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메가 서울’ 다음 야심작 “불공정 제도 개선 첫걸음”…야권 “총선용 포퓰리즘, 언 발 오줌 누기” 비판
11월 5일 금융위원회는 임시금융위원회를 개최했다. 회의 이후 금융위원회는 11월 6일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따르면 100여 개 종목에서 560억 원 규모가 넘는 불법 공매도가 횡행했던 점이 공매도 금지를 결정한 이유로 전해진다.
이번 공매도 금지를 두고 여의도에선 정부여당의 히든카드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와 관련해 개인 투자자들이 불만을 쏟아낸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외국인과 기관에게만 공매도 권한이 주어진 까닭이다. 현행 공매도 제도는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공매도 제도 개선을 공약했다. 공매도 서킷브레이커 도입, 공매도 감시전담기구 설치, 개인 담보비율 합리적 조정 등이 공매도 제도 개선 공약 요지였다. 취임 2년 차인 2023년 11월까지 윤석열 정부는 공매도 제도와 관련해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11월 5일 공매도 금지와 관련해 유보적 입장을 취하던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금지를 전격 선언했다.
공매도 금지를 바라보는 여야 관계자 시각은 엇갈린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공매도 금지는 국내 증시에 만연했던 불공정한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첫 걸음이라고 본다”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공매도가 금지되는 2024년 상반기까지 시간을 벌어놓은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제도 개선과 관련한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본다”면서 “도로를 공사할 때도 교통을 통제하는 것처럼, 공매도도 루트를 차단해 놓고 큰 공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야권 관계자는 “2024년 4월에 총선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증시 참여자들에 대한 포퓰리즘 정책이자 한시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근본적인 개선 로드맵은 보이지 않고,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만 해놓으면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 공매도 금지 발표를 직격 비판했다. 11월 7일 오전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대선에서 주식시장 불균형 해소를 공약했다”면서 “이후에도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당시 민주당 제안은 한시적 공매도 금지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주식시장에 대한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면서 “총선이 5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여당이 제도 개선과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명확한 목표 없이 ‘간보기식 던지기’로 일관하니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시장이 과하게 팽창했을 때 거품을 식혀주는 ‘냉각기’ 역할을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증시는 선진국지수라고 꼽히는 MSCI(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에 편입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공매도 금지 조치는 국내 증시의 MSCI 편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공매도 허용이 국제표준에 부합한다는 입장이었다. 결론적으로 금융당국은 기존 입장을 뒤집고 공매도 금지 카드를 내민 셈이다.
표면적으론 10월 일부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 560억 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된 것이 입장 변화 원인이다. 그러나 금융당국 안팎에선 여권의 강력한 압박에 결국 두손을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매도 금지가 발표되기 사흘 전인 11월 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송언석 의원이 같은 당 원내대변인 장동혁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카메라에 포착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송 의원은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는 문자를 전송했다.
이번 공매도 금지는 국제적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첫 번째 공매도 금지여서 관심을 모은다. 금융당국은 2023년까지 4차례에 걸쳐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첫 번째 공매도 금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10월 1일부터 2009년 5월 31일까지였다. 당시 공매도 금지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한다는 이유로 이뤄졌다.
다른 시선도 존재한다. 2008년 5월 2일부터 8월 15일까지 대한민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 개정에 따른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들썩였다.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세를 탔고, 국면 전환 및 돌파 필요성과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명분이 겹치며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행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8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두 번째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이 당시엔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라는 글로벌 금융 이슈가 있었다. 2011년 10월엔 ‘무상급식 보궐선거’로 알려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이명박 정부에선 글로벌 금융 상황과 정치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행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 번째 공매도 금지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됐다. 2020년 3월 16일부터 2021년 5월 2일까지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금융이 대폭락을 하던 시점에 이뤄진 조치였다. 공매도 금지 이후 국내 증시는 ‘V자 반등’을 이뤄냈고, 역대급 주식 열풍이 불었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재난지원금 지급과 공매도 금지 조치 시행은 당시 야권이던 보수진영으로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23년 11월 윤석열 정부가 시행한 공매도 금지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든 공매도 금지 조치가 이뤄졌던 시점은 총선 전후 1년 사이에 끼어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우연의 일치인지 정략적 묘수인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국정동력이 약화하던 포인트마다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냈고,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을 떠받치던 남북평화무드 프레임이 약해짐과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맞아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공매도 금지는 수익과 직결될 수 있는 요소이자, 정부에 대한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요소”라면서 “개인 투자자도 유권자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하면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바라봤다. 그는 “국내 증시에 참여하는 개인 투자자는 투자 유불리에 따라 정치적 의사 결정을 상당히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유권자 중에서도 의사 결정 전환이 가장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타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가 꺼내든 공매도 금지 카드가 국내 증시 활황을 이끌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행된 뒤 이틀 동안 국내 증시는 쌍방향으로 ‘사이드카’가 발동되며 변동성이 극대화됐다. 사이드카는 코스피(5%)와 코스닥(6%) 지수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기관 및 외국인 프로그램 매매를 5분 동안 제한하는 제도다.
공매도 금지 시행 첫날인 11월 6일 코스피는 5.66% 급등한 2502.37로 마감했다. 상승폭은 134.03포인트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코스닥 시장은 전거래일 대비 7.34% 상승한 839.45로 마감했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강력한 상승에 따른 조정 기류가 형성되면서 공매도 금지 효과가 하루 반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김포 서울 편입론’ 이후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내든 상황과 관련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우세한 것을 확인한 정부와 여당이 프레임 전환 속도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전반적으로 민생경제라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김포 서울 편입론에 이어 공매도 금지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채 교수는 “포퓰리즘 요소가 없는 건 아니”라면서 “어쨌든 정부와 여당 입장에선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슈를 적극적으로 띄우면서 국면 전환 관련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