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학술지로 시작, 탐사 사진 대명사 불려…디지털 흐름 속 편집기자 전원 해고, 온라인은 건재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시작은 학술지였다. 1888년, 33명의 과학자가 설립한 비영리과학협회인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가 회원들에게 보내는 학술지 형태의 출판물이었다.
텍스트 중심의 출판물에서 광범위한 사진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는 잡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건 1905년 1월호부터였다. 당시 실렸던 티베트 풍경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를 계기로 급기야 1908년부터는 아예 잡지의 절반 이상을 사진으로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그후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수개월간의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진과 기사가 주를 이루는 탐사 잡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작가와 사진작가들이 지구의 가장 외진 곳들을 구석구석 탐험하고 기록한 사진들을 보면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전성기는 인쇄물의 전성기이기도 한 1980년대 후반에 찾아왔다. 처음으로 미국 내 구독자 수가 1200만 명을 돌파했으며,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도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게 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이기도 한 녹색 눈동자의 ‘아프간 소녀’도 이 즈음 세상에 공개됐다. 1985년 6월 표지를 장식한 이 강렬한 사진은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촬영한 것으로, 아프가니스탄의 12세 소녀인 샤르바트 굴라의 초상 사진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잡지의 모든 과월호를 모아놓은 디지털 형태의 ‘완전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컬렉션의 저작권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하면서 일시적으로 편집이 중단됐고, 급기야 소송에 휘말리고 말았다. 결국 저작권 분쟁에서 이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2009년 7월 발행을 재개했고, 2008년 12월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런 전성기는 곧 지나갔고, 쇠퇴기가 찾아왔다. 인쇄물의 인기가 점차 하락함에 따라 대부분의 잡지사들은 구독자를 잃거나 인쇄 사업을 완전히 접는 등 타격을 입었다. 이에 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매체공사연합(AAM)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미국 내 구독자수는 180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디지털 파도’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고, 수십 년에 걸쳐 어린이 잡지, TV 채널, 팟캐스트, 다큐멘터리 시리즈 등을 속속 선보였다.
가장 큰 변화는 2015년에 찾아왔다. 경영난이 심화되자 영리 목적의 합작회사인 ‘내셔널지오그래픽 파트너스’를 설립한 후 지분의 73%를 ‘21세기폭스’사에 넘겼다. 매각 대금은 7억 2500만 달러(약 9400억 원)였다. 나머지 지분 27%는 비영리 단체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소유했다.
이 거래에 대해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였던 게리 넬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파트너스’의 일관되면서도 매력적인 수익 흐름을 포함해 이 거래에서 창출된 가치는 전세계의 과학자와 탐험가를 지원하는 보조금 프로그램을 위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큰 규모와 영향력으로 임무를 오랫동안 이행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거래는 콘텐츠 제작 노력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선순환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7년, ‘월트디즈니’가 ‘21세기폭스’를 인수하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 파트너스’의 새 주인이 됐다. 디즈니 제국으로 편입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때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시달리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동안 막대한 부채가 쌓였던 ‘디즈니’ 입장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는 선택이었다. 2020년 중반까지 이미 약 540억 달러(약 70조 원)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부채가 쌓여 있었던 ‘디즈니’는 우선적으로 55억 달러(약 7조 원) 상당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삼았다. 여기에는 7000여 명의 직원을 감축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조조정의 바람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도 불어닥쳤다. 2022년 9월, 최고 편집자 여섯 명이 해고된 것을 시작으로 올해 6월에는 남은 기자들마저 전원 해고됐다. 몇 달 동안 현장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사진작가와의 계약 내용도 대폭 수정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이런 정리해고는 사실 출판업계 전반의 추세이기도 하다. ‘버즈피드’ ‘로스엔젤레스타임스’ ‘복스미디어’ ‘워싱턴포스트’ ‘CNN’을 포함한 여러 매체들이 이미 인원을 감축했다. 지난해 11월 말, ‘CNN’은 회사의 여러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 수백 명을 해고했고, 디지털 미디어 회사인 ‘버즈피드’의 최고경영자(CEO)인 조나 페레티는 2022년 12월, 전체 직원의 12%에 달하는 약 200명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로 인해 한때 이 회사의 주가는 역대 최저가인 주당 1.06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반월간 보수 논설 잡지인 ‘내셔널리뷰’는 “이번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정리해고를 본 사람들은 어쩌면 ‘아, 이제 아무도 그 잡지를 구독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꼭 그렇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가판에서만 사라질 뿐 매체 자체는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해 말 기준 178만 4999명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했으며,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는 총 1억 1790만 달러(약 1500억 원)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135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모금액이었다.
그런가 하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현재 2억 8000만 명 정도로,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가장 인기 있는 계정이다.
구달과 침팬지 교감 감동적…‘내셔널지오그래픽’의 걸작들
△아프간 소녀(Afghan Girl)=1985년 6월호 표지 사진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진이다. 미국의 사진기자인 스티브 맥커리가 파키스탄 페샤와르 근처의 난민 수용소에서 촬영했다. 당시에는 아프가니스탄의 12세 소녀라고만 알려졌지만, 훗날 샤르바트 굴라라는 이름의 소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굴라의 이 이미지는 일부 사회에서는 ‘수용소에 있는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고, 일부 서방 국가에서는 비극적인 아프가니스탄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에 빗대어 이 초상화를 ‘최초의 제3세계 모나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타이태닉호의 수중 뱃머리(The Underwater Prow of the Titanic)=2018년 실린 사진으로 사진작가 에모리 크리스토프의 작품이다. 깊은 심해에서 1만 와트의 전구를 사용해서 촬영했다.
△불안한 눈빛(Anxious Eyes)=제임스 스탠필드가 1987년 촬영한 사진이다. 1980년대 국가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폴란드의 낡은 의료시스템을 취재하던 도중 촬영했다. 심장외과 전문의인 즈비그니에프 렐리가 박사가 구식 의료기기에 연결된 환자의 바이탈을 고통스럽게 점검하고 있다.
△제인 구달(Jane Goodall)=유명한 영장류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이 콩고에서 함께 지냈던 침팬지 가운데 한 마리와 따뜻한 정을 나누는 순간을 포착했다. 1991년 마이클 니콜스의 작품으로, 콩고공화국의 브라자빌 동물원에서 촬영됐다.
△휴식 중인 북극곰(Polar Beat at Rest)=1998년, 독일의 야생 사진작가인 노르베르트 로징이 캐나다 마니토바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북극곰이 무방비 상태로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흔치 않은 사진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