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4인 ‘원칙과 상식’ 출범…탈당설 선 긋지만 ‘공천학살’ 현실화 땐 정국 요동
11월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당 의원 4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종민 이원욱 윤영찬 조응천 의원이 나란히 기자회견장에 섰다. 이들은 “민주당 정풍운동을 지향한다”면서 “당의 무너진 원칙과 국민이 요구하는 상식 정치를 세우겠다”면서 공동행동 모임 ‘원칙과 상식’ 출범을 선언했다.
앞서 11월 10일 이원욱 의원이 “가까운 의원들이 일단 가시적으로 (당 변화를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려 한다”면서 “멀지 않은 시간에 이 공동행동을 할 수 있는 모임을 오픈할까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의원 발언 이후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공동행동 모임이 탄생을 알렸다. 원칙과 상식 측은 “윤석열 정권에서 떠나온 민심이 민주당으로 모이지 않아 제22대 총선도 비호감 선거로 갈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윤석열 정권심판은 실패한다. 민주당 결단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범과 동시에 원칙과 상식이 당에 요구한 사안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도덕성 회복, 당내 민주주의 회복, 비전 정치 회복을 담은 이른바 ‘3회복론’이다. 3회복론엔 방탄정당 지양, 강성지지층과 결별, 민생 미래 비전 선도 등 메시지가 포함됐다.
정치권에선 다음 총선 공천을 노린 내부 알력다툼 일환으로 비명계 세력화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원칙과 상식 일원인 조응천 의원이 입을 열었다. 조 의원은 기자회견 이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다”면서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총선 승리하자고 하는 게 (공천 받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원칙과 상식 출범 이전까지 ‘비명계 공동행동 모임’을 둘러싼 여러 추측이 나왔다. 당내 비명계가 대결집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한 것처럼 대결집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내에서조차 현역 의원 4명밖에 포함되지 않은 공동행동 모임 규모가 예상보다 작다는 반응이 나온다. 비명계 결집도가 약한 배경으론 ‘애매한 타이밍과 간판 부재’가 거론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금 타이밍 자체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라 기존 ‘비명계’라고 불리던 인사들이 명확하게 어떤 입장을 내긴 애매하다”면서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 ‘명심’이 어떤 방향으로 반영돼 있는지 힌트가 나올 텐데, 지금은 아직 이재명 대표의 총선 인력 배치 복안이 깜깜이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체포동의안 가결 국면 이후 지도부 교체 과정에서 정책위의장으로 비명계 ‘호남 3선’ 이개호 의원이 발탁되지 않았느냐”면서 “이재명 지도부가 나름 친명과 비명 사이 안배를 해나가고 있는 국면인데, 총선 공천 로드맵과 관련해선 명확한 결과값이 나오지 않았으니 비명계 인사들에겐 가장 혼란스런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총선 일정이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려는 상황에서 원칙과 상식 출범이 어떤 변수가 될지 관심이 높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어떤 새로운 목소리를 내려면 정치권에 유행하는 ‘XXX 정당’처럼 신당 창당 움직임이 있어야 할 시기인데, 진보진영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면서 “이번 비명계 공동행동 모임 원칙과 상식이 민주당 내부에서 제기된 가장 큰 움직임”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비명계가 모임을 조직하는 것을 두고 탈당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지만, 결국 탈당이나 분당이 이뤄지려면 ‘간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상징성 있는 인물이 깃발을 흔들어야 사람이 모이고 이슈가 생기는데, 현역 의원 4명이 모인 모임으로 향후 정국을 예상하기엔 시기상조인 느낌이 있다”고 바라봤다.
원칙과 상식은 탈당설엔 선을 그은 모양새다. 원칙과 상식 멤버들은 “탈당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당이 변화를 위해 가시적 행동을 보여줘야 할 시점은 제시했다.
김종민 의원은 “총선이 5개월 남았다”면서 “2024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총선 선거운동 체제에 돌입하는데, 그전에 한 달가량 시간이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한 달 노력 결과로 당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고, 그렇지 않을 때 우리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라면서 뒷말을 잇지 않았다.
민주당 안팎에선 원칙과 상식 출범이 탈당 대신 선택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친명계 인사는 “비명계가 세를 모아 향후 총선에서 공천권 지분을 확보하려는 포석인 것 아니냐”면서 “수 틀리면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표명하면서 지도부를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직접 총선 인재영입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11월 8일 민주당은 이 대표가 위원장직을 맡는 인재영입위원회를 꾸렸다. 이를 두고 비명계 내부에선 현역 물갈이를 명분으로 ‘공천학살’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일부 비명계 의원은 제3지대 인사들과 연쇄 접촉하며 활로를 찾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비명계 빅마우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상민 의원은 원칙과 상식 합류 대신 ‘빠른 탈당’ 가능성을 언급하며 민주당과 거리두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의원은 11월 15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를 통해 “시간이 자꾸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공천을 흥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고 또 역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탈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을 떠난다면 어느 가능성이든 배제할 필요가 없다”면서 국민의힘 혹은 이준석 신당 합류까지 선택지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제 주목받는 건 ‘비명계 간판’으로 떠오를 만한 거물급 인사 행보다. 첫 손에 꼽히는 이는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와 겨뤘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전국 강연을 이어나가는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선 ‘이재명 지도부발 공천학살’이 현실화될 경우 ‘비명 구심점’이 되기 위한 채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친이낙연계 좌장’으로 불리는 원칙과 상식 멤버 윤영찬 의원은 11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탈당설에 선을 그었다. 윤 의원은 “탈당에 대해 이야기한 적 없다”면서 “지금 너무 나간 이야기들을 여러 곳에서 하시는데 지금 현재로서는 당내 혁신에 몰두하고 거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원칙과 상식 목표는) 혁신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안 됐을 때 어떻게 할지는 그 다음 단계에서 고민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원칙과 상식 출범을 이낙연 전 대표와 상의한 바 있느냐’는 질문에 윤 의원은 “이 전 대표와 상의하진 않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통화로 ‘의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가려고 한다’는 것을 말했고, 그 부분에 대해 수긍했다”고 전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원칙과 상식 출범과 관련해 “공천 문제 갈등 씨앗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분당 이슈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채 교수는 “원칙과 상식에 합류한 윤영찬 의원이 이낙연 전 대표 오른팔이다 보니 ‘간판급’인 이 전 대표와 교감이 있을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 명분이 쌓인 뒤엔 탈당 내지 분당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친명·비명 줄다리기 데드라인이 12월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채 교수는 “2024년 1월부터는 합종연횡의 시간”이라면서 “그전에 어떤 구도가 만들어져야 행동도 가능하다”고 했다. 채 교수는 “물리적 시간을 계산했을 때 12월 말까지는 당 지도부와 협상을 마치든, 거취를 결정하든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