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청문회 문턱 넘은 바 있어 ‘안정’ 택한 셈…임기 1년 남은 상황, 사상 첫 ‘소장 연임’ 가능성 제기
국회 청문회 일정을 고려할 때 ‘현직 재판관 이종석’을 낙점한 것은 안정을 선택한 셈이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뒤, 야당이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종석 후보자는 이미 한 차례 청문회 문턱을 넘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종석 후보자가 2018년 10월 임명돼 헌재 소장 임명 시 10개월 정도밖에 임기가 남지 않게 된 점 등이 파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헌재 재판관은 연임이 가능하고 실제로 재판관 연임 사례도 있다. 때문에 이종석 후보자가 소장으로 1년여를 소화한 뒤, 임기 후 다시 ‘재임명’하는 방식으로 헌재 소장 6년 임기를 다시 소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의전서열 3위 헌재 소장에 이종석 낙점 까닭
헌법재판소장은 대법원장과 함께 대한민국 사법부의 양대 수장이다. 헌법재판소를 대표하고 그 행정사무를 감독하는 자리인데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이어 대법원장과 공동으로 국가의전서열 3위다.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실 인정의 문제를 다루는 일반적인 민·형사 사건과 다르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등 법리를 바탕으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
유남석 현 헌재 소장의 후임으로 낙점된 이종석 재판관은 1961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했다. 1989년 법관으로 임용된 뒤 인천지방법원 판사,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수원지법원장을 거쳐 2018년 2월부터 다시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맡았고, 2018년 10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추천으로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됐다.
법조계에서 이종석 후보자는 원리·원칙론자로 평가받는다. 파격으로 볼 법한 해석은 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헌법재판관 중에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2023년 7월 재판관 전원일치 기각 결정이 나왔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 사건에서 주심을 맡기도 했다.
야권은 벌써부터 신임 헌재 소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칼날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 18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새 헌재 소장 임명 보도에 대해 “대통령과 여당이 제대로 된 인사를 보낼 생각은 안 하고, 정쟁과 이념 타령에 시간을 허비한다”며 “이 와중에 헌재 소장 후보자 지명 관련 유력 인사에 대한 비판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사법부의 품격에 걸맞은 인사를 찾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석 후보자는 2018년 이미 한 차례 국회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은 바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서 추천한 이종석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민주당 측은 MBC 직원들이 낸 전보 발령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 결정 등 재판 편향성 논란과 5차례에 걸친 위장전입 논란을 제기했다.
당시 민주당의 문제 제기에도 국회 본회의에서는 총투표수 238표 가운데 찬성 201표가 나온 바 있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지 않는 한 민주당이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한 차례 국회 문턱을 넘은 바 있는 현직 재판관을 고른 것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부결된 것을 고려한 것도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안정을 감안한 판단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임기 두고 파격 전망 나오는 까닭
하지만 ‘잔여 임기’ 논란 부분에서 파격 인사로 기록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정해져 있지만 헌재 소장의 임기는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탓에 관례적으로 ‘재판관 임기’로 해석하고 있다.
처음으로 임기 해석 논란이 있었던 박한철 전 헌재 소장은 2016년 임기만료일 논란에 대해 “헌법재판관의 잔여 임기”라고 답했고 2017년 물러났다. 박 전 소장 후임이자 재판관으로 재직 중 임명된 이진성 전 소장도 헌법재판관 잔여 임기만 헌재 소장직을 수행했다. 당시 ‘새롭게 6년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었지만, 헌재 소장들은 모두 재판관 임명을 기점으로 6년 임기 후 소장에서 물러났다. 헌법 제111조 4항(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에 따라 관행적으로 헌법재판관 임기와 연동한 것이다.
10월 16일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헌재 국감에서 박종문 헌재 사무처장도 “(이 재판관이) 아무리 빨리 임명돼도 잔여 임기가 10~11개월 남는데, 선례를 보면 잔여 임기만 채우면 되느냐”는 김의겸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소장 연임’이라는 파격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재판관 연임은 이미 두 차례 있었다. 헌법 제112조 1항, 헌법재판소법 제7조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의 연임이 가능한데,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후 김진우 전 헌법재판관, 김문희 전 헌법재판관 등 2명이 연임한 바 있다.
하지만 헌재 소장 연임은 없었다. 내년 10월 이종석 재판관의 임기가 끝날 때 다시 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되면 사상 처음으로 헌재 소장을 연임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되면 헌재 소장 임기를 6년 10개월 이상 소화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 소장 임기’를 고려해 인사권을 최대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임 없이 2024년 10월 이종석 재판관이 임기를 마칠 때 문형배·이미선 재판관(2025년 4월 만료) 가운데 한 명을 지명하면 윤 대통령 임기 중 최대 3명의 헌재 소장 임명도 가능하다. 특히 향후 임명될 재판관 가운데 한 명을 2025년 헌재 소장으로 임명하면 2030년까지 보수 인사 알박기가 가능하다.
민주당에서 이종석 후보자를 상대로 청문회에서 ‘잔여 임기 및 연임’을 놓고 공세를 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지점이다. 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장관 탄핵 소추안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 곳”이라며 “여당이나 야당 모두 헌재 소장을 한쪽에서 앉힌 이가 맡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기에 청문회에서 헌재 소장의 임기와 역할, 연임 포기 가능성 및 향후 윤석열 정부의 헌재 재판관 인사권 문제제기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