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 과정서 윤 대통령 언급 징계 수위에 영향 가능성…총선 앞두고 내상 입었지만 차기 대권 포기 안 할 듯
#홍 시장, 정치적 내상 입어
홍 시장은 고정 지지층이 두텁고, 전국적 인지도를 갖고 있어 보수 진영 대권 후보군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정치인이다. 더군다나 국민의힘 텃밭 대구의 수장이라는 점과 보수 정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0~30대에게 소구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가장 앞서 있는 잠룡으로 거론돼 왔다.
이런 홍 시장에게 7월 26일 강펀치가 날아들었다. 이날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홍 시장에 대해 당원권 정지 10개월 중징계를 의결했다. 김기현 대표가 7월 18일 진상조사를 지시하고 같은 날 윤리위가 홍 시장 징계 논의 안건을 직권 상정한 지 8일 만에 속전속결로 내려진 결정이다. 홍 시장은 충청·영남 지역에 폭우가 쏟아진 7월 15일 골프를 치러 간 사실이 알려져 도마에 올랐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홍 시장의 정치적 위상까지 살펴본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홍 시장은 차기 대선에서 당내 유력한 후보로서 국민들은 그의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개인뿐 아니라 소속 정당까지 함께 평가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홍 시장의 현재 위치에 상응하는 책임성을 반영한 결정이라는 취지다.
윤리위가 홍 시장에게 내린 징계는 제명·탈당 권유보다는 약한 수준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중징계로 받아들여진다. 윤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했고, 윤리위가 시작된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징계가 나왔다는 부분에서 홍 시장에 대한 당내 기류가 몹시 좋지 않다는 해석도 뒤를 잇는다.
홍 시장 당원권이 정지되면 국민의힘과 대구시 간 당정협의 등에 일부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대구시장 직무를 수행하는 데 사실상 제약이 없다. 그런데도 실질적 효과를 보기 어려운 중징계를 내린 것은 일종의 ‘주홍글씨 새기기’라는 시각이 강하다. 향후 대선가도에서 당내 경선 상대의 집중 태클에 걸려들 소재가 될 수 때문이다.
홍 시장은 경남지사 시절이던 2015년 7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8년 만에 다시 징계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무죄로 결판나긴 했지만 홍 시장은 경남지사 때에 이어 대구시장을 할 때도 징계를 받았다는 굴레를 쓰게 됐다. 이는 차기 대선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구의 맹주로서 내년 총선 때 자신의 우군을 후보로 심을 수 있는 간접적 기회도 제약을 받게 됐다. 외부의 지명도에 비해 당내 지원세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 홍 지사로선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 흠이 없더라도 파고 또 파면 걸고넘어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수해 골프라는 오점은 홍 시장에게 큰 약점이 될 것”이라며 “차기 대선에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동력을 크게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누적된 불만에 괘씸죄까지
이번 중징계 결정은 홍 시장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반영된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징계수위는 독립기구인 윤리위가 최종 결정하지만, 당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경험 많은 당내 인사들의 전언이다. 홍 시장이 지자체장으로서의 영역을 넘어서는 정치적 훈수 발언을 너무 자주 하면서 불필요한 분란을 불렀고, 이에 대해 악화된 당내 여론이 징계 국면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홍 시장은 ‘윤심’을 앞세운 김기현 지도부 입성 이후 일관되게 김기현 대표에 대해 낮은 점수를 줬다. 홍 시장은 3·8 전당대회 직후인 지난 4월 9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노련한 정치력이 있는 사람을 다 제치고 정치력 없는 대통령을 국민이 뽑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노련한 자신은 경선에서 떨어지고 ‘0’선의 윤 대통령이 됐다는 의미였다. 이를 두고 친윤 그룹이 발끈했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4월 13일 김기현 대표는 홍 시장을 상임고문직에서 전격 해촉했다. 윤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게 해석이 우세했다.
홍 시장이 대구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커지는 그의 스피커 볼륨을 줄여줘야 한다는 압력도 징계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TK)은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가장 강한 지지세를 보낸 지역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과 굳센 동조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홍 시장의 자의적 목소리가 커지면 자칫 텃밭이 사분오열되고 전국 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7월 27일 MBC ‘뉴스외전 포커스’에 나와 홍 시장의 징계 수위 결정과 관련 “누구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김기현 대표가 징계를 했을 거란 생각은 안 할 거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징계를 지시했다고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한다”고 말했다.
괘씸죄가 추가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고개를 든다. 홍 시장은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자 대구 지역은 비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는 건 “견강부회”라고 반박했었다. 또 당시는 ‘비상 2단계’ 발령 상황이라 단체장은 담당 지역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는 규정을 지켰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또 “주말에 테니스 치면 되고 골프 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공직사회에 어디 있나”라며 “골프를 이용해 국민 정서법을 빌려 비난하는 것”이라고도 맞받아쳤다.
홍 시장은 해명 과정에서 “대통령은 다르겠지만, 그 외 공직자는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고도 말했다. 자신의 변호를 위해 대통령을 끌어들였다는 당내 비판이 터져 나왔다.
수해 골프, 그리고 변명과 반박으로 일관하는 태도에 대해 당내 기류는 물론 일반 여론까지 급격히 악화되자 홍 시장은 7월 19일 대구시청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홍 시장은 윤리위 징계 개시 결정 직후 SNS에 ‘과하지욕(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이라는 고사성어를 올리며 불만을 표출, 다시 논란을 자초했다. 그는 이후 해당 SNS 글을 스스로 삭제한 뒤 7월 24일부터 사흘간 경북도내에서 수해 봉사 활동을 하며 반성 행보를 이어왔지만 괘씸죄에 대한 성토까지 불거진 당내 기류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특유의 '오뚝이 근성' 다시?
홍 시장은 7월 26일 윤리위에 출석하지 않고 소명 자료만 제출한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했다. 징계 발표 후 SNS에는 “더 이상 이 문제로 갑론을박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 갈등이 증폭되고 재생산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는 아직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고 적었다.
홍 시장은 여러 차례 정치적 시련을 겪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난 경력을 갖고 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송파갑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스스로 의원직을 던졌다. 이후 2001년 서울 동대문 재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 복귀에 성공, 당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를 거쳐 당대표를 2번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패하자 보수의 심장 대구로 가 시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런 재기 전력을 볼 때 홍 시장이 이번 징계 파문으로 인해 내상을 입겠지만 차기 대권 행보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징계 후 그가 참여하는 소통채널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내년 공천을 어떻게 진행할지 흥미진진하다. 이제 국민의힘에는 지지하고 싶은 정상적인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 반드시 이번 일을 잊지 마시라”고 하자 홍 시장은 “발언권은 정지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등에 자꾸 칼 꽂는 저 배신자들을 어쩌면 좋을까요?”라는 물음엔 “한두 번도 아닌데 뭘 그리 신경쓰냐”고 했다.
강대강 여야 대치구도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도 홍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차기 주자로서 ‘스트롱맨’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구조가 홍 시장의 입지를 쉽게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란 논리다. 여권에서도 홍 시장이 특유의 이슈 파이팅을 통해 틈새를 헤집고 나와 정치적 무게감을 회복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