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복수의 칼자루’는 쥐었는데…
▲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아들 이재용 상무. | ||
최근 검찰에서는 에버랜드 수사와 관련해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삼성그룹 이재용 상무, 이건희 회장을 소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명관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당시인 1996년 그룹 비서실장을 맡고 있었고,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었던 홍석현 회장은 전환사채 실권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중앙일보 주식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을 사고 있다. 모두 당시 전환사채 발행 과정에 깊이 개입한 인물들이다.
그 중 이재현 회장이 핵심 인물로 떠오르는 것은 당시 주주 중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유일하게 실권하지 않은 곳이 CJ(당시 제일제당)인 데다, 삼성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데 대한 미묘한 감정의 앙금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수 있는 핵심 인물로 이 회장을 지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6월 첫째주에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기도 한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손 회장은 당시 CJ의 대표이사였다.
‘오비이락’ 격으로 CJ가 지난 5월 주가가 폭락하면서 ‘검찰 수사설’ 등이 나돌았는데 결과적으로 삼성그룹 수사로 인해 검찰조사를 받기는 한 셈이다. 이전 재계 관련 수사를 보면 딱히 한쪽만 집중적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라 광범위한 부분을 조사하다가 문제되는 부분만 추려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관례에 비추어 보면 검찰 조사 자체가 해당 기업엔 부담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삼성 관련이라고 해도 CJ로서는 부담이 없을 수 없다.
게다가 CJ는 장외에서 주당 40만 원 전후의 값에 거래되는 삼성생명 주식 183만여 주를 갖고 있다. 계열분리된 CJ는 이 주식 보유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이를 매각해 물류 등 새로운 사업 확장에 이용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또 얼마 전에는 삼성 계열의 삼성HTH라는 택배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CJ의 관심이 삼성생명 주식 보유가 아니라 매각 때 더 많은 값을 받는 쪽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이재현 CJ 회장 | ||
이번 소환 조사의 발단은 지난 1996년 11월 에버랜드(당시 중앙개발)의 전환사채 발행시 에버랜드의 주주였던 삼성물산 제일모직 신세계 중앙일보가 청약을 포기하면서부터다. 주주들의 실권으로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제3자인 이재용 상무와 여동생들은 125만 4777주(지분 62.7%)를 주당 7700원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CJ는 유일하게 청약에 참여해 전환사채(3만 8000주)를 배정받은 뒤 이재현 회장에게 매입가격 그대로 매각했다. 이 회장은 이를 이듬해인 1997년 3월 주식으로 전환해 1.9%의 지분율을 확보했다.
당시 증자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계열사 및 주주들이 실권한 것과 관련해 삼성그룹 고위층으로부터 ‘실권 권유’를 받았는가가 검찰 수사의 핵심이다. 검찰은 당시 CJ가 실권을 하지 않고 전환사채를 배정받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정황대로라면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은 삼성그룹을 이재용 상무에게 넘겨주기 위한 일종의 승계 작업으로 그룹 계열사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CJ는 삼성그룹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기존 주주로서의 ‘권리’를 그대로 행사하며 독자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가 발행된 1996년은 CJ의 그룹 분리가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CJ는 93년 부터 삼성과의 분리작업에 들어갔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과 창업주의 3남인 이건희 회장 측은 그룹 대권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묘한 알력을 보였고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인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이 그룹 분리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CJ에 부사장으로 파견되면서 극렬한 파열음을 냈다. 당시 이재현 회장 일가에선 이학수 부회장이 CJ 소유의 알짜 부동산과 계열사 주식을 계열분리 전 이건희 회장 측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파견했다고 보고 그의 부임 자체를 반대했다. 이어 이재현 회장 자택에 감시카메라 설치 파문이 일어나자 이건희가와 이재현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고 CJ의 분리는 더욱 앞당겨졌다.
▲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
하지만 구원은 구원일 뿐 무턱대고 CJ가 삼성에 각을 세울 입장은 아니다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고 있는 CJ 역시 최근 이재현 회장 자녀의 계열사 지분 확보과정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월 이재현 회장의 외아들 이선호 군(17)이 CJ미디어의 유상증자에 기존 대주주였던 CJ엔터테인먼트가 실권하자 3자 배정으로 처음 CJ그룹 계열사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CJ미디어의 지분은 CJ(주) 60.21%, 이선호 7.33%, 이재현 회장의 외동딸 이경후 씨 2.91%, 이 회장의 누나 이미경 CJ 부회장 1.59%다.
유상증자 당시 이선호 군은 74억 3647만 원으로 CJ미디어 주식 114만 주(9.65%)를 사들였다. CJ 측에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주식을 사들였다’고 밝히고 있다. CJ에서도 2세 승계 작업이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이는 대목이다.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통한 2세 승계 방법이 최근 삼성이나 현대차 사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CJ도 논란은 피해갈 수 없는 셈이다.
일각에선 이를 지난 5월 CJ(주)의 주가 폭락의 방아쇠로 보는 시각마저 있을 정도다. 물론 CJ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CJ 쪽 인사가 검찰 조사에서 삼성의 이해에 완전히 반하는 진술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삼성과 CJ의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으로서도 삼성생명 대주주 중의 하나인 CJ가 경영권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지분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CJ 역시 삼성생명 주식값을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삼성의 협조가 필요하다. 때문에 두 집안이 완전히 척을 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재현 회장이나 손경식 회장이 어떤 얘기를 하느냐에 따라 삼성 구조본에서 조직적으로 이건희 회장 2세에 대한 편법재산 승계를 했느냐가 판가름난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이건희 회장이나 이 부회장 등 검찰 소환을 앞둔 삼성 핵심부의 명운이 달린 셈이다. 94년과는 정반대로 이재현 회장이 고삐를 쥐고 있는 셈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