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등 압박 있지만 합병 앞두고 곳간 열 상황 아냐…대한항공 “계획에 맞게 항공기 교체 진행 중”
#노후항공기로 5000km가 넘는 거리까지 운항
ATIS 항공기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보유한 항공기 167대 중 18%에 달하는 30대가 기령이 20년이 넘은 경년 항공기다. 대한항공의 경년 항공기 비중은 다른 항공사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아시아나가 15.3%이며 LCC(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는 14.8%, 제주항공은 7.89% 수준이다.
전세계 항공편 현황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플라이트어웨어’를 통해 대한항공의 경년 항공기 30대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 중 추적이 안 되는 1대를 제외하고 20대가 여전히 여객기로 운항 중이다. 대부분의 경년 항공기가 제주와 내륙을 오가고 있었지만 중국, 일본, 태국, 몽골 등 국제선에도 운항된다. 기령이 24년인 항공기가 8월 3일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까지 5293km에 이르는 거리를 6시간 41분에 걸려 비행한 사례도 눈에 띈다.
항공기는 제작 후 20년이 지나면 노후화된 기재로 분류된다.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사에서 권고하는 비행기의 사용 기령도 20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토교통부도 2015년 항공사와 ‘경년 항공기 자발적 송출협약’을 체결하고 항공기 기령이 20년에 도달하기 전에 항공사 스스로 송출시키도록 독려한 바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작사에서 착륙 횟수나 비행 시간 등 제작 단계에서 예측해 둔 사용한계치가 있지만 사실 20년보다는 훨씬 길다”며 “다만 국토교통부는 20년으로 강화해서 기준을 만들어뒀다. 항공안전법 정비규정에 따라 20년이 넘은 항공기는 특별 정비프로그램에 포함돼 안전감독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경년 항공기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항공기는 정해진 비행시간과 운항 횟수를 채우면 A체크, B체크, C체크 등을 통해 정례적인 정비를 거치므로 사용 연한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항공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휘영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경영과 교수는 “20년이 지났다고 해서 노후기라고 정의하는 것이 난센스인 것 같다. 정비 중에 규정대로 사용한 엔진과 부품은 전부 갈아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경철 한국항공대학교 한국항공안전교육원 부원장도 “항공기는 기령이 오래됐다고 해서 낡은 비행기라고 하지 않는다. 정비 매뉴얼이 워낙 철두철미한 데다 만약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항공사는 적발 시 엄청난 페널티를 입고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 관해서는 신뢰할 만하다”고 말했다.
안전 문제와 별개로 탈탄소 정책 등을 고려하면, 경년 항공기 교체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항공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고효율 항공기 도입을 통한 연료 효율 개선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현재 국내 배출권거래제와 국제항공 탄소상쇄제(ICAO CORSIA), 유럽연합(EU) 배출권거래제 등을 적용받고 있다. 향후 항공수요 회복에 따라 배출권 발생 비용 상승이 예상된다.
최신 항공기인 A220-300이나 A350-900, B787-9 등은 모두 동급 기종 대비 좌석당 연료 소모량 및 탄소 배출량이 25% 가까이 감축된다. 대한항공이 운항 중인 노후항공기 중 과반이 넘는 기종인 A330-300은 경쟁 기종인 B787-9 대비 항속거리는 짧고 연료 효율은 약 80% 수준에 그친다. A330-300은 2020년 이후 생산되지 않고 있다. 이휘영 교수는 “항공사들도 탈탄소 압박이 거세지는 탓에 여력이 되는 한 경년 항공기를 폐기하고 신규 기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년 항공기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안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업이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서비스업이다. 승객이 기내에 진입했을 때 노후한 기재의 경우는 정비 여부와 상관없이 노후화된 느낌이 있고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요소가 있다”며 “공간 마케팅에 소비자들이 생각보다 민감하다는 점도 서비스업에서는 고려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경년 항공기 교체 계획은 있는데…
대부분의 항공사는 기재 가격이 너무 비싼 까닭에 리스로 운용을 한다. 리스는 운용리스와 금융리스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운용리스는 계약기간 동안 리스비를 낸 후 계약이 끝나면 기재를 반납해야 하지만 금융리스는 상환이 끝나면 소유기로 전환이 된다. 대한항공의 경년 항공기는 모두 ‘구매’한 항공기로 처음부터 기재를 직접 구매했거나 금융리스를 통해 대여한 후 상환을 마쳤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이 경년 항공기 교체를 위해 운용리스를 선택할 경우 추가적인 비용부담이 생긴다. 국내 다른 항공사들은 노후 항공기의 운용리스 비중이 높다.
항공기 가격 상승과 품귀 현상도 항공기 교체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전환으로 여행 수요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전세계 항공사들이 반납한 리스 항공기를 다시 복원시키는 과정에서 항공기 가격 상승과 품귀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보잉사든 에어버스사든 연간 생산량은 이미 다 계획이 되어 있고 지금 주문도 많이 밀려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어쨌든 최대한 보유기를 갖고 활용하고 유지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 결합 승인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결합이 성사될 경우 아시아나가 갖고 있는 천문학적인 부채가 대한항공으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의 연결 재무제표 기준 1분기 부채비율은 2013%로 작년 말 1780%에서 233%포인트 상승했다. 황용식 교수는 “아시아나의 부채는 쌓이고 있고 M&A를 앞둔 인수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적인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양사 모두 신규 기재 도입이나 신규 투자 등과 관련해서는 당장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향후 기업결합이 성사될 경우 경년 항공기의 폐기 확률이 올라갈지도 관심사다.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외 경쟁당국이 독점 해소를 요구하고 있어 합병 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 중인 미국, EU, 중국, 일본 등의 국제선 슬롯을 다수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슬롯이 회수되면 기재 운용의 여유분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노후 기종의 운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론도 있다. 대한항공이 합병 성사 후 슬롯 반납을 요구하는 국가를 제외한 다른 곳에 줄어든 슬롯만큼 신규 취항을 하거나 증편을 하는 방식으로 경년 항공기를 운용해 대응할 확률이 높다는 지적이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슬롯 감소를 호락호락하게 수긍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생각보다 많은 나라들이 항공자유화 노선이라서 다른 곳에 공항 슬롯만 확보가 된다면 증편도 할 수 있고 혹은 합병 성사 후 리스 비중이 높은 아시아나의 경년 항공기를 반납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은 “항공기 기재 교체와 관해서는 내부적으로 중장기적인 결정 기준이 있고 현재 계획에 맞게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 경년 항공기 중에서는 중대형기인 B777 2대와 소형기 B737-800/900 1대를 내보냈고 소형기 A321-네오를 신규 도입한 상황이다. 향후 순차적으로 고효율 신형기를 도입하며 경년 항공기를 송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