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무섭지만 주말농장 원하는 청년들 길잡이 되고파…자본력·농지확보·이동거리 따져보고 시도해야”
특히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에 예민한 세대에게 오도이촌은 하나의 대안으로도 떠올라 관심을 모은다. 최근에는 '한국오도이촌협회'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다. 일요신문은 설립자 김지은 씨(36)와 동료 임청산 씨(39)를 만나 오도이촌의 현실과 협회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힙한 그녀의 농촌생활
서울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며 대학까지 마친 김지은 씨는 한때 지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힙(HIP)한 친구로 불렸다. 옷에 관심이 많고 유행에도 민감해 본인 꾸미기가 둘째라면 서러웠을 정도였다. 그러다 2017년 우연히 소와 돼지 등이 육식으로 가공되는 영상을 본 뒤 채식주의자(비건) 선언을 해 7년째 지키고 있다.
이제는 '친환경'이 힙한 문화라고 한다. 김 씨는 비영리 환경단체 등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하며 사람들에 친환경 가치를 알리는 데에 주력했다. 그럼에도 한계를 느낀 까닭에 약 6년 전부터는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식량 자급자족은 환경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가 인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될 문제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잖아요. 식량 자급률이 턱없이 부족해지면 먹거리를 직접 생산할 능력이 낮은 도시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죠."
실제 대한민국의 2020년 기준 식량 자급률 45.8%, 곡물 자급률 20.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다. 학계에서는 극단적인 기후 때문에 기상이변이 일상인 시대가 오게 되면, 전 세계가 동일한 상황에 놓여 식량 수출 국가들이 자국민 보호를 들어 식량 빗장을 걸어 잠글 수 있다는 분석을 여러 차례 내놓은 바 있다.
김 씨는 일을 키웠다. 2023년 6월 경기 안성에 농지를 마련하고 주말마다 자급자족 능력을 길러보기로 했다. 아직은 쌀과 잡곡 등을 단순 재배하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1∼2인이 1년 동안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작물을 기르는 데 필요한 면적을 파악해 모듈화할 수 있는 방안을 실험해 보려고 한다.
매우 특이한 사례처럼 비치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미 오도이촌은 신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올 추석에도 이를 주제로 한 감성 다큐멘터리가 파일럿 형태로 방영돼 호응을 일으켰고, 대형 건설사들은 일찍이 오도이촌 콘셉트를 내세워 숲이나 텃밭을 담은 아파트를 홍보하기도 한다.
#'일일 농부 모여라' 외치자…경쟁률 4 대 1
김 씨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9월 인천 강화군에서 일일 농부 체험을 테마로 한 '팜데이'를 기획해 참가자를 모집해 봤다. 전국에서 24명이 지원했다. 이에 단순 흥미 차원의 체험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춰 오도이촌에 임할 인원 6명을 선별했다.
"지원자가 있을까 싶었지만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운영시간을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로 했는데, 워낙 할 말도 많고 재밌어서 저녁 8시까지 수다가 끊이질 않았죠. 제가 렌터카를 반납하러 가야 하지 않았다면 아마 1박까지 이어졌을 거예요(웃음)."
일일 농부들은 가을 밭에서 명상을 즐기고, 아침식사를 나눈 뒤 종일 오도이촌을 주제로 한 대화와 지역 기업과의 만남, 먹거리 정원 걷기와 가꾸기, 나만의 약국 만들기, 구황작물 구워 먹고 '모닥불 바라보며 멍 때리기' 및 수다 나누기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8점에 달했다.
이들은 일상 속 힐링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후기에는 "멋진 상상을 실제로 현실화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조금이나마 경험한 것들이 큰 활력이 됐다" "글로 남기지 못할 다양한 심리적 물질적 경험이었다" "삶의 예술가들을 만나 많은 영감을 받았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
김 씨는 더 힘을 냈다. '한국 오도이촌 협회'를 설립했다. 오도이촌 관련 최초이자 유일한 단체다. 아직 체계적인 운영 방침은 없다. '오도이촌 지역 연계 및 정착 서비스' '도시민 및 지역민 간 문화 교류 행사' 등을 사업 목적으로 신고했으나 그보다는 연대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원래 농지법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연대체를 구상했던 거예요. 농지 면적에 따라 농막 면적에 차등을 두는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이었는데, 협회를 만든 뒤 해당 개정안이 폐기됐어요. 그래서 오도이촌에 관한 뜻을 모으고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단체 활동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오도이촌 꿈꾼다면…가장 중요한 '이것'
김 씨는 '도시생활자의 생존력을 기르는 기후적응 액션 가이드북'도 발간했다. 오도이촌 과정에서 시도한 실험과 후기 및 노하우 등을 망라한 자료다. 여기에는 스스로가 오도이촌을 과연 할 수 있을지 등을 테스트하는 문항들도 들어 있다. 가령 '나는 기후위기에 불안감을 느낄까' 또 '내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길 꿈꾸고 있을까' 등등이다.
가장 중요한 건 단연 농지 확보와 자본력 등 물질적 여건이다. 김 씨도 오도이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단단히' 마음먹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매주 황금 같은 휴일을 반납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밭으로 향할 수 있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예스' 대답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지 확보 등도 현실을 잘 따져본 뒤 시도해야 한다. 김 씨의 경우 아버지의 고향인 안성에서 시작했기에 비교적 수월했다. 동네 이장까지 적극 도와줬다. 그런 데다 김 씨 직장인 서울에서 왕복 3시간 정도 거리라 차량으로 이동이 어렵지도 않았다. 이런 여건들이 모두 받쳐줘야 오도이촌을 시작해 볼 만하다.
"우선 각자가 이동이 가능한 현실적인 거리가 어디까지인지 설정해야 해요. 다음으로 그 거리 안에서 가족, 친척, 지인 등의 연고가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확인해야 하고요. 해당 지역을 꾸준히 다니며 농가의 일손을 도와보길 권해드려요. 스스로 농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거든요."
힘든 점은 없을까. 이는 김 씨와 인터뷰에 함께 나선 임청산 씨가 설명해줬다. 그 역시 서울의 직장인이다. 임 씨는 "간헐적으로 농사를 짓다보니 시중 농산물과 같은 질이나 충분한 수확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이는 결국 '재배 작물의 한계성'과 '관리 부재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컨대 소수의 재배가 까다로운 종자는 주말 농장에서는 다루기가 어렵고, 부재 중 일어나는 자연재해에는 전혀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농작물 판매 목적이 아닌 이상 심각한 사안은 아니므로, 어쩌면 식물이 생장이 빠른 여름에 남아 버리게 되는 잉여물이 더 문제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김 씨와 임 씨 두 사람은 오도이촌을 적극 추천했다. 협회 등에 참여할 길도 활짝 열렸으니 함께할 사람은 누구라도 기다리는 중이란다. 김 씨는 "오도이촌을 꿈꾸는 분들의 실패를 줄이고자 제작한 가이드북을 무료로 공개한 상태"라며 "결심이 섰다면 함께 공동 실험에 나설 분들 모두 다가와 주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 씨는 "오도이촌을 통해 로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자연과 함께하며 정신적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또 직접 장소로 초대함으로써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등 수두룩한 장점들을 더 많은 동료들과 공유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