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최경환 안종범 등 공개 행보 나서며 세력화 조짐…‘당 이미지 악화냐, 보수 결집이냐’ 우려와 낙관 교차
윤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지난 대선 득표율 48%를 회복하지 못하는 가운데 윤·문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 여권으로선 보수 총집결을 노려야 한다. 이 경우 박근혜 정부 주역들까지 불러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친박의 재등장은 수도권 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로도 연결된다. 보수 진영의 교통정리가 여권의 새로운 난제로 떠올랐다.
#친박의 귀환, 보수결집 신호탄?
보수결집 차원에서 친박이 움직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부 실세였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6월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에 전격 등장하면서다. 청와대를 떠난 뒤 첫 언론 인터뷰였다. 우 전 수석은 이 인터뷰에서 기자가 “세간의 관심은 내년 총선 출마에 쏠려 있다”고 묻자 출마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출마하라는 전화도 많이 오고, 또 요즘 평소에 알던 사람들 만나도 항상 그것부터 물어보고 그런다. 하지만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보다는 그래도 평생 공직에 있었으니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정치 지망생들이 지정곡처럼 읊조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2021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실형을 확정 받았지만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을 받고 복권됐다. 출마를 위한 법적 장애물이 사라짐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우 전 수석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본다. 우 전 수석이 출마한다면 고향인 경북 영주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우 전 수석의 출마 지역구로 예상되는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선거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영주시다. 우 전 수석은 영주고를 졸업한 영주 출신이다. 영주 출신이 이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데 우 전 수석은 일단 이 부분에서 이 선거구 지역민들에게 ‘먹힌다’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더욱이 이 지역구 현역 의원은 초선 박형수 의원으로 지명도에서는 우 전 수석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뇌물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돼 복역·출소한 뒤 좀처럼 외부활동을 하지 않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도 최근 공개 활동을 재개, 그의 움직임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친박의 리더로 불리면서 경북 경산에서 4선을 했던 최 전 부총리 역시 사면됨으로써 내년 총선 출마의 걸림돌은 없다. 경산에서 명예회복을 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최 전 부총리는 5월 25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 전직 경제 관료 자격으로 기자들의 경제 현안 질문에 답하면서 말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대내외 여건이 워낙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경제 연착륙을 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 이렇게 되면 결국은 일본처럼 축소 균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처방전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경산에서 지역구 의원을 하는 도중에 경제부총리를 지냈기에 지역 내 여러 인프라 구축에 여러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 최 전 의원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동정 여론도 곳곳에서 나온다. 현재 경산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초선 윤두현 의원의 지역구다.
최 전 부총리가 내년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한 적은 없다. 아직 입을 떼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다른 ‘직’을 원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가 경제 원로로서 기업이나 단체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복심이자 최측근으로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 역시 내년 대구 출마설이 나돈다. 그는 지난해 대구시장 국민의힘 경선과 대구 수성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경선에 잇따라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대구 정치권은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도와주고 있는 유 변호사에게 출마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
출마와는 관계없이도 ‘친박’은 본격적으로 양지로 나와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원장으로 있는 정책평가연구원(PERI)은 6월 20일부터 이틀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심포지엄을 열었다. PERI는 안 전 수석이 지난해 5월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를 표방하며 설립한 민간 연구소로, 국가 정책 평가를 한다.
이날 행사에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등 전직 관료는 물론,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과 최상대 제2차관,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장 등의 현직들도 일제히 나와 행사의 무게를 한껏 올려놨다. 당초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참석한다고 알려졌으나 두 사람 모두 다른 일정 때문에 영상 축사로 대신했다. 안종범 원장은 이날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는 내놨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출소한 안 전 수석은 다른 친박 인사들과 달리 지난해 12월 사면 대상에 들어가지 못해 내년 총선 출마는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만 봐도 친박의 세력화가 다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한목소리가 정치권에서는 나온다.
#수도권은 어쩌나
친박계가 조금씩 움직이는 신호를 감지하고 있는 여당 내에서는 “걱정할 것 없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보수의 총결집 차원으로 봐줄 수 있어 영남권 선거에는 플러스가 될 측면도 있겠지만 과거로의 회귀로 보는 시각이 나타난다면 내년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를 망치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친박 계보를 갖고 있는 윤상현 의원조차 우려를 나타냈다. 인천을 지역구로 둔 그는 6월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우병우 전 수석 총선 출마설에 대해 “아마 국민의힘에서는 공천을 안 줄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윤 의원은 “본인의 고향이 경북 영주 아니냐. 그곳에선 또 (우 전 수석을) 어떻게 볼지 모른다. 본인은 아마 명예회복을 하고 싶은 정치적인 동기를 가질 것”이라면서 출마 가능성을 낮게 보지는 않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수도권이 가뜩이나 약한데 친박 복귀가 이뤄지면 수도권에서 당 이미지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 6월 중순 기준 국민의힘 253개 당협 중 40곳이 사고 당협이다. 최근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이 중 36곳에 대한 조직위원장 공모를 결정했다. 그런데 사고 당협 공모 지역을 보면 서울 9곳, 경기 14곳, 인천 3곳, 부산 1곳, 울산 1곳, 경남 1곳, 대전 2곳, 세종 1곳, 충남 1곳, 강원 1곳, 전북 1곳, 제주 1곳 등으로 ‘빈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수도권에 사고 당협이 많은 것은 격전지에서 뛰어줄 전사를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수도권에서 강한 더불어민주당에 맞서려 하는 희망자가 드물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인물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김기현 대표도 6월 2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빈 곳이 참 많고, 코너에 몰려 있다”고 털어놨다.
강남과 강북을 오르내리며 서울에서 4선을 지내 수도권 사정을 잘 아는 홍준표 대구시장도 6월 13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도권 걱정을 쏟아냈었다. 그는 “의석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자원들마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빠져나가 인재 고갈상태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수도권은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 세대교체 등의 키워드에 굉장히 민감하고 이 키워드를 공략했을 때 많은 득표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친박계 인사들이 다시 나올 경우 수도권 민심이 큰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다”며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윈윈’ 교통정리는 어떻게?
여권 핵심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일단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로 거처를 옮겨 활발하게 스피커를 가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조용한 퇴임 대통령의 삶을 살면서 여권이 분열될 수 있다는 의견 제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국가원로답게 말과 행동에 지극히 신중함을 기하는 박 전 대통령 태도가 윤 대통령 권위를 살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여권 핵심부의 판단이다.
서울이 고향인 윤 대통령은 지역 기반이 전혀 없는 터라, 대구·경북에 여전히 지지세를 갖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행보는 보수층 표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 측이 현 여권과 조화되는 모습, 그리고 보수가 공고하게 통합돼 있다는 상황을 잘 만들어주고 있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전했다.
때문에 여권 핵심부는 일부 친박계 인사들에 대해 기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정서에 반할 만큼 큰 흠결이 없고 본인이 정치 활동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심사를 한번 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경우, 수도권 표심을 중심으로 거부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지역구가 아니라 비례대표 공천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존재한다. 일부 의원들은 경쟁이 가열되면 공천 탈락에 불만을 품은 일부 친박 인사들이 혹여 ‘친박당’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박 전 대통령이 측근 유영하 변호사의 대구시장 경선 참여 때 영상 메시지를 올려 지지 의사를 직접 밝힌 사례를 소환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긴다는 당내 목소리도 있다.
친박계 인사들이 절대 모험적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의외로 강하다. 내년 출마자로 거명되는 친박 인사들 대다수가 공직자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사생결단식으로 뛰어드는 행동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 인사권한이 광범위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권 핵심부가 나서 정치적 조율에 나선다면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