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부인·딸 유학 보내고 ‘기러기’ 생활
▲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1995년 3월 (주)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할 당시 안철수 대표이사의 주소지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역삼럭키아파트. 서초동의 안 원장 회사와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당시 직장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의 중간 지점. 전용면적 124.7㎡(약 37.8평)의 중대형이다. 물론 그의 소유도 아니었거니와 전세권 설정 등 부동산등기부상 그가 살았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이 시절이 안 원장에겐 가장 힘들었던 때.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회사를 차리고 몇 년 동안은 정말 어려웠다. 매달 25일에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해서 물건 대금으로 받아놓은 어음을 은행에 들고 가 ‘어음깡’을 해야 했다”며 “내 친구들 모두 의사로 대접받으며 편하게 사는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회사를 차리고 일을 하다 보니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안 원장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3년간 성공의 발판을 다진 뒤 1998년 3월 ‘문정동 시대’를 연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훼밀리아파트 ×1×동으로 주소를 옮긴 것. 훼밀리아파트의 전용면적은 136.3㎡(약 41.3평)으로 이전 럭키아파트보다 커졌다. 2002~2004년 2년간 오피스텔로의 이전을 제외하면 안 원장은 동을 바꿔가며 10년 넘게 문정동에 주소지를 뒀다.
그리고 2001년부터 집과 관련해 안철수 원장에게 큰 변화들이 잇따른다. 먼저 그해 1월 회사가 서초동과 삼성동을 거쳐 강남구 수서동에 자리를 잡았다. 문정동 안 원장 주소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집에서 나와 탄천만 건너면 바로 사무실이다. 그해 9월 안철수연구소의 코스닥 상장 바로 한 달 뒤인 10월 안 원장 부인 김미경 교수가 훼밀리아파트 ×0×동 6층에 한 채(전용면적은 136.3㎡)를 매입한다. 알려진 바로는 그 아파트가 안 원장 가족이 보유했던 유일무이한 주택.
그렇게 처음 ‘자가 주택’이 생겼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안 원장은 2002년 3월부터 2년간 수서동의 오피스텔로 주소지를 옮긴다. 바로 회사가 입주해 있는 곳으로 사무실은 8층, 안 원장 주소지는 13층이었다. 안 원장이 주소지를 옮기기 직전 1년 동안 회사가 4500만 원에 전세권을 설정해 놓았던 곳이기도 했다.
해당 오피스텔의 전용면적은 39.6㎡(약 12평)에 불과했다. 인근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고 스팀으로 난방을 해 주거에는 부적합하다”면서 “일부 주거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업무용”이라고 밝혔다. 당시 안 원장이 실제로 거주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안철수 원장 측 유민영 대변인은 먼저 회사의 전세권 설정에 대해 “(IT회사 등) 개발자들이 있는 회사는 직원 숙소용으로 그렇게 (전세를 얻고는) 한다”고 설명했다. 안 원장의 실 거주 여부에 대해서는 “위장전입은 자녀 교육이나 재산권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럴 이유가 없다”면서 “안 원장 딸 설희 씨는 2002년 초등학교 졸업 후 유학 가는 어머니 김미경 교수를 따라 미국으로 가 거기서 중학교부터 다녔다”고 밝혔다. 주소 이전에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교수는 2002년 4월 말 재직 중이던 서울삼성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안 원장의 주소지와 실 거주지, 당시 생활 등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계속되자 유 대변인은 “이사, 주소 이전 등은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공인에게도 사적 영역이 있다”며 더 이상의 답변은 하지 않았다.
안 원장이 해당 오피스텔에 실제 거주했다면 2001년 9월 안철수연구소를 코스닥에 상장, 당시 평가액 1000억 원대 주식 거부가 됐음에도 2년간 불편한 환경에서 외로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셈이다. 안 원장은 2003년 한 인터뷰에서 “딸과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부인이 매일 새벽 1~2시에 잠들어 아침 6시면 일어나는 강행군을 하고 있어 혹여 건강을 해칠까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밝히며 가족을 더 걱정하는 희생적 가장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 원장이 오피스텔 생활을 청산한 건 회사가 수서동을 떠나 여의도로 이전한 직후인 2004년 2월. 드디어(?) 부인 김 교수 명의의 문정동 훼밀리아파트 ×0×동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처음으로 자가 주택에 둥지를 튼 셈이다. 법인등기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 원장의 주소는 그가 대표이사에서 사임하는 2005년 3월까지. 다만 2008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미경 교수가 부동산등기부상 지난해 9월 이 아파트를 11억 원에 팔기 전까지는 주소지가 유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 부동산등기부의 김 교수 주소지도 변화가 없었다.
공교롭게 김 교수가 아파트를 판 9월 전후 안 원장의 정치적 격동기가 시작된다. 9월 초 서울시장 출마설이 터져 나오자마자 후보를 양보했고 10월엔 박원순 후보 공개지지, 11월엔 1500억 원대 재산 기부 선언 등으로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12월 소유권 이전등기에 따라 김 교수의 아파트 매각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는데 정치적 소용돌이와 맞물리며 대선 출마를 위한 재산 정리 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말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졌을 때 안 원장의 주소지는 문정동에서 서울 이촌동 한강맨션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맨션은 안 원장의 장모 송 아무개 씨의 소유. 당시 안 원장의 실제 거주지는 여의도 오피스텔로 전해져 논란이 일었다. 현재 안 원장의 거주지는 용산구 용산동의 주상복합오피스텔(전세)로 알려진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