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쇼’보다 ‘진정성’ 박 후보도 배우시길
▲ 사진공동취재단 |
2005년 독일 역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에 오른 메르켈.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집권 2년차에 일자리를 확대해 실업률을 약 3% 낮추었고, 기술 개발에 대한 과감한 지원으로 독일 역사상 최대 수출액인 1조 4756억 달러를 지난해 기록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2008년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로 선정했다.
독일을 비롯 영국과 프랑스 등 27개국이 모인 유럽연합(EU)에서도 실질적 좌장이다. 지난해부터 2차까지 진행된 그리스 구제금융 등도 메르켈의 최종 결단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유럽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하며 메르켈이 유로존 위기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지 집중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메르켈은 박근혜 후보와 겹치는 면이 적지 않다. 먼저, 우파적 성향이 그러하다. 메르켈이 당수로 있는 독일 기민당은 성장 우선의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보수당이다. 공대생 출신이라는 것, 분단의 나라에서 자라난 것도 닮은꼴이다.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목사인 호르스트 카스너의 딸로 태어난 메르켈은 그해 부모 품에 안긴 채 동독으로 이주했다. 박 후보가 태어난 1952년은 6·25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아버지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교회를 위해서라면 아프리카 오지라도 달려갔을 선교사라고 전해진다. 물론 공산당 정부의 서슬 퍼런 감시가 따른 동독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메르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어떤 것 하나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회고하지만, 고집이 여간 아닌 아버지로부터 교리적 신념을 물려받았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비난받을 행동을 해서라도 안락함을 누리기보다 차라리 채소를 키웠다. 궁핍한 생활을 신을 경외하는 표식으로 여겼다…(중략)…목사관의 정서는 오늘날까지도 메르켈 총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하요 슈마허, <독일을 바꾼 기다림의 리더십> 중)
메르켈의 학창 시절을 보면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흥미롭다. 수학 영재로 꼽힌 그는 명문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23세가 되던 해 대학 친구와 결혼해 4년 뒤 파경했지만, 전 남편의 성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졸업 후 동독의 한 물리화학연구소에 취직한 메르켈은 12년간 원자핵 관련 연구에만 집중했다.
정치에 눈을 뜬 건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다. 격동기의 통일 독일에서 과학적 변혁보다는 사회적 변혁을 갈망한 것이다. 민주변혁당의 평당원에서 시작해 환경부 장관 등을 거치며 총리에 오른 메르켈은 대학 전공처럼 세상을 합리적으로 본다. 감정적 호소보다 논리적 관계를 더 중시하는데, 이런 부분은 대선 출마를 숙고 중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연상케 한다.
메르켈의 50세 생일잔치는 그러한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시끌벅적한 축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메르켈은 생일잔치에서 뇌 관련 학문 강연을 벌였다. 위르겐 클린스만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시절 “여성 총리가 각 국가대표 선수의 포지션과 기능 그리고 서로 간의 상관관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 메르켈 총리는 2010년 이화여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박 전 위원장과 회동을 가졌다. |
메르켈은 최초의 여성 총리임에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이른바 페미니스트는 아닌 셈이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선 ‘부모휴직수당’ 제도를 2007년부터 시행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부모휴직수당 제도란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에 한해 육아를 위한 휴직 기간 동안 월급의 67%를 지급하는 제도다. 한마디로 육아 때문에 등골이 휘는 걱정을 줄여준 셈이다.
메르켈이 가진 또 다른 덕목은 여성 특유의 인내다. 달리 말해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2002년 기민당 당수로 있던 메르켈은 여성 총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당 분위기를 간파하고 총리 후보 자리를 다른 남성 정치인에게 넘겼다. ‘아름다운 양보’라며 당 안팎으로 열렬한 환호를 받은 데다 2005년 총선 때까지 뒷심을 발휘한다. 기민당 내부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7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 배경이다.
메르켈은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다. 원칙에 어긋났다고 판단할 때다. 자신을 정계에서 밀어준 헬무트 콜 전 총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총리 시절 콜이 비리 구설에 휘말렸을 때 메르켈은 진상 규명과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평소 측근에 대해 관대한 편이지만, 비리 등을 저지른 인사는 단호하게 경질한다.
무엇보다 메르켈은 화합형 지도자다. 올해 초 영국 등에서 주변국으로 여파를 미칠 것을 우려해 국가 부도가 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메르켈은 결국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선택했다. 지금 살 길보다 앞으로 함께 사는 미래를 지향한 것이다.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까지는 힘들 것으로 보지만, 메르켈은 유럽연합 내 상생의 길을 최대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해외 언론은 내다보고 있다.
지난 유로 2012의 한 풍경이 떠오른다. 독일 국가대표팀이 선전하자, 메르켈은 관중석에서 들썩이며 박수치고 환호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유럽의 1인자’ 답지 않게 서민적이었다. 권위보다는 합리를 내세우고, 허황된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묵묵히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 같은 여성 정치인인 박근혜 후보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를 하는 건 무리일까?
이승환 영국통신원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