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거물 A 씨도 검찰 내사중
▲ 지난 4월 6일 당시 박근혜 선대위원장이 4·11총선에 출마한 후보의 지원유세를 펼치던 모습. 공천헌금 파문이 박 전 위원장 대선가도의 최대 악재로 떠올랐다. 임준선 기자 |
검찰 수사가 새누리당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친박 핵심인 현기환 전 의원에 이어 A 씨 등이 불미스런 일로 도마에 오를 경우 박 전 위원장도 그 후폭풍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선자금 차떼기’ ‘전당대회 돈봉투’ 등 돈 문제와 관련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박 전 위원장으로선 대선 행보의 최대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한마디로 ‘멘붕(멘탈 붕괴)’이다. 차떼기 악몽이 떠오른다.”
지난 8월 2일 공천헌금 사태가 불거진 직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와 만난 한 당직자의 말이다. 그는 “솔직히 공천헌금이 오간 것은 공공연한 관행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박 전 위원장 쇄신 의지가 강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친박 핵심인 현기환 전 의원이 의혹을 받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며 허탈해 했다.
당사 맞은편에 위치한 박근혜 캠프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무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번 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포착됐고, 일부 친박 의원들은 긴급 회동을 갖기도 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일이 손에 안 잡힌다. 하필이면 경선을 치르는 도중에 터져 난감하다. 비박주자들과 야권 공세가 거세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일단 박 전 위원장 측은 검찰 수사 결과를 두고 보며 대응을 자제하자는 입장이다. 당사자들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나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현 전 의원 등은 공천헌금 사건이 보도된 후 박 전 위원장에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은 8월 2일 새누리당 대선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비박주자들이 공천헌금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책임론’을 꺼내들자 “검찰에서 사실 확인을 하겠지요”라며 즉답을 피했다. 홍사덕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은 “누가 보좌관을 안시켜줬다고 불만을 품고 선관위에 제보한 모양”이라며 “보도 내용을 알아봤지만 사실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놓고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공천 당시 현영희 의원의 비례대표(23번) 선정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의원은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진 뒤 다시 비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후보였다. 당시 부산지역에선 ‘친박’ 몫으로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현기환 전 의원이 현 의원 뒤를 밀어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캠프 내에선 현 전 의원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올해 3월 경 현 전 위원이 공천을 놓고 뒷거래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박 전 위원장 측이 주의를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 이런 문제가 터졌다”고 귀띔했다. 사실 현 전 의원은 지난 2008년 총선 공천에서 친박 학살을 주도했던 친이계 중 한 명인 정종복 전 사무부총장을 빗댄 ‘현종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천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특히 부산을 포함한 영남권 공천 과정에서 현 전 의원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은 정설로 통한다. 논문 표절로 탈당한 문대성 의원이나 야권 거물 문재인 의원과 맞붙은 손수조 후보 공천도 현 전 의원이 주도했다. 그러나 친박 일각에선 현 전 의원의 ‘튀는’ 행동을 자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번 제기됐었다고 한다. 재선급 친박 의원은 “현 전 의원이 공추위(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와 친박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긴 했지만 좀 과장된 측면이 있다. 현 전 의원이 사적인 목적으로 특정 인사 공천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소문이 계속 들려 박 전 위원장 측이 경고를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박 전 위원장을 필두로 하는 친박계가 당을 장악한 상황에서 공천이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친박계 인사들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말번(23번)이 3억 원이면 상위 순번의 공천헌금은 이보다 더 했을 것이다. 새누리당 비례의원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금배지’를 원하는 후보자들이 누구한테 줄을 대려 했겠느냐. 당 주류인 친박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뒤 “박 전 위원장의 용인술도 문제다. 구 정치인들에게 공천헌금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 참신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또 다른 사례들도 나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과 캠프 역시 이 부분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검찰은 “선관위에서 건넨 자료만 볼 것이다. 수사 확대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이번 건 외에 자체적으로 확인 중인 공천헌금 의혹이 있다”고 밝혀 수사 확대 가능성을 열어놨다.
실제로 검찰은 친박 중진인 A 씨가 ‘공천장사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5월경부터 내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타공인 박 전 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A 씨는 평소 친분 있는 지인이 당선 안정권인 비례대표 앞자리에 배치되도록 힘을 써주고 수억대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은 몇몇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도 A 씨가 입김을 행사한 정황을 잡고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 추적 등을 통해 A 씨가 연루된 의혹 일부를 확인한 상태”라고 털어놨다. 정치권에서는 A 씨가 지난 4·11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총 다섯 명의 ‘지분’을 보장받았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검찰은 영남권의 또 다른 비례대표 의원 한 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공천을 둘러싸고 계속되는 이러한 구설들은 박 전 위원장의 대권 행보에 직접적인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승덕 전 의원의 돈봉투 폭로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맡으며 당 전면에 나섰던 박 전 위원장이 공천 개혁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론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캠프 관계자도 “의혹의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떼기’와 ‘돈봉투’ 사태 때 당을 구하기 위한 소방수로 등판했던 박 전 위원장이 이번엔 돈 문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형국이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인 손학규 캠프 관계자는 “박근혜식 공천개혁이 허울뿐임이 드러났다. 박 전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