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작품은 부르는 게 값 “천만 원대 오갔다” 소문도
▲ 올해로 5년차를 맞는 대학입학사정관제도가 도입취지와는 달리 대필자기소개서 등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필을 광고하는 사이트. |
입학사정관전형 시즌을 코앞에 둔 지금,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은밀한’ 대필 거래의 세계, 그 천태만상을 따라가 봤다.
이른바 자소서 ‘대필 시장’에 불이 붙은 까닭은 자소서와 면접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학사정관제 특유의 구조 때문이다. 실제로 강남, 목동 일대 학원에서 ‘수시 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자소서 대필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필 관련 사업을 두고 업계에선 이른바 ‘대필 깔대기’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수시 컨설팅의 대부분은 모두 ‘대필’로 귀결된다는 점을 꼬집어 나온 은어다. 그러나 이런 ‘대필’ 의혹이 제기되는 것을 두고 대다수 학원들은 저마다 발끈하는 모양새다. 학생들이 직접 쓴 자소서를 검토해주는 수준, 말 그대로 단순한 컨설팅만 하고 있다는 게 학원 측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21일 학부모로 가장해 강남 소재 P 학원 등 유명 학원 3곳에 전화로 문의해보니 얘기가 달라졌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하려는데 우리 애가 글을 너무 못 써서 걱정이 크다. 전문가가 대필해줄 수 있는가”는 질문에 P 학원 담당자는 “전화상으로 말하긴 곤란하다. 직접 학원으로 방문해주시면 어머님이 원하는 답이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대필의 가능성을 내비치는 답을 했다. 나머지 학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현재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을 대동해 22일 강남 유명 중대형 학원 2곳에 직접 찾아가봤다. 대필은 의외로 짧은 기간 내에 쉽게 이뤄졌다. 학생의 지난 6월 모의고사 성적을 학원 자체 시스템으로 분석해 수시지원 가능 대학을 지정해준 후 이에 맞게 자소서를 꾸미는 작업까지 고작 1~2일이 소요됐다. 이들은 또 수시로 학생에게 전화를 해 “봉사활동 내용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바꾸겠다”면서 추가적인 정보를 묻기도 했다.
학생이 직접 쓴 자소서가 아니기 때문에 훗날 면접에서 받을지도 모르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학생이 원할 경우 면접 과외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면접 과외의 경우 약 10만~20만 원 정도를 더 지불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4~5개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한 학생당 수시컨설팅 명목의 대필, 면접과외 비용으로 200만~250여 만 원이 지출되고 있었다. ‘대필 1부당 500만 원 이상 호가한다’던 기존에 알려진 가격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강남 학원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진 A 교육컨설팅 대표 김 아무개 씨(40대)는 “고작 100만~200만 원 벌겠다고 누가 대필을 하겠느냐”며 ‘진짜’ 대필 시장의 실상에 대해 털어놨다. 김 씨는 22일 인터뷰에서 “이름 있는 기업형 학원에선 ‘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대필을 해준다. 그러나 덩치가 있다 보니까 나중에 잡음이 생길까봐 크게 장사를 벌이지 못한다. 거금이 오가는 큰손들의 대필 거래는 좀 더 음지에서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강남 일대 작은 동네 논술학원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보통 여기서 큰 거래가 주로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김 씨에 따르면 일부 논술학원 원장들 중엔 유명대학 국문과 출신이 많은데 이 원장들이 자신의 대학 후배나 유명 대학에 진학한 학원 제자들을 대필 거래에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명문대에 진학한 제자들의 경우 ‘서브 작가’로 활동하며 대필가들의 작업을 돕는다. 대학강사, 기자, 입학사정관 등으로 활동 중인 원장의 후배들이 ‘메인 작가’인 셈인데 업계에선 이들을 속칭 ‘고수’라 부르고 있다. 고수들이 대필로 벌어오는 돈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 고수를 모셔오기 위해 거액의 계약금을 건네는 원장들도 있다고 한다.
‘원장-원장의 대학 후배(메인작가·고수)-원장의 제자(서브작가)’ 이런 관계망을 통해 이뤄지는 대필은 대부분 온라인 채팅, 전화 상담으로만 이뤄진다고 한다. ‘고수’의 신변보호를 위해서다. 직접 방문상담을 할 경우 값은 1.5배 정도로 뛴다.
일각에선 이런 철저한 보안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S 학원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입학사정관 출신이라고 해서 믿고 큰돈을 줬다간 사기를 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필가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아이 일이 급하니 믿고 맡겨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리스크가 잠재돼 있지만 대필시장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뜨겁다. 비단 학원가뿐만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에서도 대필이 성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필마스터’라는 유명 대필 블로그를 운영 중인 전직 신문기자 출신 A 씨는 22일 통화에서 “요즘 (입학사정관제) 시즌인지라 문의해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잠도 못 잘 정도다”라며 “대부분 전화로 하고 방문 상담의 경우 18만 원이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소서를 검토해주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필이 괜히 대필인가. 직접 다 써드린다”고 말했다.
이런 대필 열풍을 두고 대다수 현직 입학사정관은 냉담한 반응이다. 김경숙 건국대 입학사정관은 “대필자소서로는 사실상 합격이 불가능하다. 표절검색프로그램에 적용하면 다 티가 난다”며 “대필전문가들이 고작 한두 번 학생을 만나보고 학생의 삶을 자소서로 잘 표현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대다수 대필전문가들은 자신 있다는 모습이다. 모 사회과학대 대학강사 출신 ‘고수’ 김 아무개 씨(38)는 “단순히 대필만 해주는 게 아니라 학생의 멘털까지 교육시켜주기 때문에 문제없다. 연기자 교육을 떠올리면 된다. 자기가 하는 말에 자기가 감동할 수 있을 정도로 면접에서 자소서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훈련시키기 때문에 면접관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