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지분 처분, 차녀 서호정 씨 증여…경영 성과 탓 휴직? 아모레퍼시픽 “관련성 없다”
서민정 담당은 2017년 1월 아모레퍼시픽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같은 해 6월 퇴사한 뒤 중국 장강상학원(CKGSB) MBA 과정에 입학해 14개월간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을 공부하는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2019년 10월 아모레퍼시픽 본사 뷰티영업전략팀의 프로페셔널(과장)로 복귀했으며 2021년 2월 아모레퍼시픽그룹 전략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이듬해 1월 아모레퍼세픽 럭셔리브랜드 Division AP팀 담당을 맡았다. 서민정 담당은 그간 아모레퍼시픽그룹 경영 승계자 후보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서민정 담당이 갑작스레 휴직을 하면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승계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서민정 담당이 경영권 승계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열사 주식을 연이어 포기하면서 의혹은 커졌다. 서민정 담당은 지난해 9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계열사 ‘에스쁘아’와 ‘에뛰드’ 지분을 잇달아 소각한 데 이어 최근에는 보유하고 있던 이니스프리 주식 절반 이상을 그룹 재단에 기부했다.
서민정 담당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아모레퍼시픽그룹 주력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기준 ‘에스쁘아’와 ‘에뛰드’ 지분 각각 19.52%, 19.5%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니스프리 지분 18.18%를 갖고 있어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서민정 담당은 에스쁘아와 에뛰드 주식 전량을 처분하고 이니스프리 지분만 남겼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니스프리가 (에스쁘아·에뛰드에 비해) 아모레퍼시픽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서 서민정 담당이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을 승계할 때 이니스프리 지분을 적극 활용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민정 담당은 뒤이어 지난 6월 서경배과학재단에 본인이 보유한 이니스프리 주식 2만 3222주(지분 9.5%)를 기부했다. 서경배과학재단은 2016년 9월 서경배 회장이 사재 300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공익재단으로 생명과학 중심의 기초연구 육성 및 연구활동 지원을 목적사업으로 하고 있다. 기부 이후 서 담당은 이니스프리 2대 주주(18.18%)에서 3대 주주(8.68%)로 밀려났다. 서경배과학재단은 서민정 담당이 기부한 이니스프리 주식을 이니스프리에 되팔아 557억 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상장사(이니스프리)가 (기부한) 자사주를 다시 매입하는 게 경영학 관점에서 봤을 때 드문 경우”라며 “서 담당이 주주로서 권리행사만 하고 경영에 불참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고 말했다. 한 회계사는 “이니스프리의 지분 가치가 적지 않은데 큰돈을 빼서 날렸다는 건 서민정 담당이 크게 뭘 잘못해서 패널티를 준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간 서민정 담당의 경영 능력에 대해 유통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서 담당이 승계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언급됐던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계열사들이 실적 악화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특히 이니스프리는 2016년 11월 누적 매출 1조 원 돌파를 공식화하며 단일 브랜드숍 중 처음으로 1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후 매출 하락이 이어졌다. 1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2016년 당시 이니스프리 매출은 7679억 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2997억 원을 기록했다. 6년 새 매출이 반토막 난 것이다. 이니스프리는 2019년부터 신규 개점을 중단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서민정 담당이 중국 유학을 통해 현장 경험을 쌓은 만큼 중국 사업에 적극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한·중 관계 악화,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 변화 등으로 중국 시장이 불안정해졌다”면서 “(서 담당이) 중국 유학파 출신이고 럭셔리 브랜드를 담당하니 ‘설화수’ 같은 브랜드로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봤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경배 회장이 장녀 서민정 담당과 차녀 서호정 씨를 승계 경쟁 관계로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서민정 담당은 현재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 2.66%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06년 아모레퍼시픽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아버지 서경배 회장에게 구형우선주 241만 2710주를 증여받아 아모레퍼시픽그룹 신형우선주로 교환했다. 2016년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서 서 담당은 아모레퍼시픽그룹 2대 주주에 올랐다.
차녀 서호정 씨는 지난 5월 서경배 회장에게 아모레퍼시픽그룹 보통주 67만 200주와 우선주 172만 8000주를 증여받았다. 이후 서 씨의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은 0.16%에서 2.63%로 늘어 서민정 담당이 보유한 지분 2.66%와 비슷해졌다. 앞의 회계사는 “서경배 회장이 ‘둘이(서 담당과 서 씨) 동일한 지분을 가지고 (승계에 대한) 공정한 경쟁을 해봐라’라는 의중이 담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아모레퍼시픽 측은 서 씨의 입사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서민정 담당의 경영 성과가 이번 휴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김계수 교수는 “기업의 리더는 조직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에게 비전과 경영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며 “리더가 비전 제공 능력이 부족하면 조직 구성원은 이탈하기 시작하고, 기업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민정 담당의 휴직이) 승계 전략 수정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서 담당이 주력해 온 회사의 경영 성과가 좋지 않았던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 담당은) 경영진이 아니라 담당으로 있었기 때문에 경영 성과와 휴직을 연결시키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