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실률 30% 넘어, 랜드마크 ‘커피스미스’도 폐업…맛집·카페들 임대료 낮은 ‘세로수길’로 몰려
#‘가로수길의 몰락’ 현황과 원인
일요신문이 찾은 가로수길의 실제 모습은 ‘유령 거리’ 같았다. 대로 초입 건물부터 공실로 시작해 애플스토어 등 일부 매장을 제외하고 상당수 건물에 ‘임대 문의’가 나붙었다. 간혹 깔세라고 붙어있는 건물도 있었다. 깔세란 임대 기간만큼의 금액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월세를 말한다. 깔세는 대개 보증금이나 권리금이 없어 ‘팝업 스토어’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가로수길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예전에 커피스미스가 문 닫으면 가로수길도 망한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어느 날 친구로부터 커피스미스가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로수길의 랜드마크였던 ‘커피스미스 가로수길점’은 2021년 7월 문을 닫았다. 신사동 공인중개사들은 폐점 이유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2021년 1분기와 2022년 1분기 가로수길 상가 개업률은 폐업률보다 높았다. 하지만 2023년 1분기 상가 개업률과 폐업률은 2.6%로 같았다. 상승한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가로수길 상권 공실률은 지난해 3분기 29.5%에서 4분기 31.5%로 높아졌다.
신사동 A 공인중개사는 “가로수길이 막 유명해졌을 때는 주인들이 장난 아니었다. 장사하다가 나가면 무조건 (임대료를) 100만 원씩 올렸다. 그렇게 대단했던 가로수길 메인이 지금은 텅텅 비어있는 이유는 오로지 임대료 때문이다”라고 가로수길 공실률 상승의 원인을 분석했다.
신사동 상가 전체의 임대료 수준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신사동의 2022년 1분기 임대료는 3.3㎡(약 1평)당 15만 5460원으로 전년 동기(14만 4136원) 대비 7.9% 상승했다. 또한 신사동의 올해 1분기 임대료는 3.3㎡당 17만 7010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13.9% 상승했다.
신사동 B 공인중개사는 “가로수길은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 공실률이 심각하고, 특히 중심가 쪽은 많이 죽어있다. 그래서 여기 있던 상권이 다 세로수길로 넘어간 거다. 앞으로 세로수길 임대료도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리단길 때도 그랬고, 똑같은 상황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공실이 늘면서 시민들도 가로수길을 외면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20대 여성 이 아무개 씨는 “원래 가로수길에서 쇼핑을 하고 세로수길에서 주로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간다. 이제는 대로 주변 가게들이 많이 폐업하기도 했고 사람들이 없으니까 (가로수길에)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2030 여성 ‘새로운 성지’로 발길
세로수길은 가로수길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젠틀몬스터’ ‘바이레도’ ‘코스’ 등의 패션·뷰티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는 메인 거리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붐볐다. 가로수길 대로변에 자리했던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들 역시 세로수길로 터를 옮겼다. 공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이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앞을 서성거리는 장면을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온 한 20대 여성은 “가로수길(세로수길)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방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탬버린즈 신사 플래그십 스토어’가 입점해 있는 건물 벽면의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사진은 젊은 여성 관광객들의 포토 스팟으로 자리매김했다.
신규 입점을 준비하는 가게들도 곳곳에 있었다. 간판을 새로 다는 에스프레소 바, 인테리어 시공 중인 옷가게 등 세로수길 상가들은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누데이크’와 ‘마일스톤 커피’ 등 인기 카페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볼 수 있었다.
금요일 저녁에 다시 찾은 세로수길은 더욱 핫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고, 낮과 달리 야외 술집에 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세로수길 행인 대부분은 20~30대였으며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세로수길이 핫플이 된 이유에 대해 시민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대부분이 카페와 맛집을 세로수길 방문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여기에 옷 가게나 셀프 사진관 등 2030 세대가 자주 찾는 즐길거리가 갖춰져 있다는 점을 꼽는 이들도 있었다.
20대 남성 유 아무개 씨는 “사람들이 몰리는 핫플레이스는 보통 여자들이 먼저 모이고, 그 다음 남자들이 따라서 모이게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세로수길에는 여자들이 자주 가는 카페와 맛집들이 많다. 그리고 세로수길에서 조금만 더 가면 압구정로데오 쪽 클럽이나 헌팅포차들이 줄지어 있다. 2030 남녀가 모이기 좋은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래서 세로수길 쪽에 사람이 많아지게 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30대 여성 박 아무개 씨는 “세로수길에는 가장 중요한 맛집이나 예쁜 카페들이 많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주 놀러오게 되는 것 같다. 유명한 카페들을 보면 웨이팅까지 하면서 들어가려고 한다. 사실 쇼핑은 곁가지다. 카페 사이사이에 위치해서 가끔씩 둘러보는 것이다. 세로수길은 맛집과 술집, 카페 때문에 핫플이 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20대 여성 양 아무개 씨는 “요즘 핫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사진관이다. ‘인생네컷’ ‘하루필름’ ‘포토이즘’ 등 셀프 사진관이 많아 친구들과 놀거나 (연인과) 데이트하기에 적합하다. 방금도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나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핫플은 뒤로수길? ‘너는 또 누구냐’
가로수길을 지나 먹자골목이 등장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빌라들이 줄지어 섰다. 이 빌라들 사이사이에는 작은 옷 가게, 카페 등이 드물게 입점해 있었다. 이곳을 뒤로수길이라고 부르는데, 세로수길이 가로수길의 전철을 밟아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길 경우 차세대 핫플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골목이다.
빌라와 저층의 상가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어우러지며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뒤로수길은 성수동 골목과 유사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tvN ‘알쓸신잡2’에 출연해 “앞에 무엇이 있는지 예측되지 않을 때 그 골목은 매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30이) 도로 폭이 좁고 걸어갈수록 환경이 계속 바뀌는 가로수길과 익선동, 경리단길 등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현준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뒤로수길은 젊은층의 성지가 될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셈이다.
뒤로수길은 가구 브랜드 ‘DESKER’와 ‘안테룸 서울’이 협업해 가로수길 뒷골목에 입점한 색깔 있는 상점들을 소개하는 ‘뒤로수길 프로젝트’ 이후 사용된 이름이다. 다만 신사동 상인들과 공인중개사들, 그리고 시민들 대부분은 뒤로수길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신사동 C 공인중개사는 “가로수길 양옆의 뒷골목을 뒤로수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법정 도로명칭은 아니”라며 “이곳에는 신규 입점하는 상가도 많지 않다”고 뒤로수길 인근의 상가 임대 현황에 대해 언급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