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전 전반 마치고 “X도 아니지?” 선수들 기 살려줘
올림픽 기간 동안 태극전사들의 뛰어난 성적만큼이나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화제를 낳았고 지상파 방송 3사 중계진들이 보여준 톡톡 튀는 언변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국민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그들의 ‘말말말’을 테마별로 모아보았다.
한국에 깜짝 금메달을 선사해준 사격 김장미(20·부산시청)와 펜싱 김지연(24·익산시청)의 금메달 수상 소감은 그녀들의 어린 나이만큼이나 ‘솔직’ ‘상큼’ ‘발랄’했다.
대표팀 코치진으로부터 ‘4차원 소녀’라고 불린다는 김장미는 금메달 수상 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4차원스러운(?) 답변을 쏟아내 그녀의 엉뚱한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금메달 소감을 묻자 “머리 모양을 다듬고 싶어요”라는 다소 예상 밖의 소감을 들려준 김장미는 “예쁜 머리로 시상대에 오르고 싶어 선수촌 내 미장원에 예약했는데 시간이 늦어 못 갔다”며 아쉬워했다. 금메달 땄으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 같이 회식하고 싶다”고 답했다. 높은 영국 물가도 생각해야 한다는 기자들의 만류에도 “에이, 금메달도 땄는데 괜찮아요, 제가 쏠거예요”라며 통 큰 씀씀이를 자랑했다. 한국 돌아가서 CF제의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어이구, CF 들어오면 감사합니다”라며 넙죽 인사를 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미녀 검객’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펜싱의 김지연은 시원시원한 외모만큼이나 솔직함이 묻어나는 쿨한 언변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올림픽 사상 최초 펜싱 여자 개인 사브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미쳤구나. 로또 맞은 기분이다”라고 솔직한 소감을 밝힌 김지연은 KBS 2TV ‘2012 런던 올림픽, 여기는 런던’에 출연해 ‘얼짱 검객’으로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다는 진행자의 말에 “완전 고맙다”라는 신세대다운 표현을 써 웃음을 자아냈다.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준 것이 선수들뿐만은 아니었다. 방송 중계진들의 재미있는 진행 멘트도 화제가 되었는데 SBS 축구 중계 배성재 아나운서를 빼놓을 수 없다. 배 아나운서는 축구 조별 예선 한국 대 스위스전에서 수많은 어록을 양산해냈는데 경기 도중 박주영(27·아스널)과 몸싸움을 벌이던 스위스 선수가 신체접촉 없는 상황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넘어지자 “뭐하는 건가요, 지금? 경기장에 벌이 있나요. 선수가 벌에 쏘였나 보네요”라는 익살스런 멘트를 날렸다. SNS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불명예스럽게 선수단에서 퇴출당한 스위스 축구선수, 미첼 모르가넬라(23·팔레르모)와 기성용(23·셀틱)이 경기 도중 눈싸움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자 “진정한 파이터는 눈빛으로 상대를 제압 할 수 있습니다. 기성용 선수한테 걸리면 없습니다”라고 말해 축구팬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4년 전의 은메달 한을 푼 유도 김재범(27·한국마사회)의 금메달 소감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런던올림픽 유도 첫 금메달을 수확한 김재범은 인터뷰에서 “베이징올림픽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했고 이번에는 죽기로 시합했다”며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불굴의 의지를 짧고 굵게 표현했다.
펜싱 신아람(26·계룡시청)의 ‘멈춰버린 1초’를 생중계했던 최승돈 KBS 아나운서는 희대의 오심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신아람의 억울함을 차분하게 대변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신아람이 준결승 경기 후 피스트에 주저앉아 오열하자 “그동안의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더 이상 스포츠는 신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최 아나운서는 “인류사의 비극입니다. 이게 스포츠입니까”라고 반문해 중계를 보던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한국 측의 강력한 항의에도 판정번복 없이 하릴없이 치르게 된 3, 4위전에서도 “여러분, 방송에서 이 경기를 보고 싶으십니까. 신아람 선수는 이 경기를 하고 싶겠습니까. 저라고 이 경기를 중계하고 싶겠습니까”라고 분노하더니 “하지만 신아람 선수를 그냥 내버려 두고 여기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신아람 선수의 3, 4위전 경기를 본의 아니게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라며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렸다.
올림픽 대표팀 홍명보 감독은 말수가 없기로 유명하다. 칭찬과 질책은 줄이고 선수를 믿고 기다려 주는 ‘형님 리더십’으로 올림픽 4강 신화를 이룩했다. 이런 카리스마 홍 감독이 라커룸에서 육두문자를 날렸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1 대 1로 전반전을 마친 영국과의 8강전 하프타임 때 홍 감독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충격적인(?) 발언을 선수들에게 했다. “영국 봤지? X도 아니잖아”라고 운을 땐 홍 감독은 “영국도 별거 없다”라고 연신 말하며 선수들의 자신감을 북돋았다. 감독이기 전에 대선배인 홍 감독이 평소에 입에 담지도 않던 육두문자를 날렸으니 선수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의 이 발언으로 전반전에 두 번이나 선언된 심판의 페널티킥 판정에 흥분해 있던 어린 선수들이 미소를 되찾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후반전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저속한 표현이었지만 그야말로 승부의 향방을 한국 쪽으로 이끄는 홍 감독의 적절한 한마디였다.
한편, 올림픽 기간 동안 무리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는데 바로 방송인 박은지(29)의 ‘수영복 공약’이다.
박은지는 수영 박태환의 자유형 400m 경기 일정을 소개하며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수영복을 입고 방송을 진행하겠다”라고 밝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청소년이 보는 공중파 방송에서 ‘수영복 공약’은 무리수였다는 지적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박태환 선수가 실격 판정 번복이라는 해프닝 속에 은메달을 따 박은지가 방송에서 수영복을 입을 일은 없었다.
차인태 기자 cit02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