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보좌진 “의원들 사적 사용 공공연”, 감시 조항 없어 처벌 어려워…전문가들 “관련 법 제정해야”
#공공연한 지원 예산 편취
2023년도 국회의원 연봉은 1억 5426만 원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원 연봉은 3.36배에 달한다. △일본(2.31배) △미국(2.28배) △영국(2.03배) 등과 비교해도 많다.
국회의원들은 연봉 이외에도 1인당 연간 약 1억 1279만 원을 의정 활동 지원 예산 명목으로 받는다. 또 1인당 보좌진 9명을 둘 수 있다. 보좌진들 보수로만 5억 원 이상 세금이 지출된다. 이런 규모의 세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2019년 OECD 의회 경쟁력 조사 결과, 대한민국 국회는 27개 회원국 중 26위를 기록했다.
국회사무처는 지원 예산 중 매달 258만 8000원을 국회의원 명의 통장에 정액(현금) 지급한다. 구체적으로는 △비서실운영비(18만 원) △공공요금(95만 원) △의원차량유류비(110만 원) △의원차량유지비(35만 8000원) 등이다. 위원장 및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의원차량유지비는 약 65만 원 더 많은 100만 원을 받는다. 공공요금은 의원실 전화요금을 공제한 뒤 잔여액을 지급받는다. 이렇게 받은 현금은 사용처를 증빙하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선 이 돈이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현금으로 받은 돈을 국회의원들이 개인적 용도로 쓰고 있다는 내용도 그 중 하나였다. 실제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현역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 지원 예산을 편취했다는 제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보좌진은 “의원이 직접 행정비서관에게 매달 정액(현금)으로 지급되는 지원 예산 중 쓰고 남은 금액을 은행 가서 인출해오라고 시켰다”며 당시 시점과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이어 그는 “여야 할 것 없이 암암리에 지원 예산을 인출해서 사용하는 의원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의원실에 재직 중인 보좌진도 “의원들이 행정비서관을 통해 지원 예산을 인출해서 사적으로 쓰는 건 공공연한 일”이라며 “예전에 한 의원이 ‘다른 의원들은 운영비 인출해서 쓰는데,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 되나’라고 직접 얘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원차량유류비(110만 원)의 경우 사실상 이중지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은 국내 출장 시 철도, 항공, 차량유류비 등을 따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의원실당 연평균 1141만 원을 지원받는다. 국회의원이 이 돈을 차량유류비로 사용하고, 증빙이 필요 없는 의원차량유류비 110만 원은 다른 곳에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입법 공백 해결해야
국회의원 지원 예산과 관련한 법률과 규정 등이 미비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다. 국회사무처법에 따르면 국회사무처는 의장의 지휘·감독을 받아 국회 및 국회의원의 입법활동과 국회의 행정업무에 관련된 사무를 처리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국회법에도 사무처 역할은 국회의 입법·예산결산심사 등의 활동을 지원한다고만 적혀 있다.
국회회사무처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위한 지원 예산은 법률이나 규칙이 따로 없다”며 “내부적으로 국회 사무총장이 결재해서 시행하는 하나의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의 지원 예산 부정 사용을 파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부정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처벌하기도 어렵다. 국회사무처법에는 지원 예산을 부정 사용했는지 감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국회는 감사원 감사 대상도 아니다.
앞서의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원실은 국회사무처 감사관실의 정기 감사 대상이 아니다. 감사를 따로 하지 않는다”며 “증거를 갖춰서 신고한다면, 조상 대상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 예산 부정 사용 관련 처벌 규정이 없냐는 질의에 “(국회 지원 예산이) 이제까지 문제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국회 내부 자정 작용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1991년 국회의원 윤리의식 제고와 자율적 위상 정립을 위해 설립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그 단적인 예다. 13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국회 윤리특위에 접수된 징계안 280건 중 본회의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아나운서 관련 성희롱 발언을 한 18대 강용석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1건에 불과하다(관련기사 ‘제소’만 있을 뿐 ‘결론’은 없다…유명무실 국회 윤리특위 현주소).
전문가들은 국회의원 지원 예산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국회의원이 지급받는 운영비를 정해진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운영비의 범위가 매우 넓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현행법으로 처벌은 어려워 보인다”며 “이는 입법적으로 규정을 만들어서 운영비 사용 내역을 국회사무처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부정보고나 부정 사용 시 문제를 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