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수 변호인 수사기록 열람·등사 신청해 확보…성남 FC·대장동 땐 열람 불허로 방어권 행사 애먹어
지난 7월 6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서승렬 안승훈 최문수)에서 권오수 전 회장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피의자들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항소심 두 번째 기일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는 각 피고인 측이 항소 이유에 대한 구체적 구두변론을 진행했다. 권오수 전 회장 측이 항소 이유를 설명하던 중 법무법인 해광의 임성근 변호사가 보충설명 발언을 요청했다.
임성근 변호사는 항소심을 앞두고 지난 3월 권오수 전 회장 변호인단에 새로이 합류했다. 판사 출신인 임 변호사는 지난 2021년 2월 사법농단 의혹으로 헌정사상 최초로 판사 탄핵소추된 바 있다(관련기사 [단독] ‘판사 탄핵소추’ 임성근,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변호인 합류).
추가 의견을 내면서 임 변호사는 녹취록 하나를 증거로 제시했다. 녹취록에는 2010년 10월과 11월 김건희 여사와 대신증권 직원이 도이치모터스 48만 주를 두고 나누는 통화 대화가 담겨있었다.
임 변호사는 “10월 8일자 녹취록 보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10만 주 팔았다’하면서 ‘나머지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주세요’ 상세하게 통화하는 내용이 나온다”며 “10월 28일에는 ‘10만 주 (매도)했고, 이제 8만 주구나’하면서 논의한다. 7초 만에 팔렸다는 문제의 11월 1일자를 보면 증권사 직원이 ‘도이치모터스 8만 주 팔았습니다’하고 통보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녹취록 내용을 보면 2010년 10월 거래 전에 계좌주(김 여사)가 증권회사 담당자에게 일임매매 했다”며 “10월 28일과 11월 1일 양일 거래는 증권사 담당자가 계좌주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는 합리적 선택을 한 일련의 매도거래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건희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는 권오수 회장과 무관하다는 취지였다.
권 전 회장 측은 ‘김건희 녹취록’을 검찰이 처음부터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권 전 회장에게 유리한 내용이라 1심 재판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는 “녹취록은 검사가 수사 중에 대신증권 녹음파일을 입수해 검찰 내부에서 만든 것”이라며 “검찰이 이런 녹취서가 있으면서도 법정에 제출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만약 검찰이 제출했더라면 1심이 사실오인한 판단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에는 “오늘 제출한 녹취록 내용을 면밀히 살펴 원심 판결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녹취록에 대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제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검찰은 “녹취록은 오히려 권 전 회장과 김 여사 사이 의사 연락이 있었다는 증거”라며 “(녹취록을 보면) 김 여사는 직원에게 전화하자마자 ‘팔렸죠’라고 말한다. 또한 최초에 48만 주를 갖고 있으면서 10만 주씩 팔아나간다. 권 전 회장이 ‘주변 지인 물량을 받아서 거래량을 터뜨리겠다’ ‘10만 주씩 끊어서 팔아달라’는 (다른 피고인들과 주고받은) 문자와도 일치한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권 전 회장과 김 여사의 관계를 더 맞춰줄 수 있는 증거에 가깝다”며 “당시 김 여사 수사 중이어서 녹취록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지, 권 전 회장에 유리한 자료이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권 전 회장 측이 어떻게 ‘김건희 녹취록’을 확보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는지를 놓고 의문이 제기된다. 임 변호사는 “원심 판결 선고 후에 변호인 측이 검찰을 상대로 대신증권 주문 녹취에 대한 수사기록 열람 등사 신청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기록을 열람·복사해 확보했다는 것이다.
진행 중인 수사기록을 검찰이 피고인 측 변호인에 열람을 허용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법조계의 우세한 반응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검찰이 재판에 ‘증거’로 제출한 수사기록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재판에 증거 제출 안 한 수사기록은 검찰 내부 기록이니까 열람을 허가해 줄 의무가 없다”며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재판에 공개되지 않은 수사기록 열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찰이 왜 그 정도의 호의를 베풀어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귀띔했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해 성남 FC·대장동 사건 등을 수사한 검찰의 태도와 온도차가 크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이재명 대표 수사가 진행 중일 때 ‘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이 먼저 기소돼 재판을 받았는데, 검찰이 수사기록 열람을 허용하지 않아 방어권 행사에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정진상 전 실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조상호 변호사는 “성남 FC 사건 관련해 성남시 전 공무원이 가장 먼저 기소됐다. 방어권 행사를 위해 기록을 보려 해도 공소장 하나 보내주고, 수사기록은 7~8개월 동안 열람·복사도 안 시켜줬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라며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이재명 대표를 기소한 이후에야 열람 제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서울중앙지검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따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세 번째 공판은 오는 9월 14일 열릴 예정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