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검사 줄사표 2개월 후 수장 공백…‘방치냐 정상화냐’ 후임 인선이 좌우
공수처는 출범 이후 구속영장 발부 ‘0건’이란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아들며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게다가 후임 추천권이 없는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언급, 후임 공수처장을 논의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논란만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대로 공수처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의 ‘믿는 사람’을 새롭게 수장에 임명해 힘을 실어줄 것인가. 법조계에서는 2개월 뒤 낙점될 후임 처장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떠난 1기 검사
공수처 수사3부 소속 김숙정 검사(변시 1회)는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했다. 공수처는 “현재 공식적으로 검사 1명이 사의를 표명해 사직 절차를 밟고 있다”며 “향후 채용계획은 사직 절차가 마무리되면 구체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1기 검사인 김숙정 검사의 사의는 조직 입장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 검사의 임기는 3년으로 3회 연임이 가능하지만, 1기 검사들이 임기를 채우기도 전에 줄줄이 조직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출범 당시 뭉쳤던 1기 원년 멤버들 13명 가운데 10명이 임기를 마치지 않고 공수처를 떠났다. 2년여 사이 공수처 1기 검사 가운데 최석규·김수정·예상균·김성문 부장검사, 문형석·이승규·김일로·박시영·최진홍 검사가 사의를 표했다.
구속영장 청구는 4건이지만, 모두 기각됐을 정도로 ‘실적 부진’도 뼈아프다. 손준성 검사에 대해 두 차례 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되는 등 공수처 출범 3년여 동안 한 차례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낸 적이 없다. 3년 동안 기소한 사건도 8건에 그친다. 7000여 건의 사건 중 기소율이 약 0.1% 수준이다.
공수처 부장검사 출신인 예상균 법무법인 KDH 변호사는 논문에서 “구성원들의 역량 부족일 수도 있지만 공수처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며 “상설 특검처럼 운영되는 안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도 판사 출신 물색?
특히 법조계에서는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 공수처가 주요 조직으로 자리잡게 해야 하는 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인사였다는 비판이다.
11월 10일 김진욱 처장은 국회 회의장에서 여운국 차장과 후임 추천을 상의하는 휴대전화 화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2024년 1월 20일 임기가 마무리 되는 김 처장은 국회 예결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휴대전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여 차장과 후임 처장 인선을 놓고 문자를 나눴다.
여운국 차장이 “강경구, 호제훈은 저랑 친한데 수락 가능성이 제로(0)다. 강영수 원장님도 수락할 것 같지 않다”고 하자 김 처장은 “알겠다. 수락 가능성이 높다고 사람 추천할 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김 처장은 “검사 출신은 그래도 오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판사 출신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문제는 공수처장은 후보 추천위원이 아니어서 추천 과정에 관여할 권한은 없다는 것. 공수처 측은 “후임이 누가 될지가 관심사이다 보니 사담을 나눈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조계에서는 ‘리더십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공수처 1기 검사였던 김성문 전 부장검사(연수원 29기)는 퇴직하기에 앞서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김 처장 등 수뇌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한 바 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공직자는 공적인 자리뿐만 아니라 사적 자리에서도 항상 언행에 신중해야 하고, 자신의 언행에 관한 비판적인 보도가 있다면 먼저 자신의 언행이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최근 드러난 ‘후임 논의’는 이런 비판 지점이 드러났다는 평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를 하는 것과 재판을 하는 것은 완전 별개의 영역인데 두 명(처장·차장)의 수사 지휘부가 모두 판사 출신이니 제대로 된 수사 성과도 없고 수사 조직이 가져야 하는 신중함과 기밀성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 후임 논의
후임 공수처장을 찾기 위한 일정은 이제 막 시작됐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11월 8일 첫 회의를 열고 물색에 나섰다. 공수처장은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당연직 3명과 여야 추천위원 각 2명 등 7명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최종 후보군 2명을 정해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가운데 한 명을 지명해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당연직 3명과 여당 추천 위원의 의견 합의만 있으면 추천이 가능하기에 ‘사실상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수사라는 민감한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인물인 만큼, 2대 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얼마만큼 공수처에 ‘권한’을 줄 것인지가 드러나는 인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법무부, 검찰과의 공조가 가능한 인물이어야 한다”며 “그냥 검사 출신이라고 다 되는 게 아니라, 특검처럼 운영될 공수처의 성격을 이해하는 특수통 출신 검사가 공수처장으로 임명되면 공수처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을 주목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인선 절차 과정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비검사 출신’을 보내 다시 공수처의 힘을 빼놓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이미 만들어진 상황에서 폐지를 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검찰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를 본래의 취지대로 올려놓을지, 아니면 공수처를 없는 셈 칠 것인지는 누구를 차기 처장으로 낙점하는지를 보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