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공 봉쇄 탓 극심한 식량난·청년 실업 시달려…2007년 집권 무장 정파 하마스 폭압·부패 심각
이는 모두 한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 가자지구(Gaza Strip)다. 이스라엘, 이집트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대략 워싱턴 D.C.만 한 크기로 길이 41km, 폭 10km의 좁고 기다란 땅덩어리로 이뤄져 있다. 현재 두 군데로 나뉜 팔레스타인 영토 가운데 더 작은 영토이며, 다른 한 곳은 요르단강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안지구로 불린다. 현재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국제법상 공식적으로 어느 국가에도 속해있지 않다. 다만 통치하고 있는 집단은 서로 다르다. 가자지구는 2007년 집권한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그리고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데다 가장 빈곤하기까지 한 가자지구에서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가자지구는 현재 고립된 섬과 다름없으며, 울타리가 쳐진 영토에서 평생을 보낸 젊은 세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분노하고, 좌절하고 있다.
현재 가자지구의 인구는 대략 2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계가 대부분이지만 이스라엘이 유대인 정착촌을 속속 설립하면서 유대인들의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인구 대다수가 아랍계이기 때문에 종교는 이슬람교가 97%로 절대 다수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인 가자지구에는 현재 1km² 당 9000명이 살고 있다. 이는 전세계 대도시의 인구가 1km²당 평균 5700명인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서쪽으로는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고, 육지 쪽으로는 각각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접해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 사람들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한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봉쇄 정책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육로와 해상로를 모두 차단하다시피 한 봉쇄 정책은 2006년 가자지구 총선에서 강경파인 하마스가 집권하고, 이듬해 폭력사태를 통해 온건파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육해공을 모두 통제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런 봉쇄 정책이 하마스 무장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경은 정해진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식량이나 의료품 등 생존에 필요한 물자 역시 극히 제한된 수준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인들과 유대인 정착민들, 그리고 외국인들은 규제를 받지 않고 가자지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이에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가자지구를 ‘노천 감옥’에 비유하면서 이런 봉쇄 조치가 비인도적이며, 제네바 협약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현재 가자지구에서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봉쇄 정책으로 수출입이 거의 막히면서 경제는 거의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대부분이 가난과 절망 속에 살고 있으며, 침체된 경제는 식량과 의약품 같은 필수품의 극심한 부족을 초래했다.
미국이 테러 단체로 지목한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해외로부터 돈을 송금받거나 인출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역 화폐조차 이스라엘의 통제하에 있으며, 이스라엘 화폐인 세켈도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10년 넘게 새 지폐가 발행되지 않고 있는 까닭에 너덜너덜한 지폐를 테이프로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차량 수입이 제한되면서 말이 끄는 수레가 쓰레기차를 대신하고 있으며, 한때 성행했던 영화관은 통로마다 나무가 자라는 폐허가 됐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가자지구의 극빈층은 전체 인구의 65% 이상에 달한다. 또한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63%가 건강한 삶을 위한 충분한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 즉 ‘식량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온 탓에 가자지구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건강 문제를 앓고 있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도 심각한 수준이다. ‘CIA 팩트북’에 따르면 가자지구는 인구의 65%가 25세 미만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약 46%가, 그리고 청년 인구의 약 60%가 실직 상태에 놓여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구매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매주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보급품 트럭의 숫자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자료에 따르면, 보급품을 실은 트럭은 주당 평균 900대에서 300대 정도로 감소했다.
봉쇄 정책으로 농업과 어업도 타격을 입은 탓에 식량 부족 문제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의 약 80%가 국제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매 끼니를 식량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목초지나 삼림지대는 거의 없으며, 일부 경작지에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지만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가자지구의 식량 문제는 2014년, 이스라엘군이 로켓 공격과 무장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국경을 따라 너비 1.5km 구역을 완충지대로 선포하고, 이 구역에서 사람이 살거나 농사를 짓는 것을 금지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그 결과 현재 연간 약 7만 5000톤의 농산물이 생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년 동안 가자지구의 중심 산업이었던 어업 역시 침체된 지 오래다. 이스라엘의 해상 봉쇄 정책 때문에 가자지구의 어부들은 3해리 밖으로 나가서 조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300개가 넘는 단체들로 구성된 미국의 전국적 연합체인 ‘팔레스타인 권리를 위한 미국 캠페인’의 회장인 유세프 무네이어는 “지난 몇 년 동안 역사상 처음으로 가자지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된 물고기는 바다에서 건져올린 신선한 대구가 아니라 육지에서 양식된 물고기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식수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의 10%만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고 있으며, 하수처리장 시설이 열악한 탓에 1억 리터 이상의 오폐수가 지중해로 그대로 흘러나가고 있다. 강수량이 부족한 데다 이마저도 대부분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이스라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전력 부족과 정전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한때는 모든 가정에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된 적도 있었다. 모두가 깨끗한 수돗물과 (제대로 작동하는)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 폭력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전력을 이스라엘과 이집트로부터 공급받고 있던 가자지구는 즉시 위험에 처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하마스에 대한 징벌적 조치로 가자지구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지불하고 있던 사용료를 내지 않는 식으로 전력 공급을 제한했다. 이에 많은 가정에서 장작을 태워 난방을 하거나, 담요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가정용 발전기가 있어도 연료를 구입할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가자지구의 기자이자 디지털 미디어 매니저인 오마르 그라이브는 당시 인터뷰에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절망이란 말은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묘사하기에 부족하다. 우리는 매일 고통스런 세상 속에서 눈을 뜨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집이라고 부르는 곳이 1초마다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바깥세상이 시시각각 발전하는 것을 보는 건 정말 미칠 노릇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력 공급이 제한되면서 의료 시스템도 열악해졌다. 2018년, 가자지구 북부에서 6만 6000명을 진료하던 병원은 결국 운영을 중단했고, 어린이 의료센터는 의료 서비스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암 환자와 같은 일부 중증 환자들의 경우, 불충분한 의료 서비스와 가자지구 밖으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나 동예루살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먼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승인을 받은 뒤 이스라엘 정부의 승인을 또 한 번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고립돼 있다 보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거나 재능을 펼쳐보이는 청소년들은 극히 일부다. 가자지구 출신의 20대 청년인 칼레드 알 나이랍은 이런 까닭에 이곳을 가리켜 ‘재능의 묘지’라고 부른다. 평생을 울타리 속에 갇혀 지낸 나이랍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자유롭게 왕래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부모와 달리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을 비롯해 외국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
가자지구의 심리학자인 하산 지아다는 “가자지구 사람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 때문에 무력감과 절망감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환자들의 경우에는 뚜렷한 원인이 없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에 그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투쟁을 통해 자존감과 자부심을 고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택시 운전기사로 일했던 모하메드 와디야는 국경 지대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했다가 불구가 됐다. 국경 지대 철조망까지 다가가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돌멩이를 던졌던 그는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았고, 결국 택시 운전을 그만둬야 했다. 분노에 찬 와디야는 “나는 군인들을 상대로 싸울 것이다. 민간인도 상관없다. 다 죽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점령자들이다”라고 외쳤다. 와디야와 같은 시위대들이 바라는 건 단 한 가지다. 조상들의 땅, 즉 이스라엘이 빼앗은 땅으로 돌아가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지아다는 와디야의 이런 과격한 반응이 별로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가자지구에서의 삶은 현재진행형인 트라우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의미해졌다”고 지아디는 말했다.
하마스 무장 정파는? 해방 투쟁 명분 뒤에서 테러와 갈취
이슬람 저항 운동을 상징하는 하마스는 아랍어로 ‘열정’을 의미한다. ‘하마스 운동’은 1987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는 것에 반대해 벌인 제1차 인티파다 봉기 직후 이맘(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과 그의 보좌관인 압둘 아지즈 알 란티시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체결한 오슬로 평화협정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으며,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스스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해방시키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의 상당 부분을 되찾기 위한 자유 투쟁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로켓 공격, 자살폭탄 테러 등 무자비한 공격 때문에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많은 나라들로부터 테러단체로 지목된 상태다.
이런 무자비하고 강압적인 태도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비판자들을 가차없이 학살하거나 학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2022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팔레스타인 인구의 62%가 “이 세상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마스 당국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마스 관료들의 부패도 심각한 문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73%가 하마스의 관료들이 부패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설문조사도 있었다. 2019년, 하마스가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자 약 1000명의 가자지구 시민들은 “우리는 살고 싶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한 시위자는 “단 수십 명의 하마스 관리들이 시민들의 형편을 무시한 채 혈세를 통해 그들의 부를 쌓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도를 넘은 갈취 행각에 많은 가자지구 사람들이 난민 신세가 된 채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48%가 튀르키예나 유럽으로 도피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만 봐도 민심이 얼마나 나쁜지 잘 알 수 있다. 한 청년은 “하마스는 스스로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고 있다고 미화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대가를 치르는 동안 카타르 여권을 가지고 그들만의 궁전에 편히 앉아 있다”고 비난했다.
외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이 하마스 관리들의 주머니로 슬그머니 흘러 들어간다는 의혹도 있다. ‘가자지구는 버뮤다 삼각지대다’ ‘들어오는 족족 사라진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실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유엔기구가 45억 달러(약 6조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보냈고, 카타르가 2012년 이후 13억 달러(약 1조 원)를 추가로 지원했지만 가자지구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빈곤한 상태다.
이런 의혹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 하마스는 국제 지원금에 대해서는 단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런 의심은 때때로 하마스가 노골적으로 벌이는 절도 행각을 통해 확신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일례로 2009년, 유엔은 하마스 무장 괴한들이 수백 톤의 밀가루, 담요 등 구호품을 훔쳐가자 잠시 구호품 운송을 중단해야만 했다. 당시 유엔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대변인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그들은 무장을 했고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며 허탈해 했다.
가자지구의 제한된 부는 일부 하마스 관료들이나 정당 소속의 사람들이 모두 독차지하고 있다. 시리아 출신으로 가자지구의 이슬람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마나르 알-샤리프는 “이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려면 반드시 정당과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면서 “가자지구 사람들이 어렵게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당 소속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