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플라스틱 발생으로 생태계 위협 우려…폐기물 관리법 적용 여부 애매해 수거 안 되는 실정
대표적으로 골프공 유실 방지 및 처리 문제다. 골프공이 저수지나 하천으로 유실돼도 민원 접수 전까지는 선제적으로 유실볼을 처리할 의무가 없다. 전문가들은 골프공이 플라스틱을 포함해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졌기에 자연에 오래 방치될 경우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전한다. 골프공 유실을 관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골프협회가 경희대학교 골프산업연구소와 함께 발표한 ‘2021 한국 골프지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골프 활동 인구는 1176만 명으로 추산됐다. 2017년 대비 16.4% 증가한 수치다. 골프연습장도 증가 추세다. 행정안전부 지방인허가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25일 기준 골프연습장업은 총 8483개 업체로 2017년 대비 약 22% 증가했다.
골프업종 매출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KB국민카드가 개인 신용 및 체크카드 매출 데이터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한 골프 관련 구매 품목과 골프장, 실내외 연습장 및 스크린골프 업종 매출을 분석한 결과 골프업종 매출액은 2019년 대비 실내 연습장 395%, 스크린골프 102%, 골프장 62%, 실외연습장 61% 증가했다.
골프업종이 활성화되자 ‘환경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골프장 신축으로 인한 산림 훼손, 잔디 관리를 위한 농약 사용 등의 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유실 골프공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골프공은 핵심 요소인 코어 제작부터 커버, 골프공 표면의 작은 홈인 딤플의 디자인, 페인팅, 코팅 등 약 300단계를 거쳐 제작된다. 코어에는 주로 합성고무 소재인 폴리부타디엔이 사용되고, 커버는 아이오노머나 우레탄이 사용된다. 아이오노머는 설린(surly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화학기업인 듀폰(Dupont)의 상품명이다.
세 가지 재료는 모두 플라스틱이다. 정재학 한국분석과학연구소장은 “폴리부타딜렌은 탄성 재질을 띤다. 탄성 재질을 띄는 원재료 중 천연 소재가 아니라면 모두 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커버 원재료인 우레탄이나 아이오노머 역시 플라스틱이다. 마찰, 마모 등으로 골프공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자연 분해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최근 심각한 오염 물질로 인식되고 있다. 유엔 회원국 전체가 참가해 유엔환경계획(UNEP)의 사업계획뿐 아니라 주요 환경 현안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환경 회의인 유엔환경총회에서는 2022년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주기적으로 다루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마련을 논의한 바 있다.
골프공은 마모나 변형 지연을 위해 별도 공정 과정을 거친다. 한 골프공 제작업체 관계자는 “중심 코어 원재료는 고무라 온도·습도 등에 예민하다. 중간에 케이싱 레이어라는 걸 씌워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골프공은 케이싱 레이어가 몇 겹(피스)으로 되어 있느냐에 따라 성능을 달리한다”며 “또 커버에 추가로 클리어 코팅이라는 작업을 한다. 커버도 플라스틱 재질이기에 내구성 강화를 위한 작업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유실되는 골프공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구독자 43만 명을 보유 중인 유튜브 채널 ‘탐구생활-돈이 되는 삶의 이야기’가 골프장에서 사라진 공을 의미하는 ‘로스트볼’을 수거하는 업체를 조명한 바 있는데, 해당 업체가 5시간 동안 수거한 로스트볼은 1만 개에 달했다. 골프장 호수가 외부 하천으로 흐르도록 설계됐거나, 천장이 개방된 실외 연습장이라면 장외로 유실되는 골프공의 양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일요신문i'가 취재·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 골프장에서 쏟아내는 유실 골프공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기사 [단독] 자운대 골프장서 흘러나온 ‘유실 공’ 인근 하천 망친다).
박은정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는 “골프공을 포함한 플라스틱은 자외선 등 환경 조건에 의해 표면이 산화되고 변형된다. 색이 누렇게 변하는 게 그 징조다. 그렇게 되면 풍화작용 등에 의해 마모되기 쉬운 상태가 될 수 있다”며 “1~2개의 골프공이 위험할 정도의 미세플라스틱 양을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 개수가 수백에서 수천 개에 달한다면 관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특히 골프공이 깨졌다면 내부 원재료까지 플라스틱이기에 미세플라스틱이 만들어질 확률이 더 높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유실볼 수거 문제에 대한 법과 제도가 부족하다. 지방·국가하천 청소 및 관리는 폐기물관리법을 따른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폐기물이 잘못된 방법으로 처리되거나 버려져 매립되는 경우 관할 지자체는 해당 업체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법령에서 폐기물은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 활동에 필요하지 아니하게 된 물질로 정의되고, 무단 투기 등이 아닌 유실이기에 골프공이 폐기물로 보기에는 모호하다는 의견이 많다.
저수지 청소와 관리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담당하며 물환경보전법을 따른다. 수면 관리자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지자체에서 해당 쓰레기를 운반·처리하게 돼 있다. 또 수질 전수조사를 통해 쓰레기 발견시 수거하고 있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이는 부유물이나 쓰레기 등만 처리한다는 점이다. 골프공처럼 저수지에 가라앉아 있으면 물을 다 빼내지 않는 이상 수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게 한국농어촌공사 측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실 골프공 처리 문제는 주로 주민의 민원·제보로 시작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취재가 시작되자 사태 파악에 나섰다. 자운대골프장의 경우 주민이 직접 600여 개에 달하는 유실볼을 수거, 유성구청에 민원을 넣었으나 수일 동안 민원 처리부서 지정조차 되지 않았다. 민원·제보 없이 저수지나 하천에 유실볼이 침적된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나마 해양은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관리법(해양폐기물관리법)이 2020년 시행되면서 10년마다 해양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해역관리청이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실태조사 등에 따라 해양폐기물이 확인되면 해당 업체에 수거 명령도 내릴 수 있다. 무엇보다 해양폐기물은 해양에 배출되면 그 상태로는 쓸 수 없는 물질로 정의돼 골프공도 폐기물로 분류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파트너사인 W재단 이욱 이사장은 “골프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골프공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아무리 코팅제로 마모를 지연한다고 해도 대량으로 골프공이 유실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며 “미세플라스틱 해결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에 해양뿐 아니라 골프장이나 실외 연습장이 인접한 저수지와 하천만이라도 실태조사를 통해 수거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