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사별 후 18년간 시부모 모셔” 발언에 시누이 “18년간 악담·협박에 부모님 쉬이 눈 못 감아” 저격
본인을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시누이라고 소개한 김 아무개 씨는 지난 8월 5일 한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에 ‘김은경 위원장의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앞서 김 위원장은 ‘노인 비하’ 논란이 이어지자 8월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방문, “남편과 사별한 뒤 시부모를 18년간 모셨고 작년 말 선산에 묻어드렸다”며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 적이 없다”고 사과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를 포함해 단 한 차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고, 공경심은커녕 18년 동안 김은경 위원장에 온갖 악담과 협박을 받았고 돌아가시면서도 쉬이 눈을 감지 못했다”며 “(김 위원장의 발언은) 도를 넘는 행위고, 이런 사람은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김은경 위원장은 김 씨의 오빠 A 씨와 1992년 한국외대 법대에서 만나 결혼, 독일 유학을 떠나 김 씨 부모가 김 위원장 부부의 아이를 맡아 키웠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는 “A 씨가 먼저 귀국해 아버지 밑에서 사업을 배우면서,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독일로 돈을 보내고 아이를 부모님과 키우는 기러기 아빠가 됐다. 김 위원장은 독일 만하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대학교 강사 기회를 갖고 교수라는 명함을 얻게 됐다”며 “그 당시 부부는 A 씨의 재력과 양육 도움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고 자랑삼아 얘기했다”고 했다.
김 씨의 부모는 손주를 최고의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는 등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은경 위원장은 귀국 후 학교 일이 바쁘다며 시댁 일에 등한시하더니 손자까지 길러준 시부모와 갈등이 심해졌고, 말끝마다 60세가 되면 이혼할 거라고 하며 남편 A 씨와 사이가 멀어지고 있음을 암시했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러던 중 A 씨는 2006년 1월 부인 김 위원장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는 그 날의 상황 진술이 엇갈린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A 씨가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서 사랑한다 말했는데, 들어가더니 갑자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한 반면, 당시 서너 살이었던 김 위원장의 둘째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막 싸웠다. 그래서 아빠가 화가 나서 뛰어내렸다”고 했다는 것. 장례식에 온 A 씨 친구들 역시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A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의심을 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 씨에 따르면 김 씨 가족은 A 씨의 부검을 원했지만, 김은경 위원장은 그럴 필요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특히 A 씨가 사망한 뒤 어수선할 때 부친의 사업체가 김 위원장의 친동생 명의로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어찌 된 일인지 사업체는 A 씨가 죽기 직전 부친 이름에서 A 씨의 이름으로 전환돼 있었고, 죽고 나니 곧바로 김 위원장 친동생 이름으로 바뀌었었다. 부친은 즉시 시정 요구하고 법에 호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손을 써볼 방법이 없었다”며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진 일이고, 워낙 법적으로 잘 아는 김 위원장이라 우리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후 김 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어머니가 충격으로 쓰러졌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모셔지고, 아버지 또한 기력이 다해 시골로 터전을 옮겼다”며 “그래도 부모님은 손수 키운 손자의 연까지 끊을 수 없어 명절에 손자의 통장으로 용돈을 넣어주며 끈을 이어나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은경 위원장은 명절은커녕 남편인 A 씨 제사에도 한번 참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씨는 “그렇게 어렵게 18년을 살다가 2년 전 어머니를 먼저 보냈다. 아버지는 지난해 겨울,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이 너무나 그리워 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김 위원장이 ‘시부모를 선산에 묻어드렸다’고 말한 데 대해 “겉으로 보기에는 사별한 남편의 시아버지 장례식장에 며느리 노릇을 한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라면서도 “잘난 금감원 부원장이라는 타이틀로 온 부의금을 챙겨가는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김 위원장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 흙 한 줌 뿌리라는 말도 손사래치며 거절했다”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김 씨에게 김 위원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따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김은경 위원장과 혁신위 측에도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따로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김은경 혁신위는 8월 20일까지 ‘공천룰 개선’ 등 내용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하고 사실상 활동을 종료할 계획이다. 당초 9월 초까지 활동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조기종료’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김은경 혁신위는 출범 당시부터 여러 구설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부적절한 일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 위원장은 거센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김 위원장 인선을 주도한 이재명 대표 책임론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