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상임위 증액 규모 11.8조 달해…정부 긴축 재정 기조 빨간불 우려
#증액 예산 '지역 표심 잡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는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증액 심사에 돌입했다. 23일까지 17개 상임위 중 13개 상임위가 내년도 예산안 예비심사를 마쳤다. 여야는 예산 정쟁을 벌이면서도 총선을 앞둔 만큼 증액을 요구하는 데 의기투합한 모양새다. 일요신문이 13개 상임위의 세출예산안 예비심사결과를 분석한 결과, 12개 상임위에서 증액한 예산이 약 11조 8267억 원에 달했다. 국방위원회(국방위)만 84억 원 감액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3조 7431억 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2조 2345억 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1조 9948억 원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1조 2241억 원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1조 1885억 원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5882억 원 △교육위원회(교육위) 5735억 원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1763억 원 △운영위원회(운영위) 370억 원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281억 원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237억 원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149억 원이었다.
증액한 예산 중 상당수가 사회간접자본(SOC), 현금성 지원 등으로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선심성 예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위만 보더라도 청년층 지원, SOC 인프라 확충, 지역 균형발전 등을 위해 1조 561억 7500만 원을 증액하는 것으로 수정 의결했다. 주요 증액 사업은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 690억 원 △광역버스 공공성 강화 지원 388억 원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 272억 원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설립·운영 219억 원 등이 있다.
농해수위는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및 수급안정 지원 사업(576억 8100만 원) △농업용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653억 7200만 원)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차액보전(519억 2200만 원) 예산을 각각 신규 편성했다. 이 밖에도 럼피스킨병 살처분보상금 사업(358억 4500만 원), 노후 수리시설 유지관리 사업(347억 원) 예산을 각각 증액했다.
예산 증액은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내린 정략적 판단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11월 13일 국민의힘은 5대 분야 40대 주요 증액사업을 제시했다. 대학생 1000원 아침밥 확대, 명절 반값 여객선 운영, 이·통장 수당 인상, 고령자 임플란트 지원 확대, 고령층 무릎·관절 수술 지원 확대 등 현금성 지원사업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집권 여당이 긴축재정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증액을 요구한 것이다.
11월 6일 민주당도 5대 미래예산, 5대 생활예산 등 총 10개 항목의 예산 증액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연구개발(R&D), 새만금 사업 등 윤석열 정부에서 논란이 불거진 사업을 포함시키며 전면전을 예고했다. 보육 지원, 지역사랑상품권, 청년 교통비 3만 원 패스 사업, 전기·가스 요금 지원 및 대출이자 부담 프로그램 사업, 청년월세한시특별지원 등 현금성 지원사업도 빼놓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조 9000억 원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획재정부는 세수 부진, 재정건전성 등을 고려해 ‘짠물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세수 결손액 규모는 약 6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12개 상임위에서 약 11조 8267억 원 증액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나머지 4개 상임위에서도 증액을 요구한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가 예산소위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재논의하기로 한 사안도 적지 않다. 예결위 종합 심사를 거치면서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소소위’로까지 이어진다면 총선용 선심성 예산을 짬짜미로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소소위는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재부 책임자가 비공개로 모여 심사를 진행하는데 회의록을 남기지 않는다. ‘밀실 깜깜이 예산’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지난해에도 여야 실세들이 소소위에서 실속을 챙긴 바 있다(관련기사 이번에도 밀실·쪽지? 2023년 ‘지각 예산안’ 뜯어보니…).
#예산안 곳곳서 여야 충돌
여야는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곳곳에서 충돌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상임위 예비심사보고 과정에서 연일 단독으로 예산안을 삭감하거나 증액하면서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하는 ‘예산 테러’라고 강력 반발했다. 정부·여당이 민주당 주도로 이뤄진 예산안 증액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만큼 향후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재정법상 예산 증액은 기재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
민주당은 농해수위와 국토위에서 새만금 사업 관련 예산을 각각 2902억 원, 1471억 원 증액했다. 새만금 사업 예산은 지난 8월 세계 잼버리 파행으로 인해 대폭 깎인 바 있다. 최근 이재명 대표가 공약한 교통패스 예산도 국토위에서 2923억 증액했다. 행안위에서는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추진했던 대표 정책인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7053억 원을 증액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지역화폐, 청년 패스 예산 등 새 비목을 설치해 일방적으로 예산을 증액했다고 비판했다. 헌법 57조에는 정부 동의 없이 예산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표 예산에 대해선 칼날을 들이댔다. 과방위에서 윤 대통령 공약인 글로벌 R&D 예산 등 47건에 대해 1조 1513억 원을 삭감한 반면, 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비 등 161건에 대해 2조 88억 원을 증액했다. 환노위에선 윤석열 정부 사업인 청년 일경험 지원 사업 예산 2382억 원을 감액했다. 산자위에선 윤석열 정부의 원전 생태계 조성 예산 1831억 원을 삭감했다. 이 중에는 소형모듈원전(SMR) 산업 관련 R&D 예산 333억 원도 포함돼 있다.
11월 21일 윤재옥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재까지 11개 상임위가 예산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중 6개 위원회는 민주당의 일반 통과였다”며 “민주당은 미래 예산을 만들겠다더니 분풀이 칼질로 청년 취업 진로 및 일 경험 지원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R&D 예산은 민주당 횡포가 집중되고 있는 분야다. SMR은 미래성장 동력이자 탄소중립에도 이바지할 첨단기술로, 이재명 대표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입법 폭주에 예산 폭주까지 하는 모습은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들이 민주당의 이런 횡포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