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황선우도 ‘월드 클래스’ 입증…한국 금메달 50개 이상 획득 목표
#아시아 정복 도전하는 '스마일 점퍼'
우상혁은 한국 육상 역사에 새 장을 연, 남자 높이뛰기의 간판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낸 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4위에 올라 역대 한국 육상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어 지난해 세계선수권 은메달, 실내 세계선수권 금메달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 초 슬럼프에 빠졌다. 발뒤꿈치 통증과 부비동염 수술 여파로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지난 6월 다이아몬드리그를 아쉬운 2위로 마쳤고, 한국 최초로 2회 연속 세계선수권 메달을 노렸던 지난 8월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우상혁은 좌절하지 않았다. 경쟁자들보다 작은 키(188㎝)와 왼발이 오른발보다 작은 '짝발'의 핸디캡을 딛고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된 터다. 우상혁은 별명인 '스마일 점퍼'처럼 웃으며 힘든 치료와 훈련을 이겨냈다. 그 결과 지난 17일 세계 육상의 '왕중왕전' 격인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서 2m35를 넘어 정상에 섰다.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은 육상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다음으로 권위 있는 대회다. 우상혁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 진출했고, 올 시즌 출전한 모든 대회 중 가장 좋은 경기력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가능성도 높아진 건 물론이다. 우상혁은 "남은 목표는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이었다. 다이아몬드리그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는 우상혁은 9월 27일 결전지 항저우에 입성한다. 남자 높이뛰기 결선은 10월 4일 열린다. 우상혁은 항저우에서 아시아 최강자 무타즈 에사 바르심(32·카타르)을 넘어야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
바르심은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아시안게임에서는 2010년(광저우)와 2014년(인천)에서 2연패에 성공했다. 2018년 자카르카-팔렘방 대회에 출전했다면 3연패도 가능했을 선수다. 키도 우상혁보다 2㎝ 더 크다. 바르심은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 불참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출전한다. 올림픽닷컴은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 바르심의 라이벌은 우상혁이다.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은 바르심이 2m36, 우상혁이 2m35다. 둘은 항저우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상혁은 "바르심과 경기하면 적절한 긴장감이 생긴다. 항저우에서는 더 재밌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관왕 도전하는 '수영 간판'
생애 첫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한국 수영의 간판 황선우는 최근 3년 사이 무섭게 성장했다. 그는 18세에 출전한 도쿄 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선에서 47초56에 물살을 갈라 당시 아시아 신기록과 세계주니어신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또 자유형 200m 예선에서 1분44초62의 당시 한국 신기록과 세계주니어신기록을 세우고 준결선에 진출한 뒤, 한국 선수로는 2012 런던 올림픽 박태환 이후 9년 만에 올림픽 경영 결선까지 올라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선수권에서도 두 차례나 입상했다. 주 종목인 남자 자유형 200m에서 지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회 은메달(1분44초47), 올해 일본 후쿠오카 대회 동메달(1분44초42)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 2회 연속 메달 획득은 '마린보이' 박태환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황선우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자유형 100m와 200m, 단체전인 계영 800m에 출전한다. '세계적 레벨'에 오른 황선우가 아시아 내에서 라이벌로 꼽을 만한 선수는 중국의 떠오르는 스타 판잔러(19)가 유일하다. 실제로 올림픽닷컴은 "황선우는 이번 아시안게임 수영 경영 남자 자유형 100m와 200m에서 판잔러와 흥미진진한 대결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민(22), 이호준(22), 양재훈(25)과 함께 한국 수영 사상 첫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노리는 계영 800m도 중국과 1위를 겨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 종목인 자유형 200m에선 황선우의 우위가 확실해 보인다. 황선우는 두 달 전 아시안게임의 전초전 같았던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자유형 200m에서 3위에 올라 아시아 선수 중 최고의 성적 냈다. 준결선에서 1분46초05로 전체 10위에 그쳐 탈락한 판잔러와 대조적이었다. 올 시즌 판잔러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위협했지만, 여전히 황선우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황선우는 "이번이 나에게는 첫 아시안게임이다. 만약 작년에 열렸다면 긴장했을 텐데, 이제는 1년 사이 많은 대회를 치러 경험도 충분히 쌓았다"며 "이 경험을 살려서 이번 대회를 내 무대로 만들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한국 수영 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4관왕에 도전하는 김우민도 황선우와 함께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 중장거리의 최강자인 그는 자유형 400m, 800m, 1500m와 계영 800m에 출전해 모두 우승을 노린다. 4개 종목 모두 아시아 정상권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역대 아시안게임 수영에서 단일 대회 4관왕을 차지한 한국 선수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3관왕도 역대 2명뿐이다.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3관왕에 올랐고, 박태환이 2006년 도하 대회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2회 연속 3관왕을 달성했다. 김우민이 항저우에서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전설적인 선배들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계영 800m 금메달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황선우, 김우민, 이호준, 양재훈이 동반 호주 전지훈련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집중 훈련한 종목이다. 황선우는 "계영 멤버 4명 모두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기록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훈련에서 좋은 기록을 냈다"며 "정말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지켜봐 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호준도 "계영 800m에서는 한국 기록(7분04초07)뿐 아니라 아시아 기록(일본·7분02초26) 경신도 넘보고 있다"고 했다.
#금메달 예약한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은 지난 7월 1996년 방수현 이후 한국 선수로는 27년 만에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이어 8월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우승에 성공하는 새 역사를 썼다. 이뿐만 아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 전 마지막 국제대회인 9월 10일 세계배드민턴연맹 월드투어 중국오픈에서도 정상에 올라 세계 최강의 자리를 재확인했다. 올 시즌 9승째. 지난 7월 열린 한국오픈과 일본오픈, 8월 세계선수권에 이은 국제대회 4연속 우승이다.
천적이던 중국 천위페이(25·세계 3위)나 일본 야마구치 아카네(26·세계 2위)를 상대로 최근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도 금메달 가능성을 높인다. 이변이 없다면 사실상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예약한 거나 다름없다. 안세영은 "아시안게임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강조했다. "욕심을 내면 잘 안 될 때가 많더라. 한 경기씩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올 거다.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렵겠지만 잘 이겨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안세영은 18세에 참가한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1회전(32강)에서 떨어진 아픈 기억이 있다. 한국 배드민턴은 그 대회에서 40년 만의 아시안게임 '노메달' 수모를 당했다. 안세영은 이후 절치부심해 이번 항저우 대회를 준비해왔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방수현 이후 29년 만에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따내 한국 배드민턴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각오다.
한국 밖에서도 안세영의 존재감을 주목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정보 사이트 '마이 인포'는 이번 대회를 빛낼 종목별 스타를 꼽으면서 배드민턴의 안세영을 소개했다. "21세의 나이에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 1위에 올랐고, 한국에 첫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금메달을 안긴 선수"라며 "두 번 세계 정상에 오른 아카네, 도쿄 올림픽 1위 천위페이를 물리치고 올해에만 7번이나 단식 금메달을 휩쓸었다"며 안세영의 놀라운 상승세에 집중했다. AFP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주목할 선수 8명' 안에 안세영을 꼽으면서 "올해 9차례 국제대회에서 우승했고, 세계 1위까지 오른 선수다. 다만 전 세계 랭킹 1위 아카네와 중국 선수들의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고 썼다. 안세영은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되면서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아시안게임에서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만큼 체력 관리를 잘하고 공격력을 보완하며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8년 만의 금 노리는 '장미란 키즈'
박혜정은 장미란 이후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한국 여자 역도의 간판이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출전한 9월 16일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최중량급인 87㎏ 이상급 경기에서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리 인상, 용상, 합계 중량을 분류해 모두 메달을 준다. 박혜정은 여자 인상 124㎏, 용상 165㎏, 합계 289㎏을 들어 3개 부문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에서 한국 선수가 3관왕을 차지한 건 박혜정이 최초다.
여자 역도의 레전드인 장미란 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현역 시절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장 차관은 2005년 카타르 도하, 2006년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 2007년 태국 치앙마이, 2009년 한국 고양 대회에서 총 4회나 세계선수권 여자 최중량급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인상에선 매번 2위에 머물러 3관왕은 달성하지 못했다. 2년 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대회(중국 선수 전원 불참)에서 우승했던 손영희(30)도 인상에서 2위에 머물러 용상과 합계 2관왕에 만족해야 했다. 박혜정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당초 3개 부문 세계 기록(인상 148㎏, 용상 187㎏, 합계 335㎏) 보유자인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원원(23·중국)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리원원은 박혜정이 급부상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여자 역도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리원원은 이날 인상 1·2차 시기에서 잇달아 130㎏를 드는 데 실패하더니 이후 부상으로 기권했다. 리원원이 경기를 포기한 뒤 박혜정을 위협할 선수는 없었다.
박혜정은 '장미란 키즈'다. 장미란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세계선수권 우승 순간을 지켜보면서 감동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역도를 하겠다"며 역도부가 있는 선부중학교를 찾아왔다. 이후 한국 중학생 신기록(합계 259㎏)과 주니어 신기록(290㎏)을 연거푸 작성하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5월 세계주니어선수권과 7월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해 '포스트 장미란'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박혜정은 손영희와 함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다시 한번 리원원과 우승을 다툰다. 한국 역도는 2014년 인천 대회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2회 연속 '노 골드'에 그쳤다. 한국의 여자 최중량급 금메달리스트도 2010년 광저우 대회의 장미란이 마지막이다. 이번 대회의 1순위 금메달 후보는 여전히 리원원이지만, 박혜정은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언제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2020년 이후 여자 역도에서 합계 295㎏ 이상을 든 선수는 리원원과 박혜정, 단 두 명뿐이다. 박혜정은 "항저우에서는 더 열심히 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