랑스(22.5%), 일본(10.4%) 등은 평균 수준을 밑돌아 대체로 선진국이 신흥경제국보다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스타·커피 못 먹게 된다고?' 기후변화로 식탁에서 사라질 식품 6가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대책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기온이 조금 오른다고 해서 뭐가 그리 달라지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터. 그러나 온난화가 진행되면 폭우, 폭염, 가뭄, 산불 같은 자연재해가 증가해 일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깝게는 기후변화로 ‘먹을 수 없는 식품’이 생길지도 모른다.
1. 파스타
파스타의 주원료는 듀럼 밀이다. 향후 몇 년간 기온이 상승하고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 듀럼 밀 생산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듀럼 밀은 다른 품종에 비해 건조하고 시원한 계절을 선호하기 때문에 폭우가 내리면 품질이 손상될 수밖에 없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
2. 초콜릿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는 적도에서 북위와 남위 20도 이내에 해당하는 이른바 아열대 지역에서 재배된다. 최대 생산국은 코트디부아르로, 전 세계 카카오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카카오나무는 생육 조건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더위와 물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어야만 한다. 만약 2.3℃의 기온 상승이 일어날 경우 카카오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3. 커피
커피도 온도나 강수량에 민감하다. 기후변화에 약해 겨울에 서리가 내리거나 우기에 충분히 비가 오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버린다. 적도에서 북위 25도, 남위 25도 사이의 열대-아열대의 ‘빈 벨트(Bean Belt)’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향후 기후변화로 이 지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4. 땅콩
땅콩도 재배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오면 줄기가 말라붙고 곰팡이가 퍼지게 된다. 2011년 땅콩의 주요 생산지인 미국 남서부가 심각한 가뭄으로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땅콩 가격이 40%나 오르기도 했다. 앞으로도 미국 남부 지방은 여름에 더 덥고, 건조한 기후가 된다는 관측이다.
5. 꿀
기후변화로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꿀벌이 꿀을 모을 수 있는 시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와는 별도로 최근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사용으로 꿀벌이 급격히 감소 중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공급하는 100가지 작물 중 70가지 이상이 꿀벌에 의해 수분되고 있기 때문에 꿀벌의 감소는 상상 이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 같다.
6. 천연 연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는 숲뿐만 아니라 바다에도 흡수돼 해양 산성화가 진행 중이다. 바닷물이 산성화되면 조개류나 산호류가 껍질을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영국 플리머스대학에 따르면 연어의 먹이인 바다달팽이가 점점 줄어들면서 연어의 개체수도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