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번호 1047’ 6화 중반 이후에야 등장…“고현정 아닌 초라한 김모미 모습과 표정에 집중”
‘마스크걸’은 8월 18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됐다. 곧바로 넷플릭스 집계 오늘의 인기 콘텐츠 1위에 등극했고, 3일 만인 21일 글로벌 톱10 비영어 콘텐츠 부문 2위에 올라섰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14개국 톱10 진입 성과도 거뒀다.
고현정은 이번 작품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OTT 시리즈에 처음 참여했다. 연기 경력이 이미 30년을 훌쩍 넘겼지만 이번 ‘마스크걸’을 통해 새로운 반응을 얻고 있다.
#고현정의 ‘마스크걸’ 도전, 왜?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와 외모 지상주의를 다룬 인기 웹툰을 옮긴 작품이다. 김모미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외모’ 때문에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그 주변인들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이야기다.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시간 순서로 다룬 작품으로 고현정과 나나, 이한별까지 3명의 배우가 김모미를 나눠 연기했다. ‘3인 1역’이다.
고현정은 김모미의 인생 후반부를 책임진다. 연쇄살인자가 돼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의 김모미를 고현정이 맡았다. 그는 “한 명의 캐릭터를 세 명의 배우가 나눠 연기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나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게 고현정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는 “저의 10대와 20대, 30대, 40대를 생각해봐도 많이 다르다”며 “한 명의 캐릭터를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눠 하면 더 집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제작진의 선택에 손을 들었다. 과감한 ‘3인1역’의 시도가 이미 각각의 세대를 살아온 고현정의 호기심을 자극한 셈이다.
고현정보다 앞서 김모미로 살아간 배우는 신예 이한별과 나나. 특히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0~20대 김모미 역을 맡은 이한별은 어릴 때부터 가수를 꿈꿨지만 못생긴 외모로 비웃음을 사기 일쑤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는 온라인 방송 BJ로 이중적인 삶을 산다.
짝사랑하던 유부남 상사가 다른 여직원과 불륜 관계임을 확인하고 분노해 벌인 기행으로 살인자가 된 김모미는 ‘페이스오프’ 수준의 성형수술을 감행하고 다시 태어난다. 성형수술 후의 김모미는 가수 출신의 배우 나나가 연기했다. 아이를 낳고 연쇄살인 혐의로 감옥에 들어간 최후의 김모미가 바로 고현정의 몫. 자포자기한 듯 피폐한 삶을 살던 그에게 어린 딸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탈옥을 감행한다.
자칫 자극적인 설정이 난무하는 작품으로 비치지만, 고현정은 그보다 ‘마스크걸’이 담은 메시지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사회 문제나 이슈들이 왜 일어나는지 저변에 깔린 문제점을 드러낸 이야기”라며 “그렇지만 너무 심각하지 않게 다가가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외모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인물이란 설정은 고현정을 자극했다. “‘마스크걸’의 상황은 김모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며 “살면서 많은 분이 마스크를 쓸 때가 있다. 그런 분들의 고충이 어느 정도인지, 마스크를 벗을 용기가 언제 생기게 되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30년 연기할 때 쓰지 않은 표정 꺼내려”
고현정의 ‘마스크걸’ 출연이 시청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가 다름 아닌 외모 지상주의의 표본으로 꼽혔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출신이기 때문이다. 198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선으로 당선돼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모래시계’부터 ‘선덕여왕’ ‘디어 마이 프렌즈’ 등의 작품을 두루 거치면서 선 굵은 연기자로 성공적인 행보를 걸어왔고 동시에 ‘미의 상징’으로도 통했다.
활동하는 동안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로 주목받은 고현정이 외모 지상주의와 외모 콤플렉스가 빚은 파국을 그린 작품의 주연을 맡은 사실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심지어 고현정은 작정한 듯 ‘마스크걸’ 출연 내내 화장기 없는 민낯, 초라한 행색으로 등장한다. 10년 넘도록 장기 복역 중인 죄수라는 설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여기저기 멍이 잔뜩 든 몸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얼굴은 낯설다. 이번 작품과 역할에 얼마나 집중하고 몰두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고현정은 ‘마스크걸’에서 이전과 다른 연기에도 공을 들였다고도 말했다. “30년 넘게 연기를 하다 보니 대중이 봐왔던 모습과 표정을 쓰지 않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며 “어떻게 하면 고현정이 아니라 김모미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도 돌이켰다. “이런 제안을 해준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고현정의 의욕적인 모습은 연출을 맡은 김용훈 감독마저도 놀라게 했을 정도다.
‘마스크걸’의 고현정은 배우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다. 한때 출연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여러 잡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고현정은 이번 ‘마스크걸’을 통해 배우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