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 대행 1월 1일 퇴임 땐 진보 성향 김선수 대행체제 총선까지 갈 수도…법관 정기인사 우려 목소리
다만 문제는 ‘공백 장기화 우려’다. 현재 여소야대 국회 구조 상 후임으로 임명될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를 무사히 통과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2024년 4월 총선 후 대법원장 후보자를 임명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선전해 여소야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에 둔 시나리오다.
그렇지만 새로운 후보자 임명 및 국회 청문회 일정까지 대법원장 공백은 7~8개월이나 이어지게 된다. 전원합의체 선고는 물론 법원 인사 공백은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특히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거쳐 김선수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직을 넘겨받는다. 진보 성향의 김선수 대법관이 일반 법관 인사를 하는 안은 윤석열 정부도 원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사상 초유의 공백 이뤄지나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은 9월 25일 0시부터 대법원장 궐위에 따라 대법원장 권한을 대신 행사하고 있다.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이균용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고 부결된 후폭풍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은 지난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이후 35년 만이고, 대법원장 공석 사태는 지난 1993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했던 김덕주 전 대법원장 이후 30년 만이다. 당시 김덕주 대법원장 사퇴로 윤관 대법원장이 취임할 때까지 최재호 대법관이 2주일 동안 권한을 대행한 바 있는데, 이번 공백기는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최소 한 달 이상 갈 것으로 보인다.
안철상 권한대행은 10월 10일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대법원장 공석이 장기화할 경우 사법부 운영에 적지 않은 장애가 발생할 것”이라며 “사법부의 어려운 상황이 조속히 해소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전원합의체 ‘OK’ 대법관 인사는 ‘NO’
대법원장 공백으로 예상되는 차질은 크게 세 가지다. 대법관 전원이 참가하는 전원합의체 판결과 대법관 후보자 지명, 일반 법관 정기인사다.
이 가운데 전원합의체에 대해서는 ‘공백’이어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9월 25일 열린 대법관 회의에서 다수의 대법관이 ‘전원합의체 선고는 일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놨다고 한다.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인데, 대법관 다수의 판단으로 나오는 결정이기 때문에 대법원장 공석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안 권한대행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나 심리를 한 사례도 있고 앞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라면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는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 등에 대해서는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찬반 의견이 팽팽하면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쥐는데, 대법원장 공석 상황에서 화제성이 큰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대법관 후보자 임명 제청 권한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위기다. 이 사안은 권한대행의 ‘권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장 공백으로 권한대행이 후임 대법관을 제청한 전례도 없을 뿐더러, 헌법 상 명시된 대법원장의 권한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공백 장기화 시 발생할 수 있는 대법관 임기 만료다.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제청 절차도 이미 차질이 불가피하다. 빠르면 2주, 길면 한 달 이상 걸리는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12월 초에는 후보자 지명이 이뤄져야 한다. 퇴임 석 달 전인 10월부터 인사추천위원회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아직 관련 절차는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대법관 11명만 남는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지점이다.
법원행정처에서 인사를 담당한 적이 있는 한 판사는 “지금 상황으로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공백이 불가피하다”며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 없이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대법관 4명씩 구성된 소부는 재판 정상운영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짜 문제는 ‘일반 판사’ 인사권?
법원 안팎에서는 법관 정기인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2024년 2월로 예정된 전국 3100여 명의 법관 정기인사가 지연될 수도 있다.
다만, 법관 정기인사의 경우 권한대행에게 부여된 권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안철상 권한대행은 법관 인사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겠지만 결국은 필요성, 긴급성, 상당성에 의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법원장 공석이 장기화될 경우 대법관 임명 제청부터 법원 정기 인사까지, 적극적으로 해석해 나설 수도 있다는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대통령실과 여권이 원치 않는 구도가 나올 수 있다. 안 대법관은 2024년 1월 1일로 임기가 만료되는데 이때까지 신임 대법원장이 임명되지 않으면 김선수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직을 넘겨받게 되기 때문이다. 김 대법관은 노동·인권변호사 출신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의 인사다.
여권에서 이균용 후보자가 부결되자 ‘민주당이 김선수 권한대행 체제를 만들려고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 지점이다. 특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나 영장전담재판부에 ‘진보 성향의 판사’를 앉힐 경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건 등 앞으로 진행될 검찰 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통령실이 4월 총선 이후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의 권한은 결국 인사에서 나온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대법원장 후보자는 조만간 지명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문제는 윤 대통령이 다시 ‘지인’을 낙점해 강행할 가능성이 높은데 민주당도 동의할 만큼의 존경받는 판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아 이균용 후보자처럼 또 부결될 수도 있다는 점”이라며 “그럴 경우 김선수 권한대행 체제가 총선까지 가는 게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