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보유자 거래 ‘상급지’만 소폭 상승…중국발 부동산 리스크와 금리 추이 등 변수
#짧게 부는 훈풍일 가능성 높아
부동산R114에 따르면 7월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가격이 1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성동구·용산구·종로구 등에서도 하락세가 멈추는 등 수도권 아파트 가격 하락폭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주목할 수치 중 하나는 입주율 및 입주 전망 지수다. 입주현황 및 전망은 시장 침체 여부를 드러내는 핵심적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7월 전국 입주율과 수도권 입주율은 68.7%와 82.0%로 7월에 비해 각각 5.1%포인트(p)와 3.5%p 상승해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8월 아파트 입주전망지수 또한 전국적으로 8.6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에도 불구하고 전체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7월 아파트 매매 가격이 6월에 비해 0.01% 오르는 데에 그쳤다. 게다가 거래량을 늘리며 줄곧 가격을 끌어올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경우 전부 규제지역이다. 즉, 대출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에서 현금을 보유한 수요자들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며 가격을 끌어올렸고 이에 경기 하남, 동탄 등 인근 지역까지 편승해 가격이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상급지에만 짧게 부는 훈풍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실제로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지역의 7월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04% 하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파트 거래량 역시 올해 5월 4만 건대에서 6월 3만 건대로 감소하며 주춤한 모양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연초에 아파트 가격이 확 떨어졌다가 올 상반기 지나 절반쯤 회복이 되면서 매수자들이 다시 구매를 보류하는 추세다.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생각의 괴리가 상당하다는 건 회복세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경매시장에서도 경매 물건이 계속 늘어나는데 낙찰률은 상당히 감소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아파트 가격만 보면 시장을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거래량은 가수요가 붙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매수 심리가 상승하려면 가수요가 늘어나야 한다. 여전히 대출금리가 높은 상황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R114 여경희 연구원은 “현재의 거래량 추이는 대출 규제 완화와 소득세 감면 등으로 생애최초실수요자들이 움직이며 서울에서 주택매수심리가 어느 정도 올라온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서울은 전세가율도 낮고 역전세 우려도 상당해 갭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가수요가 붙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시장 역시 지방을 중심으로 분양 일정이 차일피일 밀리는 곳들이 나오며 분위기가 살지 못하고 있다. 경북 구미시에 태영건설이 대규모로 분양을 준비하던 ‘구미 그랑포레 데시앙’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미 그랑포레 데시앙은 구미 꽃동산공원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물량으로 총 2643가구 규모를 자랑하지만 올해 6월에 예정됐던 분양이 계속 뒤로 밀리며 아직도 분양 날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분양시장은 괜찮은 물량들이 연달아 나와주면 매매 시장보다는 심리적으로 좀 더 빠른 상승 전환이 가능하다. 근데 건설사들이 아직도 부담스러워하며 분양 일정을 계속 미룬다는 것은 시장을 냉정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금리 한 번만 더 인상해도…
대외환경 역시 예상치 못한 ‘중국발 리스크’가 두드러지며 악화일로라는 분석이다. 8월 7일 중국 1위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이 달러채권에 대한 이자 2250만 달러를 갚지 못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맞이했다. 2021년 12월 디폴트에 빠져 지난해 중국의 2분기 경제 성장률을 0.4%로 끌어내린 2위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도 올해 8월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해 이목을 끌었다.
부동산 시장은 중국 GDP의 20~30%를 차지하는 데다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까닭에 중국발 경제 위기가 내수 경기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헝다의 3배 규모를 자랑하는 비구이위안이 만약 9~10월에 최종 부도를 낸다면 국내 시장도 연말연시 한파를 피하지 못하리라는 분석이다.
권대중 교수는 “경제가 어려운데 누가 집을 사려고 하겠나. 중국발 경기 침체가 유력한 가운데 향후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가 현재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3.5% 수준인 국내 기준 금리도 줄곧 인상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고정금리 대출이 많아 신규 차주에게만 영향을 주는 미국과 달리 국내의 경우 변동금리 대출이 대다수를 차지해 금리 인상의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특히 세계경제의 공장 노릇을 하고 있는 중국이 제 역할을 못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더욱 잡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버티지 못하고 금리를 다시 올리게 될 확률이 높고 한 번만 인상해도 지금의 훈풍은 끝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가장 중요한 점은 과거에도 7~8년간 부동산 상승기 이후에 3~4년의 조정기가 반복됐다는 점”이라며 “지금 바닥을 찍고 대세 상승으로 전환될 수가 없다. 지금 무리하게 집을 사면 조정 기간에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경고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 역시 지난 8월 13일 내놓은 ‘주택시장 경착륙 위험 완화 정책의 성과와 과제’ 보고서에서 현재 주택시장이 불황기 저점에 도달한 상태며 회복까지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정부도 추가 규제 완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지목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기 50년 주담대는 올해 7월부터 인기를 끌며 한 달 만에 2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취급액을 달성해 이목을 끌었다. 만기를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늘리며 매달 내야 할 원리금이 줄어든 덕분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다소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현재 앞다퉈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하거나 나이 제한에 나서고 있다. 박합수 교수는 “주택 수요자들이 제일 부담스러워하는 게 DSR인데 이 규제를 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중 주담대보다 낮은 금리로 이용 가능한 특례보금자리론도 올해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곧 소진을 앞두고 있다. 권일 리서치팀장은 “다소 거래량은 감소하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시장 활성화하겠다고 규제를 더 풀어버리면 국민 정서상 빚내서 부동산 투기 하라는 걸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연착륙은 하되 가격이 급등하지 않고 조금씩 올라가는 상태를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