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플레이어’ 뒤엔 청춘을 바친 아빠가 있다!
▲ 기성용 아버지 기영옥 회장. |
▲ 대를 이어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차범근 해설위원과 차두리(왼쪽). |
한국 축구에서는 차범근(59)-차두리(32) 부자가 대표적이다. 물론 일반적인 ‘사커대디’와는 크게 다르다. 엄밀하게 말해 ‘선수 출신 부자(父子)’다. 아들은 어릴 적 그라운드를 누비는 아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개척했다.
K리그와 국가대표팀 지도자를 거쳐 현재 SBS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범근은 70~80년대 한국과 아시아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당대 세계 축구를 주름잡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축구를 하는 아들 차두리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대를 이어 월드컵에도 출격했고, 역시 독일 무대에서 꾸준히 제 몫을 하고 있는데 최근 개인적인 이유로 갑자기 휴가를 받아 팀을 떠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차두리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상태.
올 여름 유럽축구 선수이적시장을 통해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로 이적해 제2의 축구 인생을 설계 중인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23)은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55)의 아들이다. 기 씨는 축구 명문 금호고등학교를 이끌며 고종수, 윤정환 등 숱한 스타들을 키워낸 지도자 출신이다.
20세 약관의 나이에 거친 독일 무대에서 꾸준한 기회를 잡고 있는 손흥민(함부르크SV)의 아버지는 울산 현대와 성남 일화에서 K리거로 활약한 손웅정 춘천FC 감독(50)이다.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는 국가대표 수비수 오범석(28)도 축구 선수 출신으로 현재 한국 실업축구연맹 이사로 재직 중인 오세권(56)의 아들이고 한 시절을 풍미했던 최순호 FC서울 미래기획단장(50)의 아들도 경남FC에서 뛰고 있는 공격수 최원우(24)다.
▲ 박지성과 ‘사커대디’의 대표적 인물인 아버지 박성종 씨. |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축구 선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사커대디’ 또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요즘이다. 프리미어리그 퀸스파크레인저스(QPR) 주장 박지성(31)의 부친은 이미 잘 알려진 박성종 씨(54)다. 박 씨는 축구 선수를 한 적은 없지만 아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해온 ‘축구 선수 아빠’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항상 아들에게 생활 기준을 맞췄고, 자신의 대부분은 희생하고 포기했다. 아들이 힘겨워할 때는 묵묵한 조언자 역할을 했고, 뭔가 방향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기준을 일러주며 바르게 나가도록 했다.
아들이 ‘은퇴 후 진로’로 지도자나 축구 행정가 대신 유소년 선수들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도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박 씨는 박지성의 이름을 딴 ‘박지성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J리그를 떠나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카디프시티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측면 공격수 김보경(23)을 키운 것도 아버지 김상호 씨(56)다. 과일장사, 숙박업소 운영 등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약간은 다른 경우이지만 지동원(23·선덜랜드)은 배구인 출신 지중식 씨(52)의 아들이다. 서로 종목이 다르다보니 여느 축구인 아버지들처럼 아들에게 운동에 대해 조언할 수는 없어도 아들이 정한 길과 방법에 대해 전폭적인 후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 손흥민과 손웅정 춘천FC 감독. |
축구인 부자이든, 일반인과 축구 선수 부자이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든 부분에서 단순한 후원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질적인 지원과 투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확한 진로 설계와 방향 설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손웅정 감독과 손흥민이 그랬다. 이미 화제가 돼 있는 아들이 8세 꼬마일 때부터 시작한 기본기를 위한 하드 트레이닝은 부수적이었다. 아주 엄격한 생활 기준을 마련해놓고 아들을 훈육했다는 전언이다. ▲항상 겸손하라 ▲주변에게 늘 감사하라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라 등 3가지 틀에 맞췄다. 이는 현재 춘천FC에서 ‘제2의 손흥민’을 꿈꾸는 유소년 선수들의 교육 모토로 활용되고 있다.
기영옥 회장도 아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기성용을 유럽이나 남미 등 소위 축구 선진국이 아닌, 호주로 유학을 보낸 건 어학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존 폴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으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게 됐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좋은 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기본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2012 런던올림픽을 전후로 QPR에 이어 웨일즈 소도시 스완지시티행이 임박했을 무렵, 풀럼FC의 제안을 받고 기성용은 잠시 흔들릴 수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에게 풀럼이 연고한 영국 수도 런던의 삶은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기 회장이 갈등하는 아들을 붙잡았다. 셀틱을 떠나기로 마음을 정한 뒤 새로이 몸 담을 소속 팀의 기준으로 기성용이 제시한 ‘뛸 수 있는 팀’ ‘진정으로 선수를 원하는 팀’ 등은 어찌 보면 기 회장의 의지이기도 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