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이스 가동…스쿼드 살찌웠다
▲ 월드컵대표팀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챔피언 잠비아의 평가전이 지난 15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이근호(맨 오른쪽)가 헤딩슛을 시도하는 모습. 연합뉴스 |
# 어려웠던 엔트리 구성
연이어 또 다른 축구를 관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축구 팬들은 잔뜩 흥분했지만 최강희 감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종의 딜레마였다. 무엇보다 시기가 애매했다. 런던올림픽과 시기가 거의 겹친 바람에 최상의 스쿼드 구성이 불가능했다. 올림픽 출전 멤버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표팀과의 교집합 관계에 놓여있었다.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이어졌던 스페인 평가전-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카타르 원정-레바논 홈 경기까지 A매치 3연전을 위해 소집됐던 선수들이 대거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다. 기성용(셀틱),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지동원(선덜랜드), 남태희(레퀴야SC), 김보경(카디프시티), 김영권(광저우), 정성룡(수원 삼성) 등이 국가대표팀과 올림픽팀의 교집합 범주에 놓였던 주인공들. 최 감독은 일단 이들을 제외시키고 선수 선발을 준비해야 했다.
FIFA의 A매치 소집 규정을 들어 잠비아전에도 선수들을 불러들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해당 선수와 클럽들에 대한 배려였다. 이번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유럽리거들은 소속 팀에서 시즌 준비를 아예 하지 못했다. 심지어 올해 여름 선수이적시장에 맞춰 팀을 옮긴 선수들조차 적응할 틈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소속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맞이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버겁다는 건 과거의 사례에서도 많이 나타났다. 홍명보호의 ‘캡틴’으로 활약한 구자철만 해도 작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득점왕(5골) 등극을 계기로 꿈에 그리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지만 임팩트가 없었다. 휴식도 제대로 못했고, 팀 적응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구자철은 “그때처럼 축구가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최 감독도 이를 알고 있었다. 코칭스태프와 회의 끝에 런던올림픽 멤버들을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을 경우, 일정 기간 시간이 주어지는 만큼, 대표팀 차출도 염두에 둘 수 있었으나 선수들이 자칫 느낄 수도 있었던 허탈감을 고려할 때 잔인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물론 결과적으로 최 감독의 이러한 결정은 젊은 선수들과 팀, 모두를 살리는 일이 됐다.
# 마지막 눈도장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극명했다. 잠비아와의 평가전은 결국 평가전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없었다. 명색이 국가대표팀 승부인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잘 알지만 정상 전력도 아닌 마당에, 6월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치르며 대표팀이 보여줬던 환상적인 퍼포먼스의 재연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물론 플레이는 나쁘지 않았다. 오랜 부상에서 회복돼 서서히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는 이청용(볼턴)도 선수 보호를 위해 제외시켰다.
그러나 딜레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K리거들의 침묵이었다. 연일 열대야와 혹독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상당수 선수들의 페이스가 눈에 띄게 하향곡선을 그렸다. 여기에 올림픽 최종엔트리 18명 명단에 들지 못한 선수들을 차출하는 것도 현실상 어려웠다. 이미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소속 팀에서 제 몫을 해주지 못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한때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불리운 윤빛가람(성남 일화)이 대표적인 케이스.
그럼에도 결국 해결책은 하나였다. 꿋꿋이 국내파 중심의 기조를 이어갔다. K리그가 대표팀에 끼칠 수 있는 긍정의 영향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유럽파를 많이 접하지 못했다. 그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 K리그 현장에 머물다보니 국내파에 대한 실력과 쓰임새를 파악하는 게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게 최 감독의 생각이었다.
이미 K리거들의 활용으로 성공적인 작품을 쓴 기억이 있다. 2월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2-0 승)이 그랬다. 패하면 최종예선 탈락의 고배를 들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 최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국내파 위주로 엔트리를 짰고, 결국 결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쿠웨이트전과 잠비아전은 큰 틀에서부터 달랐다. 2월 당시와 같이 국내파 중심으로 스쿼드가 구성되지만 이번에는 실험적 성향이 좀 더 짙었다.
새로 이름을 올린 선수들에게는 향후 자신의 가치를 가늠할 기회가 됐다. 쿠웨이트전 때는 베테랑들이 즐비했다면 잠비아전은 국내파 영건들과 그간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던 선수들이 주축으로 나서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줬다.
# 진짜 무대를 위해
최강희호의 진정한 도전은 임박한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4라운드다. 9월 11일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치르고 나면 10월 16일 이란 원정에 나선다.
비록 홈 경기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이동거리가 짧아 컨디션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도 유럽파 차출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에 따라 나름의 계획도 세웠다. 고지대가 변수로 작용할 이란 원정의 경우, 일찍 현지로 이동해 캠프를 마련하고, 우즈벡전은 최대한 피로를 줄여 모든 걸 쏟아 붓겠다는 생각이다.
최 감독의 생각은 분명하다. 2무승부보다는 1승이 낫다는 것. “2무를 하면 승점이 2점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 1승1패는 승점 3을 얻을 수 있다. 한 번 이상은 꼭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며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의 부활을 선언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