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위한 중앙 터잡기에 ‘실세’ 불쑥
▲ 미래에셋이 신사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신문로 금강제화 광화문점(맨 아래 왼쪽 건물) 인근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SK생명 인수 이후 SK생명 건물로 쓰이던 마포 사무실과 기존의 여의도 미래에셋 사옥을 오가며 경영을 주관해 왔다. 신사옥 건립 결정은 생명보험사 인수로 덩치가 커진 미래에셋그룹을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으로 진출시켜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 신사옥 부지인 옛 금강제화 건물 일대의 신문로 부지는 최근 재개발 붐을 타고 가격이 폭등하는 지역이다. 현재 이 일대 평당시세는 최소 6000만 원 대이며 대로변 토지의 가치는 1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옛 금강제화 부지를 중심으로 미래에셋이 세우려는 새 건물은 지하 6층에 지상 23층으로 대지 1500평, 연면적 1만 8000평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인근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이 일대의 건물시세를 따질 때 연면적 평당 1500만 원 이상으로 볼 수 있다(토지에 대한 평당시세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신사옥의 가치를 현재 기준으로 볼 때 2700억 원으로 환산할 수 있는 셈이다. 완공 예정 시기는 2010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옛 금강제화 일대 토지 등기부등본엔 미래에셋의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이 일대 토지는 디비스프로젝트투자금융주식회사의 명의로 돼 있다. 이는 부동산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디비스코리아가 지난해 설립한 업체다. 디비스 측이 이곳에 건물을 지어서 미래에셋의 자회사인 맵스자산운용에 매매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약이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디비스의 신문로 부지는 일전부터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곳이다. 디비스프로젝트투자금융주식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이 일대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신문로1가와 당주동 일대 1000평이 넘는 땅을 사들이기 위해 8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디비스 측이 그동안 주목받아온 배경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중진 국회의원 A 씨가 있다. A 의원의 사돈인 허린성 씨가 디비스코리아와 디비스프로젝트투자금융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인 까닭에서다. 디비스프로젝트투자금융주식회사는 지난해 9월 26일에 설립된 회사다. 이는 디비스 측이 신문로 일대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디비스프로젝트투자금융주식회사의 법인등기부엔 ‘건물신축 등 상당한 기간 및 자금이 소요되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일대 광화문 오피스빌딩 개발사업’을 주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문로 일대 오피스빌딩 개발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회사로 규정해도 무방한 셈이다.
이 회사 자본금은 50억원이다. 모기업이나 다름없는 디비스코리아의 자본금은 50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런 회사가 신문로 일대 토지 매입을 위한 수백억 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을 궁금해 하는 호사가들이 A 의원을 거론하기 시작한 것이다. A 의원 동생이 2001년 7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디비스코리아의 감사로 등기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던 점도 의혹을 부추겼다. 그러나 올 초부터 제기된 이러한 의혹에 대해 A 의원 측은 “사돈의 사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오히려 신문로 개발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A 의원 측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아온 게 사실이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연합뉴스 | ||
일각에선 미래에셋그룹에서 이번 신사옥 사업의 주체 역할을 하고 있는 맵스자산운용의 인맥이나 박현주 회장의 인맥이 A 의원 측에 닿았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인맥에 의한 사업 공감대 형성’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이 같은 추론을 ‘억측’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증권사 영업맨으로 출발한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호남 출신으로 DJ 정권 이래 비교적 순탄하게 재벌급 금융종합그룹으로 커왔다는 점도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현 여권 수뇌부와의 교감설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미래에셋과 디비스 사이에 단순한 사업적 파트너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규정지을 만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A 의원과 디비스의 관계 또한 A 의원 측 주장인 ‘사돈의 사업과 무관하다’는 것 이상의 정황을 남긴 적은 없다. 이 건에 대해선 청와대의 정보라인도 가동됐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조사결과 청와대에서도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전언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도 “(박현주 회장이) A 의원이나 허린성 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신사옥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로 이해당사자인 디비스코리아와 미래에셋 사이에 중간다리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허린성 씨의 디비스코리아는 지난해 9월 디비스프로젝트투자운용주식회사를 설립해 이 업체를 통해 신문로 일대 토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지난 3월 디비스 측은 자신들이 매입한 이 일대 토지를 다올부동산신탁이라는 업체에 신탁한다. 다올이란 업체가 디비스를 대행해서 건물 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래에셋 또한 맵스자산운용이란 자회사를 이번 사업 주체로 내세웠다.
결국 디비스-미래에셋의 거래 사이에 디비스투자운용주식회사 다올부동산신탁 그리고 맵스자산운용이란 3개 업체가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는 재개발 부지에 대한 개발사업이나 신사옥 건립 사업에서 상대가 재벌일 경우 쏟아지는 ‘민원’을 막기 위해 재벌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경우 ‘최종 구매자’가 표면상 토지매입 당사자인 개발업체에 소요되는 자금의 ‘대출 보증’ 등을 해준다. 즉 디비스도 애초부터 미래에셋의 ‘후원’으로 이 프로젝트를 가동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신사옥 프로젝트를 통한 수혜자는 막강한 자금력의 외국 업체들을 제치고 광화문 입성 초읽기에 들어간 미래에셋일 것이다. 그러나 최대 수혜자는 디비스 측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디비스가 취하게 될 막대한 투자이익 때문이다. 부동산 업자들과 현지 상인들, 그리고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디비스가 신문로 일대 땅을 사들일 때 투입한 돈은 800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신사옥이 건립될 경우 현재 가치로만 놓고 볼 때 2700억 원짜리 건물이겠지만 2010년 완공시점 기준으로 본다면 그 가치는 현재 예측하는 수준을 크게 웃돌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디비스 측이 토지 구입 비용 800억 원과 공사비 등 총 2700억 원 정도를 투자한다 해도 2010년 건물 완공 시점에는 해당 토지 가격이 현 시세의 두 배 이상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광화문 핵심요지의 새 빌딩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으면 완공시점에서 맵스자산운용에 넘기는 빌딩 가격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맵스 쪽에선 “상식상 그때 부동산 시세에 맞춰서 계산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아직 인수 가격을 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디비스의 광화문 프로젝트 인수 후보 중에는 외국계 자본도 있었다. 일각에서 미래에셋이 수천억원대의 투자수익을 보장했다는 ‘설’이 나오고 있지만 확인은 불가능하다. 디비스 핵심부의 정치적인 인맥과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시작해 2700억 원대의 매물을 만들어내는 개발대행사의 ‘마술’이 맞물리며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