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 스토리 지적 일었지만 ‘VFX’로 우주 완벽 구현…“영화 볼 때 선배들 연기 보면서 눈물 흘려”
이승과 저승을 거쳐 이번에 향한 곳은 우주였다. 이제는 아이돌 ‘디오’만큼이나 본명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배우 도경수(30)의 과감한 도전을 두고 주변의 반응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고 했다. 유독 ‘국산’이 붙으면 영화고 드라마고 힘을 쓰지 못하는 SF 장르, 그것도 달 탐사에서 발생한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먼저 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이제 한번쯤은 나와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도 이어졌다. 도경수도 그 희망에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걸었다.
“사실 저는 한국이 SF 불모지라는 걸 최근에서야 듣고 알게 됐어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같은 영화들을 많이 봤거든요. 개인적으로는 SF 장르에서 실제로 체험할 수 없는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리만족이 됐기 때문에 이런 장르를 다른 분들도 다들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랬다가 (한국은) 불모지란 이야기를 듣고 놀랐죠(웃음). 그런데도 ‘더 문’의 출연을 결정하게 된 건 제가 평소에 도전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 제가 겪을 수 없는 걸 캐릭터를 통해 간접 체험하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도전했을 때 얻는 성취감과 기대도 크고요.”
도경수의 신작 ‘더 문’은 유인 달 탐사선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달에 홀로 남겨진 우주 대원 황선우(도경수 분)의 생존 여정과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설경구 분)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한국 영화 최초로 달 탐사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SF 팬들의 많은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특히 ‘신과 함께’ 시리즈(2017~2018)와 ‘백두산’(2019) 등 전작을 통해 시각효과(VFX) 기술력을 인정받은 김용화 감독이 선보이는 첫 우주 공간이었기에 기대감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8월 2일 개봉 이후 비록 국산 영화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신파 스토리를 놓고 지적이 일었지만, 웅장한 스케일이 주는 장엄한 시각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만큼 완벽하다는 평이 나왔다. 관객뿐 아니라 실제 출연한 도경수마저 “저도 ‘내가 이런 신을 찍었었나?’ 할 정도로 놀랐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저도 완성본이 가장 궁금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촬영할 땐 ‘이게 대체 어떻게 나올까’하는 궁금증이 가장 컸는데, 영화를 보고 나선 ‘역시 김용화 감독님이시구나’했죠(웃음). 아무래도 저는 다른 분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홀로 찍는 신들이 많았는데 선배님들이 영화를 보시고 제게 첫 마디로 하신 얘기가 ‘너 진짜 고생 많이 했다’였거든요. 저는 그것도 VFX의 힘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영화 보면서 저도 ‘내가 이걸 찍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더 문’은 도경수에게 있어 첫 SF 장르 도전이기도 하지만,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호흡을 맞추길 꿈꾸는 선배들과 함께한 작품으로도 의미가 깊다. 영화 ‘불한당’이 개봉한 이후 “꼭 한 번 도경수와 호흡을 맞춰 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빗발쳤던 설경구, 그리고 등장만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김희애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도경수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더 문’의 출연을 결정하게 된 큰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고. 문제는 달에 고립돼 있는 선우의 특성상 그 선배들과 실제로 함께 마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진짜 너무 아쉽죠. 배우라면 사실 정말 한번쯤은 함께해보고 싶은 선배님들인데 비대면 촬영이라니(웃음). 정말 너무 속상했어요. 영화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볼 땐 그냥 울었던 기억이 나요. 제 성향이 감정을 누르고 우는 걸 창피해 해서 혼자 영화를 볼 때 울 것 같으면 참는 편인데 이상하게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웃음). 선배님들이 연기하시는 걸 바로 옆에서 보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장르나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얼굴을 보고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뭐든지 다 좋을 것 같아요(웃음). 설경구 선배님이랑 대사 한 번만 나눠 볼 수 있었으면….”
어두운 공간에 고립돼 나 홀로 연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정신적인 압박과 함께 우주 대원의 설정에 맞춘 ‘우주인 연기’로 인한 육체적 고됨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는 게 도경수가 말한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10kg를 훌쩍 넘는 우주복을 입고 팔다리에 와이어를 감은 채 우주 공간에서의 몸짓을 연기해 내야 하는 것은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조금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었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로 활동할 때 각 멤버 별로 초능력을 소유했다는 설정을 가졌던 만큼, 중력을 다루는 힘의 소유자였던 그에겐 이번 ‘더 문’을 촬영하며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기진 않았을까. 이 질문에 도경수는 단번에 “(그 설정은)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답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엑소 플래닛에서의 설정은 전혀 도움이 안 됐죠. 제 능력은 힘인데 우주에서 가장 필요 없잖아요(웃음). 우주복이 기본적으로 한 겹만 입는 게 아니라 부피감을 표현하기 위해 그 안에도 두꺼운 아대를 껴입어야 했고, 신발도 워커 위에 우주 신발을 신었어요. 그런 것들을 장착한 상태에서 우주에서 걷는 걸 표현하려면 저를 당기는 장력 같은 걸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거든요.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로 와이어를 단 채로 걷기도 하고, 그냥 와이어 없이 제가 느리고 무겁게 걸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영화에선 와이어를 달지 않고 제가 직접 걷는 연기를 한 장면이 담겼더라고요(웃음).”
작품 속 대부분의 연기가 배우로서 처음 접하는 것들이었던 만큼 관객들이 가지는 작품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더 문’은 도경수에게 있어 확실히 도전적인 필모그래피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기의 성숙도 측면에서 특히 깊고 뚜렷한 인상을 남겼으니 이 작품을 터닝 포인트로 삼아 앞으로 대중은 배우 도경수가 보여줄 더 확장된 연기 세계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로 서른 살을 맞이하며 이전보다 좀 더 단단해졌다는 걸 느끼고 있다는 도경수는 모든 작품을 계단 삼아 배우로서 성장해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저는 이제까지 제가 해 온 모든 작품이 성장이었던 것 같아요. 제 연기를 보고 크게 만족한 적이 잘 없는 편인데, 이번 ‘더 문’도 개인적으론 아쉬운 게 많았어요.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그러면서 모든 작품을 끝내고 한 계단씩 모니터를 하며 배워가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 뭔가를 확 얻었다기보단 계속 꾸준히, 하나하나 끝내갈 때마다 조금씩 느끼는 것 자체가 제 경험치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것들이 점점 계단을 올라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아직은 어리지만 이제 30대도 됐고, 주변 사람들의 영향도 받으면서 제 자신을 그렇게 조금씩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