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 검사 출신과 독일 형사법 박사 경험담…사이버상 명예훼손·모욕·스토킹 소상히 짚어
학교폭력에 시달리거나 왕따가 된 학생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조리돌림 당한 어른들, 동네 엄마들 사이 따돌림 등등. 지금 대한민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이버 상에서 벌어지는 행태들이다. 사실 확인도 없이 다른 사람을 무참히 짓밟는 악행이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뉴스만 봐도 공개된 사례는 넘쳐난다.
아무 생각 없이 단톡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험담을 나누거나 별 생각 없이 달았던 댓글 하나가 고소장으로 날아올 수 있는 시대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표현에 의해 명예가 훼손됐다고 생각하거나 모욕당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판단기준이 모호한 게 바로 명예훼손과 모욕이다.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마다 그 감정 정도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비슷한 사건인데도 유죄를 선고하거나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도 사이버 공간 혹은 주변 일상에서 수많은 모욕범들이 활개치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글과 말로 피해를 입은 사람,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돼 괴로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시점에 최근 상재된 ‘손가락 살인의 시대와 법’(실레북스)은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판례들을 담고 있다. 어떤 경우 유죄가 되고 어떤 경우 무죄가 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줄여서 대검 중수부 출신 정준길 변호사와 독일 형사법을 전공한 류여해 박사가 공동 집필했다.
류여해 박사는 “사이버상의 허위와 비방이 가진 특징을 잘 알고 특정인을 비방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선량한 피해자를 작정하고 공격하면 그들이 쓰는 글들은 소리 없는 총탄이 돼 피해자 마음을 후벼판다. 정신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며 마침내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를 ‘열 손가락 살인’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밝혔다.
정준길 변호사와 류여해 박사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사건들을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과정을 정리했다. 명예훼손과 모욕 법리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준길 변호사는 “‘내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비방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개구리 무리’에 대응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변호사인 나조차도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일반인들이라면 한 사람이 모은 10여 명의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SNS 상에 폭포수처럼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비방들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이버상 명예훼손과 모욕은 전파 속도가 전광석화 같다. 피해자는 허위 사실을 바로 잡을 방법을 찾지 못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제대로 신속히 대응하는 방법을 아는 게 우선 중요하다. 저자들은 “피해자에겐 위로와 희망을,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사람에겐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길라잡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 저자들도 명예훼손과 모욕 피해자였다. 이에 황당한 고소를 당한 상황에서 직접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책을 써내려갔다. “독자들에게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가해자를 고소해야 할 경우 도움이 되는 노하우뿐 아니라 고소를 당한 경우의 대처 방안과 형사대응, 민사소송과 병행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손가락 살인 사례들도 소개한다. 현재진행중인 인터넷과 사이버상의 명예훼손과 모욕, 스토킹 범죄 현황과 문제점을 짚었다. 또한 명예에 관한 죄의 법리를 소상히 다루고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전화나 문자 메시지, 전자우편 등을 통해 접근하거나 교제를 요구하거나 잠복 등을 지속 반복해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인 스토킹이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추세다. “스토킹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가벼운 벌금형에서 엄중한 징역형으로 법이 개정됐다.
이 책에선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스토킹 행위와 새롭게 제정된 스토킹 처벌법 관련 쟁점과 사례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에 스토킹 범죄가 또 다른 스토킹 범죄나 보복범죄로 연결되는 이유와 사례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들은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그 징표가 될 수 있는 스토커 피해자에 대한 비방과 모욕 등도 스토킹 행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