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진무장’ 출마 유력했으나 배임 논란 휩싸여, 3대 협회장 얽힌 관계도 주목…정희균 “협회 정상화 위해 사임”

정 회장에게도 타이밍이 찾아왔다. 제20대 대선을 기점으로 정 전 총리는 은퇴한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그림자처럼 모시던 ‘거물 형님’이 은퇴하자 정 회장 출마설이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완진무장’ 지역구에서 정 회장 출마설이 나왔다. 정 전 총리와 정 회장은 전북 진안 태생이다. 진안은 완주, 무주, 장수와 한 지역구로 묶여 있다.
‘완진무장’ 지역구 현역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총선을 앞두고 조정되는 선거구 안에 따라 이 지역구는 재편될 수 있다. 전북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정 회장이 선거구에 변동이 생길 경우 ‘무진장’보다 완주에 무게중심을 두고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정 회장에게 문제가 생겼다. 정 회장이 대한테니스협회 수장으로 취임한 뒤 만든 외곽조직이 배임 논란에 휩싸였다. 정 회장은 2021년 3월 취임한 뒤 한국주니어테니스육성후원회(후원회)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협회 임원들이 후원회 이사를 맡았다.
이후 대한테니스협회 명의로 맺은 각종 계약 후원금 및 국제대회 광고 수익금 일부가 협회가 아닌 후원회 통장으로 입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대행사를 둘러싼 특혜 의혹, 정 회장 아들의 ‘아빠찬스’ 의혹 등이 줄줄이 제기됐다. 정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배임 의혹 등에 “협회가 풍전등화의 상황”이라면서 “협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내가 사임을 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수순이라고 판단해 결단을 내렸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미디어윌을 이끄는 주원석 회장은 주원홍 전 회장 동생이었다. 당시 테니스협회는 원금상환 대신 육사 테니스장 운영권을 확보해 넘겨주기로 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2016년 대한테니스협회장 선거에서 주 전 회장이 재선에 실패했다. 곽용운 전 회장이 제27대 회장으로 취임한 뒤 육사 테니스장을 협회가 직접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미디어윌이라는 회사에 운영권을 주는 것이 배임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디어윌은 대한테니스협회에 30억 원 반환 관련 소를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 미디어윌이 승소했다. 대한테니스협회는 상고심을 포기했다. 미디어윌이 최종 승소하면서 대한테니스협회 통장은 모두 압류됐다. 협회는 원금 30억 원에 그동안 불어난 이자 30억 원까지 총 60억 원 채무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주 전 회장과 곽 전 회장 사이 미묘한 입장 차이가 대한테니스협회 통장 압류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곽 전 회장은 2018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화제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문체위원장이었던 안민석 의원과 설전을 벌인 까닭이었다. 안 의원은 곽 전 회장이 주 전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인수받을 당시 인수위원장으로 친인척을 앉혔다는 대한체육회 감사 결과를 거론하며 2017년 국감 당시 곽 전 회장이 위증을 했다고 지적했다.

2021년 테니스협회장 선거가 열렸다. 주원홍 전 회장과 곽용운 전 회장이 다시 선거에 출마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현직 회장들을 꺾은 인물이 있었다. 정희균 대한테니스협회장이었다.
2022년 정 회장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미디어윌과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마다 5억 원씩 부채를 분할 납부하고, 더 이상 이자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곽용운 전 회장 집행부 문제점을 적시하는 조사 보고서를 협회 홈페이지에 2022년 6월까지 게시하는 조건에도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이 압류된 통장 대신 활용할 별도 통장을 개설하려는 목적으로 한국주니어테니스육성후원회를 설립했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었다. 또 협회와 미디어윌 간 합의는 사실상 주원홍 전 회장과 정희균 회장이 손을 맞잡은 것으로 분석되며 ‘정치 성향에 따른 이합집산’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체육계 관계자는 “정희균 회장과 미디어윌 사이 이뤄진 합의 중 곽용운 집행부에 대한 조사 내용 게시 관련 부분이 이행되지 않았다”면서 “이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 정 회장 리더십에 타격을 입히는 발단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정 회장이 대한테니스협회에서 불명예스럽게 사임하면서 내년 총선 출마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각에선 정 회장이 사실상 불출마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한테니스협회는 한국주니어테니스육성후원회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2023년 8월 23일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압류로 인해 협회 계좌를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에 주니어육성위원회 이름 계좌 두 개를 협회 출납용 계좌로 만든 적이 있다”면서 “2022년 4월 미디어윌과 합의서를 작성한 뒤 모든 돈을 이관했고 2022년 5월 1일부터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협회는 “압류로 인해 명의만 다른 협회 계좌를 통해 받은 후원금”이라면서 “기부금 영수증도 협회 이름으로 발급됐다”고 했다.
체육계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상 3대에 걸친 집행부 회장들 사이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테니스협회가 사고단체로 곪아가고 있다”면서 “주원홍, 곽용운, 정희균 회장 사이에 얽히고설킨 삼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묘한 상황에서 촉발된 의혹이 정 회장 총선 출마 꿈을 저지한 데 결정적인 한방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