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증 적은 아시안게임 여건 아쉬워…2024 파리 올림픽 대비”
지난 10월 막을 내린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대회 역사상 최초로 e스포츠 종목이 도입됐다. 종목 내 최초 대한민국 메달리스트인 김관우(스트리트파이터 종목 금)는 메달 획득 소감을 밝히며 심리코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은 국가대표스포츠과학지원센터를 운영,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을 대상으로 심리코칭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이들은 e스포츠 종목까지도 영역을 확장했다. 센터 소속으로 아시안게임에 선수들과 동행, 스포츠 심리코칭을 도운 백승원 심리분석연구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관우는 국내 e스포츠 선수로서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메달 획득 이후 "심리코치가 멘털 관리를 도와줘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심리코치가 백승원 연구원이다. 그는 "내가 담당한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렇게 특별히 이야기를 해줘서 감사했다"며 웃었다.
그는 김관우에 대해 "스포츠 선수로선 고령(1979년생)이지 않나. 스스로 동체시력이나 순발력 등이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감이 다소 떨어진 상태였다"면서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부분에 집중을 많이 했다. 과거 좋은 기량을 가진 시절을 떠올리게 하려 했고 그 당시 감정과 기억을 되찾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40대 선수라는 것이 마냥 약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백 연구원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했다. '첫 게임에서 진 것은 잊고 다음 게임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더라"며 "실제 많이 활용되는 심리 기술이다. 그 부분을 짚어주니 '확신이 생겼다'고 하더라. 확실히 자신감이 높아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전부터 태권도, 우슈 등 다양한 종목 선수들의 심리코칭을 해왔지만 e스포츠 종목은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는 "평소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e스포츠 종목에 배정을 받았다. 선수촌에서 보던 다른 종목 선수들과는 다른 강도로 운동을 하는 e스포츠 선수들 모습이 생소하긴 했다"며 웃었다. 이어 "팬들은 e스포츠 선수들은 의자에 앉아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운동도 병행한다. 우리 지원센터의 체력팀 선생님들이 장비를 챙겨 훈련을 했고 컨디셔닝팀이 회복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스포츠 종목 내에서도 분야마다 선수들의 경험이 달랐다. 리그오브레전드 종목의 경우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돼 있다. 이에 각 프로 구단마다 심리코칭을 도입했다. 타 종목의 경우 선수들이 이 같은 상황을 처음 겪는 이가 다수였다.
"전통 스포츠에서 스포츠 심리를 e스포츠에서도 같이 적용하는 부분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이번 대회에서 '통제 가능성' 부분에 집중했다. 훈련 과정 중 선수들이 '운이 나빠서 졌다'는 말을 종종 하더라. '운'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패배 원인을 운에서 찾으면 다음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면 이후 경기에서도 저조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심리 기술 훈련을 통해 자기 암시나 단서를 만드는 교육을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스스로 당장 해야 할 행동을 말로 반복하다보면 긍정적인 자기 암시가 될 수 있는데 그런 훈련에 집중했다. 김관우 선수는 그런 부분에 일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였다."
FC온라인 종목의 경우 역시 축구 게임이기에 실제 축구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부분에 집중했다. 선수가 경기를 치르면서 당황할 만한 요소를 미리 찾아놓고 대응법을 준비했다. 예를 들면 이른 시간 선제 실점이나 갑작스런 퇴장 등이다. '무기' 여러 개를 가지고 경기에 나서려 했다."
백 연구원으로선 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중국이라는 점이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학창 시절 중국 유학 경험이 있는 백 연구원이었다. 그는 "함께한 스태프나 선수들이 현지 음식에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는 괜찮았다(웃음)"며 "특히 e스포츠는 훈련 설비 등의 문제로 선수촌보다 외부 호텔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었다. 생활하는 데 언어가 조금 통한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대회 도중 느낀 아쉬움도 말했다.
"아시안게임에 함께한 것이 처음이었고 e스포츠 종목도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이기도 했는데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든 것이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대회 현장에 스태프에 대한 충분한 출입증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매번 티켓을 사서 입장해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경기와 경기 사이, 경기 직전 등 급박하게 심리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필요한 경우 실시간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주고 받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출입증 문제는 대회 조직위 측의 결정이기에 앞으로도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극복해야 할 문제다."
백 연구원은 체육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박사과정에 있다. 대전 출신인 그는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다 운동을 좋아하는 어린이가 됐다고 한다. 그는 "운동선수에 대한 꿈도 있었지만 좋아만 하는 학생이 됐다(웃음). 그래도 밀접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진로를 결정했다"며 "심리 분야를 접하면서 전망도 밝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적성에도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지금도 좋아하는 한화 구단의 심리코칭을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잠재력은 있는 팀이기에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스포츠 심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 대핸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통 심리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그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간주되곤 한다. 내가 일을 할 때도 감독 요청으로 선수들과 상담을 진행하려고 하면 '감독님이 저 문제 있대요?'라는 반응이 많다. 오히려 해외에선 심리 상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부정적인 눈길들을 거둬 주셨으면 한다."
그는 스포츠 심리 연구의 목적은 문제 해결이 아닌 경기력 향상이라고 말한다. "심리 검사를 통해 선수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상담, 심리 훈련 등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라며 "심리 상담, 훈련 등을 통해 퍼포먼스가 드라마틱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는 결국 신체 활동이 기반이 되는 것 아닌가. 우리의 목표는 선수들의 최대 퍼포먼스가 100점이라고 했을 때 150점, 200점을 내는 것이 아닌 매 순간 꾸준하게 100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심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며 이미지 트레이닝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머릿속 상상만으로도 신체 근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안게임에서도 활용했던 부분이다. 근육과 뇌는 몸 속에서 신호를 주고받는데 실제 뇌는 신호를 받을 때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상만 해도 감각 기관이나 운동 기관에서 신호가 잡힌다는 의미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응 속도나 적응 속도는 향상시킬 수 있다. 다만 올바른 방법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상하는 상상을 많이 하면 그 감각에 신호가 가게 돼 자신도 모르게 그런 근육이 활성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웃음)."
소위 말하는 '체대생' 출신인 백승원 연구원, 그는 평소 '생활체육인'으로서 축구, 테니스, 골프, 복싱 등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를 즐긴다. 심리코치로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원하는 그는 자기 자신도 운동을 하며 심리적인 부분을 다스릴까. 그는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을 만나기 때문에 직접 그 종목들을 경험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복싱을 시작했는데 대회까지도 나가 볼 생각이다"라며 "운동을 할 때 스스로 심리 코칭을 적용해 보는데 선수들을 컨트롤 하는 것보다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것이 어렵다.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내 안에서만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만의 답을 고수하는 것 같다. 객관적인 진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진단이 나오면 문제 해결은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2024년 개막이 예정된 파리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근무하는 곳이 국가대표지원센터이기에 올림픽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e스포츠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다. 맡은 종목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어떤 종목을 맡을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종목을 직접 경험해보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배구 같은 단체 종목을 경험해보고 싶다. 당연히 난이도는 높아지겠지만 즐거운 도전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포츠 심리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심리 분석 연구원, 심리 코치로서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많은 선수들이 신체 훈련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심리 훈련은 선택의 영역으로 여긴다. 심리 트레이닝이 필수가 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좀 더 멀리 바라보면 스포츠를 넘어, 군인이나 소방관, 비행기 조종사 등 다른 신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스포츠 심리를 적용해 도움을 주고 싶다. 불안이라든지 긴장 상황에서 퍼포먼스를 최대치로 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렇게 분야를 넓히려면 스스로 능력을 더 갖추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