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축구 대표팀은 구성 과정부터 군 미필자 고려…올림픽 비해 격 낮은 데다 대중예술가와 형평성 논란
콘텐츠의 다양화, 스포츠에 대한 관심 저하 등으로 대회 주목도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대회를 지켜보는 이유 중 하나는 '병역 혜택'이다. 적지 않은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혜택을 받아 향후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하며 경기를 지켜본다.
#발걸음 가벼워진 금메달 주인공들
이번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남자 선수만 90명을 훌쩍 넘긴다. 일부 금메달리스트는 지난 대회, 또는 올림픽 메달 등의 경험이 있다. 하지만 100명에 육박하는 남자 금메달리스트 중 상당수가 이번 대회를 통해 병역 혜택인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될 자격을 갖추게 됐다.
특히 동반 금메달 획득에 성공한 야구, 축구 국가대표팀은 구성원 대다수가 '군 미필 자원'으로 채워졌다. 금메달이 보장되지 않은 시점인 대표팀 구성 과정부터 군복무가 고려 대상이었다.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 처음으로 연령 제한을 두고 선수들을 선발했다. 대회 중 KBO리그를 중단하지 않는 첫 대회기도 했다. 이에 '팀당 3명 선발'이라는 또 다른 제한이 생기기도 했다. 이외에도 야구계에선 '군 미필 선수 분배도 고려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축구 대표팀의 경우 전원이 '병역 혜택이 필요한' 선수들로 채워졌다. 일부 '군필 자원'들에게 합류를 타진했으나 개인 또는 소속팀에서 난색을 표한 것을 알려졌다. 축구계에서 국제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대회이자 연령별 대표팀으로 치러지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탓이다.
결국 두 대표팀은 유일한 목표였던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이에 프랑스, 독일 무대에서 활약 중인 이강인(파리제르맹)과 정우영(슈투트가르트), 야구 대표팀 차기 에이스로 손꼽히는 문동주(한화 이글스) 등은 현역 복무 또는 상무 입대 없이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됐다.
이번 대회에 나선 대한민국 선수단의 스타는 골프의 임성재와 김시우였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자 출신인 이들은 각각 세계랭킹 26위와 40위에 올라있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다. 앞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이후 재도전에 나서 아마추어 선수들인 조우영, 장유빈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무더기 메달 획득으로 조명을 받은 수영 대표팀의 금메달리스트들도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 황선우, 김우민 등을 비롯한 이들 상당수가 20대 초중반의 연령이다. '황금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향후로도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초 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에서도 병역 수혜자들이 나왔다. 6명으로 구성된 리그오브레전드 대표팀 선수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사유로 군 면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금메달의 수혜를 받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예술체육요원 제도 변천사
금메달 획득 덕분에 군복무를 간편히 마칠 수 있는 것은 '예술체육요원 제도' 덕분이다. 세간에선 금메달 획득을 '군 면제'로 인식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보충역 복무다.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 되면 일정기간 이상 그 종목에서 선수 또는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야 한다. 보충역이기에 사회복무요원과 같이 약 3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복무 이후 예비군에도 편입된다.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된 1973년 이후 수많은 변천사를 거쳐 왔다. 현재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메달을 획득해야 수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과 달리 과거에는 그 범위가 넓었다.
FIFA 월드컵을 포함, 유니버시아드, 세계선수권 등에 이어 연령별 대회, 아시아 청소년선수권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과거 스포츠 스타들은 아시아 청소년 대회 3위 이내 입상만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 스포츠팬들을 열광 시켰던 2002 한일 월드컵 4강,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의 주역들이 모두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그 범위는 줄어들었다. 체육 분야의 경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만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회가 줄었다. 중도에 추가됐던 월드컵, WBC와 같은 대회도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을 들어 병역 혜택이 사라졌다.
예술체육요원에 편입된 이후 활동 범위에도 변화가 있었다. 과거 병역 혜택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그 분야에서 활동해야하는 조건이 있었다. 이에 일부 선수들은 병역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음에도 해외 진출에는 이르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관련 법령이 개정되며 현재는 축구, 야구, 골프 등에서 병역특례를 받고 해외 무대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역 복무 중인 선수가 메달을 딸 경우 조기에 군복무를 마칠 수 있게 하는 제도 보완도 이어졌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상무에서 복무하던 현주엽과 조상현은 대회에서 농구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남은 복무를 마쳐야했다. 이후 관련 규정이 수정됐고 2014년 상무에서 복무하던 오세근(농구), 2018년 경찰청에서 뛰던 황인범은 동기들에 비해 일찍 사회로 나왔다. 이번 대회 축구 금메달 주역 조영욱(상무)도 바뀐 규정의 수혜를 입을 예정이다.
#금메달리스트는 병역 특례, BTS는 현역 입대?
이 같은 제도가 최초 마련된 시점은 1973년이다. '예술 또는 체능 특기를 가진 자 중 국가이익을 위해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를 필요로 한다고 인정돼 선발된 자'에게 주어지는 병역 특례 제도다.
이전까지는 한일 월드컵 당시 선수들의 건의에 대통령이 현장에서 병역 혜택을 약속하는 등 제도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 예술체육요원 제도에 변화 조짐이 생겼다. 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공교롭게도 과거 혜택을 받은 선수 중 일부가 예술체육요원의 의무사항인 봉사활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발각되면서다.
아시안게임이 특례 대상이 된다는 점 또한 논란의 지점이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하는 올림픽에 비해 격이 낮은 대회인 아시안게임까지 특례를 줘야하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 아시안게임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대부분의 종목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대회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은 200개 넘는 금메달을 휩쓸었으며 한국과 일본은 금은동 합계 200개 육박하는 메달을 따냈다. 4위 인도(총 메달 107개)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정치권에서도 예술체육요원 제도 관련 회의론에 목소리를 냈다. '예술 또는 체능을 통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대중예술가도 제도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BTS의 활약을 예로 들었다. 국제 콩쿠르 입상이 국가이익에 기여했기에 병역 혜택을 준다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 대중가수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일부 국회의원은 관련 법안 개정안 발의를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체육요원 제도의 전면적인 개정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제도 개선 TF'를 꾸려 이에 대해 논의했으나 그간의 제도를 유지하기로 2019년 11월 결정했다. 체육 분야의 경우 국가대표 선발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했고 팀 종목의 경우 후보로 출전하지 않은 선수도 혜택을 받게 하는 등 변화는 소극적인 수준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다시 한 번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도마 위에 올랐다. 약 50년을 이어 온 이 제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