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총장 ‘문제 있다’ 판단, 엄정 대응 밝혀…탄핵 정국 속 공수처까지 나서기 전 ‘선수’ 분석
서로 다른 두 뉘앙스의 이야기는 모두 이원석 검찰총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11월 2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월례회의 때에는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대전고검으로 발령)를 놓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불과 10여 일 사이에 검찰 수뇌부가 사건을 바라보는 스탠스를 바꿨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검사 탄핵을 추진 중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이정섭 검사의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손으로 문제를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라는 평도 나온다.
#입장 바뀐 이원석 검찰총장
이원석 검찰총장은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월례회의에서 “검찰의 일은 완전무결함을 지향해야 하지만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문제가 없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때 바로 겸손한 태도로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잡아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한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등 내부 구성원에게 의혹이 제기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당초 민주당이 국정감사 등에서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수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보복을 한다”고 반발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태도다. 이는 내부적으로 이정섭 검사 관련 의혹들을 확인해 본 뒤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온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정섭 검사에게 제기한 의혹은 △위장전입 △세금체납 △처가 골프장 직원 및 처남댁 가사도우미 등 범죄경력 조회 △골프장 부당 예약 등이다. 이정섭 검사는 의혹들 중 위장전입만 인정하고, 나머지 의혹들에 대해서는 모두 부인했다.
하지만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는 11월 3일 고발인 신분으로 김의겸 민주당 의원실 소속 보좌진을 불러 조사했고, 추가 증거도 건네받았다. 그리고 20일 이 검사의 처가가 운영하는 용인CC 골프장과 접대 의혹이 있는 엘리시안 강촌 리조트를 압수수색했다. 제보자인 그의 처남댁 강미정 씨를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하기 위해 일정을 조율 중이다.
압수수색 일주일여 뒤에 나온 이원석 총장의 발언 가운데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부분은 그동안 관련 보고를 들은 이 총장의 판단이 반영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이 의혹을 제기하며 검사 탄핵을 얘기했을 때만 해도 “나를 탄핵하라”고 했던 것과 달라진 반응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민주당이 억지 공세라는 분위기였다면 의혹 관련된 내용들이 하나씩 나오면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수처에 내줄 수 없다’ 판단도 한몫
관련 사안을 꼼꼼하게 보고받고 있는 이원석 검찰총장이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은 공수처 역시 이첩 요구를 할 수 있기에, 검찰 차원에서 먼저 나서기로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최근 대검찰청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서버를 열람해 이 검사가 불법 전과조회를 했다고 지목된 인물들의 범죄경력을 검색·조회한 로그 기록을 역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이 검사와 알고 지낸 검찰 구성원들이 검색·조회한 흔적이 드러났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정섭 검사의 처남댁 강 씨가 가사도우미의 전과기록(범죄경력)과 관련해 이 검사 부인과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까지 이미 공개가 된 상황이다.
현행법에는 수사기관 관계자 등이 권한 없이 형사사법정보를 열람·복사·전송하거나, 타인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절차전자화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검사의 범죄 혐의는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혐의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검찰은 현재 이 검사의 혐의가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지만 전과 기록 무단 조회는 공수처가 수사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검찰 판단처럼 이 검사에게 제기된 나머지 의혹들, 위장전입이나 골프장 예약 청탁 등은 공수처의 수사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의혹에 한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면 검찰은 무조건 응해야 한다. 민주당 일각에선 검찰이 사건을 공수처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이원석 검찰총장이 공수처 수사가 진행될 상황이 되자 제 식구 봐주기 수사로 검사탄핵 김빼기에 나섰다”며 “사건을 공수처로 서둘러 이첩하는 것이 제 식구 봐주기 수사, 보여주기 수사라는 오명을 더는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수처도 최근 특별수사본부(부장검사 이대환)에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를 개시했지만,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고, 이미 검찰이 압수수색 등 수사를 개시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검찰 안팎에서는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이정섭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시절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며 빼어난 수사 능력을 뽐낸 것이 되레 독이 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차장검사로 승진하자마자 곧바로 이재명 수사를 지휘하는 수원지검 2차장으로 발탁될 때만 해도 ‘에이스’로 불렸지만, 오히려 정치권을 겨눈 수사를 맡게 된 것이 좌천과 수사대상 전락의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이정섭 검사를 잘 아는 한 법조인은 “검찰 조직은 조직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검사 한 명을 쳐낼 때 누구보다 아프게 쳐내는 조직”이라며 “이 검사는 섭섭하겠지만 그게 검찰 조직이 살아남는 방법이지 않냐”고 얘기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원래 칼잡이(특수통을 지칭하는 말)가 칼을 잘 쓸수록 복수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 언젠간 칼을 맞게 되는 법”이라며 “이정섭 검사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칼을 너무 휘두른 것이 결국 인과응보가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