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만 동원한 1편 ‘복붙’, 제작자가 직접 연출…유라 시나리오 안 보고 출연, 탁재훈 “작품성 기대 마세요”
‘가문의 영광’은 영화 팬들의 기억에 남은 한국 영화 대표 코미디 시리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총 5편의 시리즈가 제작됐고, 누적 2000만 관객을 동원할 만큼 흥행에도 성공했다. 과거 흥행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은 영화계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 역시 그 흐름을 따랐지만, 영화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촬영부터 개봉까지 두 달밖에 걸리지 않은 제작 속도와 방식 때문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도 두 달 만에 찍어서 공개하기란 불가능한 일. 하물며 추석이라는 대목을 겨냥한 영화의 선택으로도 도저히 믿기 어려운 방식인 만큼 관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석 개봉 이유? “큰 시장에 들어와야 크게 성공”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시리즈 통산 6번째 작품이다. 이야기는 정준호와 김정은이 주연한 2002년작 ‘가문의 영광’ 1편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1편은 ‘조폭’ 장씨 가문이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를 사위로 삼기 위해 벌이는 비밀 결혼 작전을 그려 520만 동원에 성공했다. 이번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조직을 정리하고 사업가로 성공한 가문의 수장 덕자(김수미 분)가 비혼을 선언한 막내딸 진경(유라 분)을 유명한 스타작가 대서(윤현민 분)와 결혼시키기 위해 벌이는 비밀 작전을 다뤘다. 덕자의 장남 석재(탁재훈 분), 가문의 궂은일을 도맡는 종면(정준하 분)과 종칠(고윤 분)도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2023년 5월 작품 구상을 시작했다. 시나리오 완성과 캐스팅까지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 캐스팅도 ‘가문의 영광’다웠다. 연출을 맡은 정태원 감독은 여러 스타 배우들에게 출연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캐스팅에 난항을 겪을 수도 있었지만 일은 의외로 술술 풀렸다. 우연히 절친한 배우 김승우를 통해 윤현민을 소개받았고, 즉석에서 영화 계획을 전하고 주연 자리를 제안했다. 윤현민은 곧바로 출연을 약속했다.
여주인공 유라의 캐스팅은 더 놀랍다. ‘SNL 코리아’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인 유라의 모습을 접한 정태원 감독은 소속사를 통해 출연을 제안했다. 이에 유라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고,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만인 7월 9일 첫 촬영에 나섰다. 주연 캐스팅의 지난한 과정은 물론 작품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준비를 거듭하는 최근 영화 촬영 현장과 비교하면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그야말로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정태원 감독은 사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기획한 제작자다. 그러다 2012년에 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인 ‘가문의 수난’을 직접 연출해 200만 관객 동원을 이끌었다. 가장 성공한 1편을 리부트한 이번 ‘가문의 영광: 리턴즈’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다시 맡은 그는 “20년 만에 요즘 세대의 감성에 맞게 새로운 캐스팅과 아이디어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굳이 추석 시장을 노리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올해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만 우리는 장르가 다르니까 골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힌 정태원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있어야 시장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센 시장에 들어가서 이겨야 영화도 더 크게 성공할 수 있기에 추석 시장에 들어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아무리 시리즈의 전통성을 가장 잘 아는 제작자가 감독을 맡았다고 해도 추석을 노린 상업영화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되기는 어렵다. ‘가문의 영광’ 2, 3, 5편을 연출한 정용기 감독이 공동연출을 맡아 이를 가능하게 했다.
#김수미 아침에 ‘혼술’ 먹고 제작자에 전화한 사연
‘가문의 영광: 리턴즈’에는 김수미부터 탁재훈, 정준하 등 기존 시리즈에서 활약했던 배우들이 동참한다. 김수미는 ‘가문의 영광’ 2편부터 장성한 아들들을 휘어잡으면서 조직을 거느린 홍덕자 캐릭터로 활약한 주인공. “3년 전부터 가문의 영광 팀이 상당히 그리웠다”는 그는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했어도 무지 외로웠다”고 했다. 그 즈음 김수미는 “아침에 ‘혼술’을 한 잔 마시고 제작자(정태원)에게 전화를 했다”고 털어놨다. 탁재훈 등 아들들과 ‘가문의 영광’을 찍을 때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뜻이 모인 끝에 이번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다.
홍덕자의 못 말리는 아들로 활약해온 탁재훈도 ‘가문의 영광’에 남다른 애착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새로운 시리즈를 내놓으려면 ‘과거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옛날 스타일대로 웃기면 요즘 관객은 웃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신경 쓰면서 촬영했다”고 밝힌 그는 “요즘 안 좋은 일이 많은데 영화를 보면서 잠깐이라도 편하게 웃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작품성을 기대하고 오는 분들이 있다면 기대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특이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과연 제작진과 출연진의 바람처럼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요즘 관객이 좋아할 만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까. 촬영부터 개봉까지 두 달밖에 걸리지 않은 제작 공정으로 영화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에 부합하는 재미를 보장하고 있을까.
초반 흥행 성적은 기대 이하다. 9월 21일 개봉해 첫 주말인 24일까지 4일 동안 고작 9만 5271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조폭 코미디’를 답습한다는 지적, 슬랩스틱 코미디로 이야기 대부분을 채웠다는 비평은 물론이고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성적인 코드의 유머가 난무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게다가 시리즈가 그동안 증명해왔던 정통 코미디의 맛이 덜하다는 반응이다.
한편 홍덕자 일가를 돕는 조력자로 출연한 배우 고윤이 선보인 ‘노룩패스’를 빗댄 에피소드가 화제가 됐다. 고윤은 실제 ‘노룩패스’의 주인공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아들이다. 영화를 처음 공개한 시사회가 하필이면 김무성 전 대표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고윤은 “아버지께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또 다른 이슈를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민망해하면서도 “개봉하면 아버지를 모시고 영화를 함께 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