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세계 공통 관심, 급격히 사랑 빠져 내년 결혼 발표…베렛 “9·11테러 예측” 황당 발언에 ‘사기꾼’ 비난도
노르웨이 공주 메르타 루이스(51)와 미국 출신의 주술사(샤먼)인 듀렉 베렛(48)이 공식적인 결혼식 날짜를 발표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결혼식은 내년 8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게이랑에르에 위치한 유니온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랄 5세 국왕과 소냐 하랄센 왕비의 장녀인 루이스 공주는 노르웨이 왕위 계승 서열 4위로, 이번이 두 번째 결혼이다.
2019년 처음 교제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 후부터 둘의 관계는 응원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왔다. 국적과 신분, 그리고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은 세기의 사랑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기꾼’ ‘허풍쟁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배경에는 영적 세계와 신비주의를 설파하는 커플의 행보가 있다. 이를테면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거나 ‘한 번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등 다소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주와 주술사’라는 특이한 만남에 유럽 전역은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둘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왕실보다 사랑을 택한 루이스 공주는 현재 왕실 직함은 유지하고 있지만 왕족으로서의 직무는 완전히 중단한 상태다. 베렛 역시 결혼 후 노르웨이로 이주해서 살되 따로 왕실 직함은 갖지 않게 될 예정이다. 왕실 직무를 중단한 데 대해 공주는 “사적인 개인으로서의 ‘나’와 왕실 일원으로서의 ‘나’를 구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2019년 무렵 친구의 소개로 만난 둘은 처음에는 주술사와 고객 사이였다. 베렛은 당시에 대해 “고객과 사랑에 빠지는 건 나에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매력에 이끌렸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둘이 급격히 가까워진 배경에는 영적 세계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다. 신비주의를 믿는다는 공통분모로 서로에게 끌렸던 둘은 2019년 5월 교제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노르웨이 왕실은 물론이요, 노르웨이 국민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첫 남편과 이혼한 후 이렇다 할 스캔들이 없던 공주가 갑자기 연애를 시작한 상대가 외국인인 데다 흑인에 주술사라는 점은 너무나도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렛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대체의학과 신비주의에 빠져있었던 공주였기에 어쩌면 둘의 만남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공주는 평소 스스로를 가리켜 ‘영적인 존재’라고 부르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다”거나 “나는 천사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는 어린 시절 처음으로 초능력을 경험한 순간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공주는 “어렸을 때 나는 사람들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 사람이 슬픈지 기쁜지…그 사람이 어깨에 통증이 있으면 나도 내 어깨에 통증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그것이 내 재능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수십 년 동안 대체의학에도 관심을 보여온 공주는 “연구에 기반한 지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대체의학이 전통적인 의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공주가 대체의학 관련 사업을 벌이자 곧 비난이 쏟아졌다. 왕실의 직함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이를 의식한 공주는 얼마 후 왕실 지위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공주는 “노르웨이에서는 내가 믿고 있는 영적 신념이 금기시되고 있다”면서 “내 신념 때문에 나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비난을 받는 사람이 됐다”며 씁쓸해 했다.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니 공주가 금세 사랑에 빠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자신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하는 베렛은 조상 대대로 무속인이었던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아이티 혈통의 엔지니어였으며, 어머니는 노르웨이계 인도인이었다. 가족의 전통을 이어받아 ‘6대 치유사’가 된 그는 11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술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2015년 아이슬란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머니는 나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이미 내가 매우 특별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어머니는 나에게 북을 연주해주거나 식물의 신비로움에 대해 가르쳐 줬다. 나는 종종 무아지경(최면상태)에 빠졌고 그때마다 내 조상들을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술사였던 할머니를 만났던 경험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나는 그들을 몰랐고,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어두운 피부의 여자 한 명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매우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을 ‘마멀(Mammal)’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나중에 그가 무속인이었던 나의 증조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증조할머니는 영적 세계로부터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이미 예지력을 통해 자신이 노르웨이 왕가의 자손과 혼인을 맺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는 “내가 10대였을 때 어머니는 언젠가 노르웨이에 있는 어머니의 조상으로부터 누군가 나를 찾아와 내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게 누구예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공주님’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맞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생을 믿는 베렛은 자신이 과거에 왕이었으며, 자신과 루이스 공주는 여러 생에 걸쳐 부부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한번은 자신이 이집트의 파라오였고, 공주는 여왕이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을 펼쳐서 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암에 걸리는 이유는 불행하기 때문”이라거나 “몸이 아플 경우 구토를 하면 몸 속의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또 “나는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쳐서 비난을 받기도 한 그는 “어린 시절 한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다. 그때 영혼이 ‘불타오르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다시는 걷지 못하고, 살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일곱 명의 전문가들이 모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력한 존재들이 나에게 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정돈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면서 이를 통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그는 “섹스 파트너가 너무 많으면 몸 안에 흔적이 남기 때문에 청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9·11 테러 발생 2년 전에 나는 그것을 예측했다”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현재 그는 웹사이트를 통해 명상 음악이나 자신이 집필한 책을 판매하고 있으며, 무속인 부트캠프, 워크숍 및 강연회, 무속인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와의 일대일 면담 비용은 320~800파운드(약 52만~130만 원) 정도다.
그의 이름이 더욱 알려진 이유는 할리우드 셀럽들과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다. 귀네스 팰트로, 제임스 반 데 빅, 셀마 블레어, 로사리오 도슨을 포함한 몇몇 유명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그는 덕분에 정기적으로 할리우드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고 있다. 특히 그와 가까운 팰트로는 “내가 생각하기에 베렛의 매력은 매우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초인간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어린 아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포옹을 해주고, 또 포옹을 받는다. 그는 순수한 사람이다. 큰 웃음으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지만, 단지 손목뼈를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모든 것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알려준다”고 칭찬했다.
할리우드에서의 이런 평가와 달리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를 가리켜 ‘사기꾼’이라거나 ‘음모론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공주와의 관계가 알려진 후 그는 여러 차례 협박을 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커플은 이런 비난이 편견과 오해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비난이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하는 공주는 “베렛과 사귀기 시작한 이후 노르웨이 사람들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으며, 베렛은 “우리의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서 서로 다른 인종간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공주의 결정에 대해 하랄 왕과 소냐 여왕을 포함한 왕실 가족들은 속내는 어떨지 모르지만 현재는 흔쾌히 수락한 상태다. 공주는 부모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고 말하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가족은 항상 함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힘들더라도 항상 대화를 나눠야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하셨다”면서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준 가족에게 감사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혼식 비용은 여론을 의식해서 전액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이미 왕실 직무를 포기하면서 “국가에서 주는 돈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돈을 벌고 싶다. 난생 처음으로 세금이란 걸 내고 싶다”고 밝힌 만큼 평범한 신분을 택한 공주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울증 시달리다 결국…첫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논란
루이스 공주의 첫 번째 결혼 역시 논란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이자 예술가였던 평민 신분의 아리 벤이 왕실의 전통적인 배우자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심한 비난과 반대에 부딪쳤던 두 사람은 그럼에도 꿋꿋이 의지를 관철시켰고, 마침내 왕실 가족의 허락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2002년, 트론헤임의 역사적인 니다로스 대성당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린 둘은 한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고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노르웨이 언론과 대중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을 견디지 못했던 부부는 한때 도피하다시피 런던으로 떠나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부 사이는 소원해져 갔다. 급기야 2016년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으며, 공주는 이혼 사유에 대해 “서로 떨어져 있었고 전처럼 더 이상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이혼 절차가 완료된 후 집필 활동을 계속했던 벤은 곧 ‘인페르노’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이 싸우고 있는 정신 건강 문제, 즉 두통, 환각, 호흡 곤란 등에 대해 호소하듯이 써내려갔다. 책을 홍보하는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최악의 경우에는 광대이고, 최선의 경우에는 기껏해야 홍보 담당자이자 배우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바보처럼 비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이 책에 대해 비평가들은 ‘절망과 슬픔으로 오열하고 있다’며 비꼬기에 바빴다.
우울증이 심했던 벤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곁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라며 “마치 누구와도 결코 인연을 맺을 수 없을 것만 같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 그는 자신이 매일 오후 1시 30분부터 술을 마시는 나쁜 습관이 있으며, 결코 좋은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다는 사실에 걱정이 된다고도 털어 놓았다.
결국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2019년 12월 25일, 47세의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한편에서는 그가 공주와 주술사의 교제 사실에 상심한 나머지 목숨을 끊은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공주는 “사람들은 베렛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나의 잘못이자 베렛의 잘못이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이혼한 지 이미 3년이 지난 상태였다. 벤에게도 당시 새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 역시 베렛의 존재를 인정했었다”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주는 “전 남편은 정신적으로 언론의 비판을 받는 데 있어 상당히 예민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언론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스스로 반성했다. 아마도 언론은 그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벤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