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보 축구·애벌레 럭비·핸드솝 볼…신체 부담 적고 승패 구애 안 받아, 커플 매칭·사원 연수 등 활용
유루 스포츠 공식 홈페이지에는 “발이 느려도, 키가 작아도,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 당신의 스포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모두가 소리 내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목표로 한다.
잘 알려진 종목은 ‘핸드솝 볼’이다. ‘골대에 공을 던진다’는 기본 규칙은 핸드볼과 같지만, 손에 특수 핸드솝을 바르고 경기에 임한다. 미끌미끌해서 맨손으로 공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모두에게 같은 핸디캡이 주어지므로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똑같이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처음 보는 사이라도 일체감이 생겨난다.
핸드솝 볼 외에도 애벌레처럼 데굴데굴 구르면서 득점을 겨루는 ‘애벌레 럭비’, 과격하게 다루면 공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기 때문에 드리블은 절대 불가능한 ‘베이비 농구’ 등이 유명하다. 하나같이 기존의 스포츠 규칙을 과감하게 깨트렸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체 부담이 적고 승패에 구애받지 않는, 이를테면 레크리에이션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스포츠 약자’가 많은 일본이라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분석을 더했다.
지난 7월 중순 도쿄 고토구 스포츠문화관에서는 독특한 축구 경기가 열렸다. 다름 아니라 ‘500보 축구’다. 흔히 축구라고 하면 90분가량 쉴 새 없이 운동장을 누벼야 하므로 체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 이미지를 깨부수기 위해 만든 유루 스포츠가 500보 축구다. 말 그대로 선수 한 명당 500걸음밖에 움직일 수 없다.
경기 방식은 이렇다. 5명의 선수가 한 팀으로 구성되며, 선수들은 각자 허리에 LED 파우치를 착용한다. 파우치에는 ‘걸음 수 500’이 표시된 카운터가 달려 있는데, 걸을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만약 격렬하게 움직이면 10이 줄어들고, 파울을 하면 페널티로 50이 줄어든다. 최종적으로 숫자가 0이 된 선수는 퇴장당하는 방식이다. 재미있는 점은 3초 이상 멈췄을 시 걸음 수가 회복된다는 것. 요컨대 치열하게 경기하지 않고 느긋하게, 설렁설렁해야 유리하다.
걸음 수를 나타내는 전광판은 등 뒤에 붙어 있기 때문에 선수 본인은 어느 정도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팀원들이 사전에 전략을 세우거나 경기 중 걸음 수를 서로 알려주며 소통을 해야 한다. 경기 시간은 전·후반 5분씩. 코트 넓이는 따로 규정하지 않아 학교나 상업시설, 강당 등 제약 없이 경기를 할 수 있다.
500보 축구를 처음 고안한 곳은 스포츠용품 회사인 미즈노로 알려졌다. 미즈노 측은 “성별이나 연령, 체력 등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평소 좀처럼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참가 가능한 운동 강도를 검토한 결과 ‘걸음 수를 제한하는 규칙’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사용되는 축구공은 맞아도 아프지 않도록 부드러운 쿠션 소재를 택했다.
운동강도를 대폭 낮춤으로써 다 같이 즐기는 축구가 됐다. 실제로 최근 열린 ‘2023 유루 스포츠 페스티벌’에서는 초등학생 아이를 동반한 부모, Z세대 젊은이, 머리가 희끗한 시니어 등 폭넓은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500보 축구에 빠져 흥겨워했다. 모두가 처음 도전하는 스포츠라서 ‘어떤 전략을 펼쳐야 득점할 수 있을지’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과 작전 회의가 생겨난다는 점이 매력이다.
이에 500보 축구를 커플 매칭 이벤트로 활용하는 지자체도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에현 쓰시는 결혼장려 사업의 일환이자, 만남의 이벤트로 ‘500보 축구’를 개최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업의 사원 연수에서도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방안으로써 500보 축구가 채택되고 있다. 누구도 잘하지 못하는 스포츠를 통해 낯선 사람들이 친해지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최대 광고대행사 덴쓰의 자회사인 덴쓰 디지털이다. 이 회사는 입사 연수에서 레크리에이션 요소가 강한 유루 스포츠 5종목을 도입해 주목을 받았다. 도입 배경은 무엇일까. 회사 측은 “코로나로 인해 리모트워크가 증가함에 따라 신입사원들의 사내 인간관계 구축이 과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신입사원끼리라도 끈끈한 관계를 만들면 좋겠지만, 동기간의 횡적 유대도 분열되기 일쑤였다.
주로 혼자 책상에 앉아 아이디어를 짜내는 업무가 많기 때문에 “서로 간의 소통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유루 스포츠를 연수에 채택했다”고 한다. 먼저 ‘스피드 역도’다. 자석으로 연결된 기다란 역기를 팀 전체가 동시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경기다. 5인 이상이 한 팀이며, 일정 시간 내 역도 포즈를 취한 횟수를 겨룬다. 가볍다고 만만하게 여겨선 안 된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뿔뿔이 흩어지는 특수한 역기가 팀의 결속력을 시험한다.
‘시소 공 넣기’란 종목도 있다. 두 팀으로 나뉘어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바구니에 공을 넣는다. 공을 너무 많이 넣으면 바구니의 위치가 뒤집히기 때문에 상대와의 힘겨루기 및 팀 내 작전, 의사 통일이 승리의 열쇠가 된다.
일반적인 입사 연수에는 볼 수 없는 콘텐츠인 만큼 당황하는 신입사원은 없었을까. 인사담당자는 “혹시라도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당수가 순수하게 즐겨줬다”고 말했다.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데 전 경기가 너무 즐거웠다”며 호평이 이어졌다는 것. 유루 스포츠를 체험한 후 실시한 앙케트에서는 95%가 “동기와의 사이가 깊어졌다”고 회답해 “팀 구축 면에서도 도움이 된 듯하다”고 담당자는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