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잡힌 ‘비박들’ 역시 박 텃밭
▲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린 9일 김천실내체육관 주차장에는 당원들이 타고온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섰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8월 9일 오후 김천 실내체육관. 새누리당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가 예정된 이곳에 수십 대의 버스가 줄지어 들어섰다. 대선 예비후보들의 연설을 듣기 위해 대구경북 지역 새누리당 당원들을 태운 버스였다. 앞서 서울지역 합동연설회에서 “각 대선 후보 캠프 측에서 버스를 동원하고 다른 후보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빠져나갔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번에는 각 지역의 당원협의회에서 일괄적으로 교통편을 준비한 모습이었다. 당원들은 각 지역별로 버스에서 내려 실내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눈길을 끈 것은 ‘희망포럼’이라고 쓰여진 버스였다. 기자가 실내체육관 인근 주차장에서 확인한 희망포럼 측 버스만 6대. 영주희망포럼, 봉화희망포럼, 구미희망포럼과 같이 적어도 각 지방마다 한 대씩 온 듯 보였다. 국민희망포럼은 강창희 국회의장이 상임고문을 맡고 이성헌 전 의원이 총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전 위원장의 대표적인 외곽단체다. 희망포럼 관계자는 “이날 버스는 순수하게 박 전 위원장을 응원하기 위해 한 사람당 1만 원씩 내고 온 것”이라며 조직적인 동원을 부인했다. 이 밖에도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포럼인 ‘임과 함께’ 역시 버스 1대를 동원해 연설회장을 찾았다.
▲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박근혜 지지자들과 비박 주자들의 감정이 가장 고조된 시점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홍보동영상이 상영될 때였다. ‘남과 여’라는 제목이 붙은 김 지사의 동영상은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자랐던 여자”와 “가난 탓에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고 대학 시절 내내 고무신을 신으며 노동자와 함께 한 삶을 산 남자”를 비교하는 동영상이었다. 또 박 전 위원장이 최태민 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고 최근 공천헌금 파동까지 거론하는 등 시종일관 대립각을 세웠다. 이 때문에 일부 지지자들은 “꺼라” “그만 둬 이 XX야” 등 비난과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지사가 한 중년 남성에게 멱살이 잡히기도 하는 등 과열양상을 연일 연출하고 있다.
TK 지역 합동연설회의 주인공은 당연 기호 2번 박근혜 전 위원장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대세론의 불안함을 목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구미와 대구의 특정 지역구 참석자들의 경우 박 전 위원장의 연설에만 환호를 보내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이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일부 비박주자 응원단에서는 “박 전 위원장은 이미 충성 경쟁에 익숙해진 사람 아니냐”는 비난 섞인 불만도 섞여 나왔다.
한 비박 주자 캠프의 하 아무개 씨는 “(박 전 위원장 측에 비해) 응원이 많이 밀리지는 않았죠”라며 되물으며 “우리 후보가 TK 지역 연고가 없어 선거사무원을 모두 내려 보내고 외곽단체 사람들까지 합세해 힘들게 응원단을 꾸렸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경우 TK 지역 지지자들이 월등히 많지만 나이대가 50~60대가 대부분이라는 게 약점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TK 지역의 지지율이 수도권까지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 전 위원장의 대표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지난 6일 서울지역 합동연설회를 앞두고 카페에 ‘총동원령’이라는 글을 올리며 회원들에게 연설회 참여를 적극 호소했다. 수도권 지역의 소구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응원 열기가 부족할까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한 팬클럽에서는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신청하려는데 누가 제일 약하죠?”라는 글을 통해 공개적으로 역 선택을 논의하기도 했다. 해당 글의 댓글에는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의 실패를 통해 박근혜 전 위원장이 비박 주자들의 오픈프라이머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게 옳은 일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경한 이야기도 덧붙었다.
박근혜 캠프 측은 “희망포럼의 버스 동원 문제나 일부 팬클럽의 총동원령은 캠프 측과는 무관한 사안이다. 일부 지지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일일이 통제하거나 간섭할 권한이 캠프 측에 없지 않은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단체와 팬클럽은 박근혜 캠프 홈페이지 내 ‘국민행복캠프와 함께하는 단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 완전히 따로 보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이날 현장을 취재한 한 기자(여·29)는 “사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지자들의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또 공천헌금 문제를 정확히 거론하지 않고 ‘종북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연설이 이어져 신선하지 못했다”라고 평했다. 반면 연설회에 내빈 자격으로 참석한 한 당원은 “지금 야당에서는 안철수 교수를 비롯해 종북 세력과도 연대하면서 어떡하든 대선에서 이기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 쪽은 박 전 위원장을 도와주기는커녕 다들 흠집 내기에 바쁘니 본선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며 울분을 토했다.
새누리당은 인천지역(16일)과 경기지역 합동연설회(18일) 일정을 끝으로 오는 20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비박 주자들과 박 전 위원장의 화합 없이는 본선은 보나마나한 게임”이라는 주장이 당 안팎으로 거세지고 있다.
김천=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