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기자가 ‘주포’ 진술서로 권오수 협박” 증언…지난 대선 때 언급한 ‘카드’ 중 하나일 가능성 주목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에서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들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열린 공판에서 ‘선수’ 이 아무개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 씨는 김건희 여사가 2010년 1월 본인의 신한증권(현 신한투자증권) 계좌를 맡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작전 ‘주포’로 알려져 있다.
이날 신문 과정에서 이 씨는 본인이 주변사람들에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추천했는데 오르지 않고 손해를 봐 2010년 9~10월경 고심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에 A 씨와 논의 끝에 권오수 회장에게 손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목적으로 자필진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A 씨도 당시 이 씨 추천으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한 인물이다. 이에 검찰은 A 씨가 주가조작 정황을 인지하고 주식을 샀다고 보고 있다.
검사 “(2010년 10월쯤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자필진술서 작성 경위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도이치모터스 주식으로) 손해를 봐서, 권오수 회장으로부터 ‘그 손해를 어떻게 보상 받을까’ 생각하다가 협박 아닌 협박으로 ‘손해 본 걸 책임져라’ 하기 위해 자필진술서를 작성한 것이냐.”이 씨의 자필진술서에는 ‘권오수 회장으로부터 시세조종 제의를 받고 이를 승낙했다’ ‘권오수 회장이 주가 부양을 위해 주주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등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대한 구체적인 주가조작 과정이 담겨있었다. 2013년 경찰이 B 씨와 관련된 다른 사건 압수수색 과정에서 해당 자필진술서를 확보, 내사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B 씨 역시 이 씨 추천으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했고, 이후 이 씨·A 씨와 함께 자필진술서를 통해 권 회장으로부터 손해를 보상 받을 방법을 논의했다.
이 씨 “맞다. A 씨와 상의를 하니 구체적 내용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자필로 썼다.”
하지만 이 씨는 결국 권오수 회장으로부터 손해에 대한 보상을 따로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김만배 씨가 2011년 5~6월경 이 씨의 자필진술서를 가지고 권오수 회장을 찾아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해 협박을 했다는 정황이 공개됐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는 당시 머니투데이의 법조 출입 기자였다.
4월 22일 공판의 이 씨에 대한 증인신문 중에 나온 내용이다.
검사 “정 씨를 통해 김만배 씨가 권오수 회장에게 가서 ‘이 씨한테 돈 갚아라’라고 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김 아무개 씨는 2차 작전의 ‘주포’ 중 한 명으로, 당시 T 투자증권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는 이 씨가 끌어들인 ‘선수’였는데, 이 씨가 성공보수를 지급하지 않자, 권오수 회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고 이 씨 역할을 이어받아 2차 작전을 주도했다.
이 씨 “나중에 김 아무개 씨에게 들었다.”
김만배 씨가 이 씨의 자필진술서를 확보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10월 21일 공판에서 진행된 B 씨 증인신문에서 등장했다. B 씨는 김만배 씨와의 친분을 인정하면서, 김만배 씨가 이 씨의 자필진술서를 얻게 된 경위에 대해 “김만배 씨가 사무실에 놀러왔다. 밥 먹고 놀다가 우연히 문서를 봤다. ‘뭐냐, 가져가도 되냐’해서 ‘그래라’라고 했다. 그걸로 끝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만배 씨에게 권오수 회장을 협박해 이 씨의 돈을 받아 달라 요구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부탁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만배 씨가 자필기술서 속 주가조작 경위 기록을 보고 스스로 권 회장을 찾아갔다는 취지로 읽힌다.
권오수 회장 측에서 김만배 씨의 방문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증언도 나왔다. 4월 1일 공판에서 실시된 김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다.
검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2011년 7~9월 주가 관련 문자메시지가 현격히 줄어든다.”공판 과정에서 나온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김만배 씨는 이 씨가 작성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경위가 적힌 자필진술서를 B 씨를 통해 확보했다. 이를 가지고 권오수 회장을 찾아가 ‘이 씨에게 줄 돈을 내놓으라’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만배 씨는 자신을 머니투데이 법조 출입 기자임을 밝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권오수 회장은 김만배 씨가 찾아와 나눈 대화 이후 행동이 위축됐다.
김 씨 “(상략) 그때부터 권오수 회장은 주식 얘기하는 것을 꺼렸다.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검사 “김만배 씨·B 씨 등이 권오수 회장을 찾아가 ‘이 씨에게 줄 돈 내놓으라’ 했던 게 이 시기 맞나.”
김 씨 “그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뭔가 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김만배 씨 역시 이 씨의 손해를 메꿀 금전은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주가조작 경위가 담긴 자필진술서를 수중에 넣고도 의혹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세상에 좀 더 일찍 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당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 언급되지도 않았다. 법조 출입 기자였던 김만배 씨가 관련 자료를 확보했으니 단독 기사로 충분히 썼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걸 안 쓰고 가지고만 있었다면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만배 씨의 연결하는 고리가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대선 과정에서 ‘김만배·정영학 녹취록’이 등장했다. 2020년 10월 26일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녹취록을 보면 김만배 씨가 “윤석열이는 형(김만배)이 가지고 있는 카드면 죽어”라고 말한다.
김만배 씨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약점을 아는 듯한 발언이 등장하자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카드’로 김만배 씨 누나가 2019년 4월 윤석열 후보 부친 소유의 서울 연희동 단독주택을 사들인 일, 대검 중수부의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부실수사 등이 거론됐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그 ‘카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검사는 김만배 씨·B 씨 등이 권오수 회장을 찾아간 시기를 2011년 5~7월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시기는 2012년 3월이다. 김만배 씨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고리로 윤 대통령과 관계가 형성됐다고 보기엔 시점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때였던 2020년도 국정감사장에서, 또한 김건희 여사는 7시간 전화 녹취록에서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306호에 살다가 결혼하고 1704호로 이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여사가 1704호로 이사한 시점은 2010년 10월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