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대통령 친구’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사법부 양대 수장 공백 불똥 튈라 신중론 고개
#보수성향 가장 강한 재판관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18일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이종석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오는 11월 10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종석 후보자는 지난 5년간 헌법재판을 담당해 온 현직 헌법재판관으로서 뚜렷한 소신과 해박한 법률지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헌법질서 수호에 앞장서 온 분”이라며 “앞으로 헌법재판소를 이끌면서 확고한 헌법 수호 의지와 따뜻한 인권 보호 정신을 동시에 실현하고 우리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 통합하는 역할을 빈틈없이 잘 하시리라고 믿는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이종석 후보자는 대법원장 후보군에도 포함됐다. 다만 헌재 출신인 이 후보자가 법원 내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할 대법원장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대법원장 후보에선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이 후보자는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 법관으로 임용됐다.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수원지법원장 등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10월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추천 몫으로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지명됐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다. 두 사람은 법학과 내 분반 중 같은 A 반으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로 있던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당시 대검 중수부 검사였던 윤 대통령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이후 “친구는 친구고, 일은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며 “영장을 기각한 뒤 윤 검사에게 전화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당시 청구한 검사징계법 헌법소원 사건에서,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대학 동기이자 친구라는 이유로 사건을 회피하기도 했다. 대학 입학 후 40년을 친구로 지내온 셈이다.
이 후보자는 유남석 헌법재판소 내에서 보수성향이 가장 강한 재판관으로 평가 받았다. 헌법재판관 취임 후 이듬해 4월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에서 소수의견으로 합헌 의견을 냈고, 2020년 2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에 대해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4월 고 백남기 씨 사망 관련 ‘집회 현장 경찰의 물대포 직사는 위헌’ 결정을 내릴 때 홀로 ‘각하’ 반대의견을 냈고, 2021년 1월 ‘공수처 설치’ 위헌 문제에 대해 ‘위헌’이라는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또한 지난 3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는 “검사의 헌법상 권한을 침해했다”는 소수의견을 내며 법무부와 검찰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헌재 소장은 관례상 재판관 임기까지만 직을 수행하고 퇴임해왔다. 이에 법조계는 이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아 신임 헌재 소장에 취임할 경우 재판관 임기만료일인 내년 10월까지 11개월만 헌재 소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2017년 11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10개월 동안 임기를 수행한 이진성 전 헌재 소장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임기가 된다.
#국회 인준 가능성은?
헌재 소장은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명이 가능하다. 국회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손에 이 후보자의 임명 여부가 달려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윤 대통령과 ‘40년 지기’로 친분이 깊어 사법부 독립이 우려된다는 점, 잔여 임기가 1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10월 18일 “대통령 친구의 절친이라는 이유로 부적격자(이균용 전 후보자)를 사법부 수장에 지명하고, 이번에는 아예 대학교 같은 과 동기 친구를 헌재 소장으로 임명하다니 공사 구분이 되지 않는가”라며 “윤 대통령에게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했더니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잔여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헌재 소장을 낙점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민주당은 이 재판관이 헌재 소장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송곳검증을 예고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이 후보자의 학연에 대해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헌재를 더 잘 끌고 나갈지, 역사적 소명의식 등을 봤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임기의 경우 연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앞서 고위 관계자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 후보자를 찾는 게 쉽지 않고, 또 국회에서 승인해줘야 한다”며 “임기가 1년 안 남았지만,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연임할지는 벌써 말하기에 이르다”고 말을 아꼈다. 실제 헌재 신설 이후 재판관을 연임한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 때 김진우 재판관과 김문희 재판관 2명이 있다. 다만 연임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종석 후보자에 대한 신중한 기류도 감지된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부동산 투기 및 농지법 위반, 비상장주식 미신고 및 배당금 수령, 식민사관 등 여러 의혹을 이유로 임명동의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이종석 후보자까지 국회 인준을 부결시키면 사법부 양대 수장인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 자리가 동시에 비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자칫 민주당으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 한 전략통 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고위공직자가 벌써 18명이다. 법안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올린 양곡관리법·간호법은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고, 노란봉투법·방송3법 등은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정부가 필요로 하는 법안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하고 있다. 국회와 야당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반면 헌재 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명할 수 있다. 이럴 때 대통령과 정부에 국회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이미 대법원장 때 국회가 존재감을 알렸다. 다만 이균용 후보자는 ‘대통령의 친구’ 외에 다른 비리도 많아 부결시키기 부담이 적었다. 사법부 수장을 두 명이나 날리기 위해선 이종석 후보자의 경우 더 철저히 검증을 해봐야 한다.”
이 후보자가 지난 2018년 헌법재판관에 선출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이미 겪은 점도 민주당의 고민거리다. 당시 이 후보자는 총 투표수 238표 중 201표로, 압도적 찬성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헌재소장마저 궐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 민주당이 사법부를 볼모 삼아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0월 19일 “이 후보자는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원칙을 중시하는 법관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며 “2018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뿐 아니라 야당으로부터도 동의를 받아 그 능력과 도덕성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대통령의 친구’라는 이유를 들며 시작부터 부정적이다. 또 다시 ‘아니면 말고’식 폭로나 억지 논리로 발목잡기를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신상 털기식 흠집 내기가 아닌, 국익을 위한 생산적인 정책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야당에 협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종석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20대 국회에서 활동했었던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당시에는 여당 몫과 야당 몫 등 이종석 후보자를 포함해 3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의 인사검증이 동시에 진행됐다. 그러다보니 여야가 이견을 보이며 충돌하면서 헌법재판관 공백 상태가 길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가 정치적 합의를 해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의 선출안을 통과시킨 것”이라며 “이번 이종석 후보자는 헌재의 수장을 뽑는 절차다. 다시 이 후보자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종석 후보자는 2018년 9월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이 후보자가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본인이 세 번, 배우자가 두 번 등 총 다섯 차례 서울로 위장전입한 것이 드러났다. 이 후보자는 “법 위반이었기 때문에 법관인 내가 법을 위반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고위공직자로서 그런 잘못은 더욱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당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에는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배우자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에 대해 “자질, 도덕성 및 청렴성을 갖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는 의견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제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국민에 신뢰받는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어떤 이유로든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표명했다”는 견해를 동시에 병기했다.
이 후보자는 10월 18일 헌재 소장 지명 소식이 알려진 뒤 “헌법재판소는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국가기관으로 알고 있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과 친분’에 대한 우려에는 “유념해서 업무를 보겠다”고 말했다. 임기 문제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을 언론보도에서 봤다”면서도 “제가 말씀 드리기는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헌재소장 국회 인준 부결 과거 사례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준 부결된 사례는 지난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이어, 이균용 후보자가 35년 만에 두 번째다. 만약 이종석 후보자가 국회에서 임명 부결된다면, 이 역시 김이수 헌재 소장 후보자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다. 다만 약 6년 만의 사태로 시기는 대법원장보다 멀지 않다.
김이수 헌재 소장 후보자는 2017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당시 출석 의원 293명 가운데 찬성 145명, 반대 145명, 기권 1명, 무효 1명 등으로, 가결 정족수에서 단 2표 부족했다.
당시 부결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야당이 김 후보자의 이념 편향성 등을 이유로 들며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정한 가운데,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의당에서도 김 후보자가 군 동성애를 옹호했다는 기독교계의 반대여론을 의식해 막판 상당수가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